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없고, 박새 드물고···서울숲에선 사람과 동물 중 누가 우선?
“박새나 뱁새가 거의 보이질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걷다보니 하층 식생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람쥐, 청설모, 두더지가 없어요. 먹이의 문제인 것 같네요.”
지난달 24일과 25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제8회 서울시 바이오블리츠(생물다양성탐사)에서는 모두 784종의 생물이 발견됐다.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하는 서울 생물다양성탐사 - 서울숲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시민 200명이 참가했다. 바이오블리츠(생물다양성탐사)는 생물을 뜻하는 바이오(Bio)와 대공세를 뜻하는 블리츠(Blitz)의 합성어로, 전문가와 시민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해당 지역의 생물종을 찾아 목록으로 만드는 행사다.
이번 서울숲 바이오블리츠는 첫날인 24일 조별로 식물, 곤충, 조류,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 등을 찾아보는 조사 및 교육과 둘째날 새벽의 조류 탐사, 오전의 분류군별 조사, 오후의 최종 종수 발표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시와 함께 행사를 준비한 자연기록 사이트 ‘네이처링’ 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일반 참가자들이 주로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 들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학부모가 아닌 성인 참가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개장 18년째를 맞은 서울숲은 서울 동부 시민들에게 중요한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성수동이 이른바 ‘뜨는 동네’가 되면서 점점 더 탐방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이용객이 늘어난 만큼 쓰레기통이 넘쳐나고, 많은 시민들이 땅과 풀밭을 밟는 ‘답압’ 등 영향으로 인해 숲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올해 서울숲 바이오블리츠에선 지난 7회까지의 바이오블리츠와는 달리 기대보다 생물다양성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여러 분류군 전문가들에게서 나왔다. 24일 아침 5시 30분부터 실시된 조류 조사에서 서정화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대표는 “서울숲 같이 큰 숲에는 박새나 뱁새가 많이 서식할만 한데, 거의 보이질 않는다”며 많은 시민들이 공원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면서 이 새들의 서식 공간이 될 만한 하층 식생이 부족해졌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새는 국내 대부분 숲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텃새이고, 흔히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국내 대부분 지역에 서식하는 텃새 중 하나다. 하지만 이틀 간의 서울숲 조사에서 이들 조류는 매우 적은 수만 확인됐다.
포유류 역시 도시생태계에 비교적 잘 적응한 편인 너구리와 족제비만 발견됐다. 우동걸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25일 오후 최종 종수를 발표하면서 “너구리, 족제비만 발견되고, 다람쥐와 청설모, 두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인공적으로 조성된 숲이다보니 먹이 자원의 건강성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 연구원은 2005년 서울숲이 개장할 당시 수십마리를 방사했던 다람쥐가 자취를 감춘 원인에 대해서는 길고양이에 취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로 나무에서만 생활하는 청설모와 달리 다람쥐는 먹이활동을 위해 땅에도 많이 내려오기 때문에 길고양이의 포식 대상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류와 포유류 외의 분류군에서도 서울숲의 종 다양성이 기대보다 적거나 개체 수가 많지 않았다고 최종 종수 발표에서 밝혔다. 버섯의 경우 많은 수의 나무가 서식하고 있음에도 공생성 버섯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사항으로 보고됐고, 곤충류도 사람들의 이용이 많다보니 다양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거미의 경우 인간의 간섭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개체 수가 많지 않았고,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의 경우도 습지의 수위가 균일하게 유지되지 않고, 물을 채웠다 뺏다 하는 일이 반복되는 탓에 전체적으로 개체 수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종수는 2014년 서울시와 국립수목원이 공동으로 개최했던 바이오블리츠 때의 777종에서 7종만 늘어나는 것에 그쳤다. 분류군별로는 식물 366종, 선태류 23종, 곤충 222종, 거미류 53종, 조류 33종, 포유류 3종,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 36종, 균류(버섯) 28종, 양서·파충류 8종이 확인됐다. 멸종위기종으로는 맹꽁이, 참매, 새호리기 등이, 천연기념물로는 원앙, 황조롱이가 확인됐다.
고수생태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류는 납자루, 버들붕어 등 총 12종이 관찰됐으며 앞으로 멸종위기종이 될 가능성이 있어 관찰 대상인 좀구굴치도 확인됐다.
또 기후변화 지표종으로는 꾀꼬리, 쇠백로, 제비, 청개구리, 연분홍실잠자리, 넓적배사마귀, 무당거미 등이 발견됐다. 가시박, 도깨비가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등의 생태계교란야생생물도 이름을 올렸다. 일명 러브버그라고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도 확인됐다.
환경단체, 전문가 등은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올해 바이오블리츠 개최장소를 서울숲으로 정한 것이 서울숲의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열리는 바이오블리츠가 자연적인 숲이나 습지에 비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지 않을 수 있는 서울숲의 실태를 파악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서울시 바이오블리츠는 2회 마포구 월드컵공원 때를 제외하곤 남산, 관악산, 북서울꿈의숲 등 기존에 숲이 존재했던 곳에서 이뤄져왔다.
강홍구 네이처링 대표는 “현실적으로 서울숲은 대규모 이용객을 염두에 두고 운영할 수밖에 없는 곳이긴 하지만, 하층 식생이나 습지 등에서 인간 중심만이 아닌 생물다양성 보존의 관점에서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새롭게 고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서울숲 바이오블리츠에 대해 “변화한 서울숲의 생태와 도심숲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였다며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됐는데, 올해는 탐사 시간과 참여할 수 있는 분류군 수를 늘리고 새벽 조류, 야간 곤충 탐사도 추진하며서 참여자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민들이 자연과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바이오블리츠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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