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그 자체”…‘반전’ 외치는 러시아인들이 말하는 바그너 반란 이후
한국에 온 지 2년 된 알렉산드라(28)는 지난달 24일 고향 모스크바에 있는 가족 걱정에 마음을 졸였다.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무장반란을 일으켜 남부 군사 요충지 로스토프나도누를 단숨에 장악한 뒤 모스크바로 향했기 때문이다. 뉴스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알렉산드라는 “정말 모스크바까지 가는 줄 알고 가족들이 너무 걱정됐다”면서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이민을 하고 싶어도 못 가는데 평소 1만 루블 정도인 터키행 항공권이 10만 루블이 됐던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도망을 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라와 전쟁에 반대하는 재한 러시아인들로 이루어진 ‘보이시스 인 코리아’는 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DDP 광장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러시아가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을 진압한 후 국내 러시아인들이 반전 시위를 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들은 러시아의 상황이 ‘혼란 그 자체’라고 전했다. 2017년 한국에 온 직장인 알렉세이 프로코베브(30)는 “바그너 그룹의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서 러시아에 있는 친구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토론을 벌였다”면서 “오늘까지도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다.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난 상황) 같은 일 아닐까”라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인 슈테판 이브게니(53)는 “푸틴은 과거 바그너 그룹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부인해놓고 지금 와선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로부터 10억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서 “집권하는 20년 동안 거짓만을 말해 온 푸틴을 믿어선 안 된다. 법과 규칙에 어긋나도 푸틴이 원하는 것은 이뤄지는 것이 바로 러시아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현지에 친구들을 둔 김다니엘(30)은 “모스크바에 사는 친구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어서 (반란을) 체감했다는데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반란이 하루 만에 그쳐 전국적인 파급력을 미치진 못한 것 같다”면서 “푸틴을 싫어하는 친구조차 푸틴 이후 제대로 된 대안이 과연 존재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무장반란 세력이 집권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잖나”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상황에 변곡점이 될 것이라 보는 시선도 있었다. 알렉산드라는 “반란군이 모스크바 근처까지 가는데도 친러시아 군인들은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면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모두 뉴스를 봤을 텐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힘을 얻고, 동원된 러시아군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3월부터 매주 반전 시위를 이어 온 이들은 ‘전쟁 반대’ ‘푸틴은 범죄자’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마쳤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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