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난민들이 키운 ‘희망의 농산물’…광주 고려인마을 판매 시작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동포 김레브씨가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새마을 협동농장 텃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 고려인마을 제공.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고려인쉼터에서 생활하며 인근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고려인 동포 김레브씨(69)는 지난달 30일 첫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그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침공을 피해 홀로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피란민이다.

고령인 나이 탓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작은 일거리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같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인 박에릭씨(72) 등 4명도 손을 보태고 있다. 김씨는 “정성스럽게 가꾼 이 농산물들이 저희에겐 꿈과 희망”이라고 말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고려인 동포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정식 판매한다고 2일 밝혔다. 판매 농산물은 고수와 무, 오이, 옥수수 등이다.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 동포 5명이 직접 씨앗을 뿌리고 수확해 품질이 좋다고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설명했다.

농산물을 가꾸는 고려인 동포들은 모두 ‘새마을 협동농장’에 소속돼 있다. 새마을 협동농장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동포들의 안정된 정착을 돕기 위해 고려인마을이 지난해 2월 설립한 곳이다. 농지는 광산구 삼도동에 있는 새마을회 소유 9917m²(3000평) 부지를 임대해 마련했다.

지역사회의 각종 후원금과 고려인마을 주민들의 지원은 텃밭을 가꿀 각종 설비와 퇴비, 씨앗 등을 구매하는 데 쓰였다. 고려인 동포들은 밭갈이부터 비닐하우스와 스프링클러 설치, 재배까지 직접 했다. 지난 3월부터는 텃밭에서 일부 농산물을 재배해 고려인마을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고려인마을은 현재 판매하는 농산물 외에도 주문이 들어오면 생산하는 계약 재배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절임용 오이가 필요하다’는 고려인마을 상인들의 요청에 따라 씨앗을 심고 최근 200kg 가량을 수확해 판매했다.

고려인마을 농산물은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농산물을 가꾸는 고려인 동포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에서 생업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고려인마을은 농산물 판매 추이를 지켜본 뒤 새마을 협동농장의 규모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동포들의 안정된 정착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농업을 통한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십여년째 고려인 동포들을 돕고 있는 이천영 새날학교 교장은 “고려인 동포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농산물의 품질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고려인 동포들이 스스로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지역사회의 항공권 등 도움으로 입국한 우크라 전쟁 난민 9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