‘보수 우위’ 미 대법원, 진보 정책 연이어 제동···미국사회 이념 대립 가속화
지난해 임신중단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미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일으켰던 미 연방대법원이 최근 보수적인 판결을 연이어 내놓으며 다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임신중단권부터 소수 인종 대입 우대 정책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책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며 미국 사회의 이념 대립도 한층 첨예해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념적으로 분열된 ‘6대 3’의 세 가지 판결은 연방대법원의 보수 쏠림 구도가 여전히 우세함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달 29일과 30일 연방대법원은 미국 대학들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과 동성커플 등 성소수자 권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온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 이르기까지 보수적인 판결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8월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 미만의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2만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제해주도록 한 정책과 관련한 2건의 소송에서 각각 6대 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강하게 반발하며 새로운 구제안을 발표했지만, 이 정책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됐던 4000만명의 대상자를 포함해 이번 판결로 인한 정책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같은날 성소수자에 대한 서비스 거부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는 판결로 논란을 촉발했다. 콜로라도주의 한 웹디자이너가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 커플의 결혼식 웹페이지 제작을 거부해 차별금지법으로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며 대법원에 낸 소송에서 웹디자이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웹디자이너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장에서 성적 지향, 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콜로라도 주 법이 수정헌법 1조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전날에도 1960년대부터 60년간 이어진 소수 인종의 대입 우대 정책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세 판결 모두 대법관 9명의 판단이 ‘6대 3’으로 정확히 갈렸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법관 3명을 연달아 임명한 이후 ‘보수 쏠림’ 구도가 된 대법원 이념 지형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 전체 대법관 9명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6명이 보수 성향, 나머지 3명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AP통신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대학 교육에서 차별 철폐 조치를 없애는 것은 수십년 동안 보수 법률 운동의 주요 목표였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명한 세 명의 대법관이 합류한 대법원은 지난 370일간 이 두 가지를 모두 현실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의 연이은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다.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위헌 결정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힌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나온 두 판결과 관련해서도 “헌법을 잘못 해석한 것” “성소수자에 대한 더 많은 차별을 초래할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도 대법원의 ‘정치 편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각에선 대법원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이번 판결에 앞서 “대법관에게도 임기가 필요하다”며 한 번 인준을 통과하면 종신직을 유지하는 대법관 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번 판결이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중간선거에선 임신중단권 폐기에 반발하는 여성 유권자가 대거 결집하면서 민주당이 예상 밖 선전을 거둔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 공화당도 이번 판결이 선거에 미칠 영향에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마이클 스틸은 “흑인들에게 사실상 기회를 빼앗은 판결 이후 공화당이 흑인 사회에 다가가는 것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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