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소수 배려 노력 비웃는 미 ‘트럼프 대법원’…신뢰도 흔들

이본영 2023. 7. 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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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철옹성’ 연방대법원 잇단 ‘퇴보 판결’에
임신중지권·어퍼머티브 액션·학자금 탕감 ‘후퇴’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1일 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헌으로 선언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케임브리지/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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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넘게 단단히 뿌리내린 정책과 판례까지 뒤집으며 적극적으로 차별을 시정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자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노력을 무효화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보수 절대 우위’의 구도가 굳어진 대법원이 이틀간 다수 여론을 거스르는 판결을 세건이나 쏟아내자 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3개월 동안의 휴정기를 앞둔 재판 마지막 날인 6월30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은 의회가 만든 법률에 명시적 근거가 없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지난해 8월 구체적 내용이 발표된 정책은 효력을 잃게 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개인당 최대 2만달러씩 모두 4300억달러(약 567조원)의 대학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기로 해, 채무자 약 4천만명 중 상당수가 혜택을 기대하고 있었다. 공화당이 장악한 6개 주가 이 정책의 적법성을 다투겠다고 나서 이런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은 같은 날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서비스 차별을 금지한 콜로라도주 법률에 대해서도 위헌 판단을 내렸다. 닐 고서치 대법관은 대표 집필한 다수의견에서 “원하지 않는 표현 강요”는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밝혔다. 기독교 신앙에 따라 동성 결혼을 위한 누리집을 만들어줄 수 없다며 한 웹디자이너가 낸 위헌 소송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문화 전쟁’과 관련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결정이라 이를 둘러싼 파장 역시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은 전날인 29일엔 하버드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입학 사정에서 소수인종을 배려하는 ‘적극적 차별시정조처’(어퍼머티브 액션)를 취해온 것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려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흑인과 라틴아메리카계에게 유리한 제도는 백인과 아시아계에는 불리하므로 수정헌법 제14조의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 규정에 위배된다고 했다. 이는 다양성 확대를 위해 인종을 사정 요소로 고려할 수 있다고 한 1978년 대법원 판례를 스스로 깬 것이다.

이 판결들을 둘러싸고 파문이 확대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일반적 여론과 크게 괴리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임신중지권 유지 △어퍼머티브 액션 존치 △학자금 대출 탕감 등에 대한 지지가 각각 60%가 넘는다. 대법원의 판결이 보수적 남성·백인·기독교도 시각에 치우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어퍼머티브 액션 판결 소수의견에서 “수십년 된 선례와 중대한 진보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강경 보수주의가 1960년대 시작된 민권운동 이후 미국 사회가 수십년 동안 키워온 가치에 대한 반격에 나서 커다란 승리를 손에 쥔 꼴이다. 대법원은 1년 전엔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무효화했고, 공공장소 총기 휴대를 금지한 뉴욕주 법률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대법원을 둘러싼 현재 논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확고한 보수 성향을 지닌 3명(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배럿)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예고된 바 있다. 그로 인해 미 연방대법원의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보수 절대 우위’인 6 대 3으로 굳어졌다. 지난달 29~30일 나온 세 판결 모두 6 대 3으로 의견이 갈렸다.

반면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은 기본적인 윤리 의식을 의심하게 만드는 여러 스캔들로 화살을 맞고 있다.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공화당에 큰돈을 기부한 기업인의 지원으로 호화 공짜 여행을 여러번 즐기고 수상한 부동산 거래를 한 게 드러났다. 같은 보수 성향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공화당 후원자인 억만장자의 전용기로 공짜 여행을 한 사실이 최근 폭로됐다. 이 여파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온 미국 대법원의 권위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 미국 퀴니피액대가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1돌을 맞아 156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대법원의 업무 수행 지지도가 30%에 그쳤다. 2004년 조사가 시작된 뒤 최저치다.

이번 논란은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큰 정치 쟁점으로도 비화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퍼머티브 액션 판결이 나온 뒤 “정상적 법원이 아니다”라고 비난했고, 학자금 대출 판결에는 “헌법을 잘못 해석했다고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미 1600만명이 탕감 자격을 얻었다며, 대법원이 대규모 탕감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한 2003년 법 대신 1965년 제정 법으로 탕감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잇따른 퇴행적 판결을 적극 문제 삼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 구도를 만든 장본인이기에 내년 대선이 ‘대법원 심판’의 성격도 띨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일 유세에서 잇단 보수적 판결을 환영했다. 그는 “많은 대통령들이 대법관 지명 기회를 못 얻었지만 난 3명을 지명했다. 그들은 금”이라며 재선되면 대법관 9명을 모두 보수 성향으로 채우고 싶다고 했다. 미 대법관은 종신직이고, 진보 성향 대법관 중 최연장자인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69살이어서 이 말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의 폭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민주당에 달라고 호소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도 임신중지권을 선거의 주요 의제로 삼아 선전했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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