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 관객들, 왜 K-장녀를 외칠까
"한국인이라면 공감"…입소문 타고 역주행 시작
'엘리멘탈'은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은 이 작품 속 주인공을 보며 K-장녀를 떠올렸다고 말하곤 한다. '엘리멘탈'의 어떤 점이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걸까.
불, 물, 공기, 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를 배경으로 하는 '엘리멘탈'은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물 흐르듯 사는 감성적인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고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이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이다.
불 원소 캐릭터 앰버의 부모님은 파이어랜드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했다. 그중에서도 외딴 마을인 파이어타운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중이다.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 원소는 차별의 대상으로,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까지 있다. 앰버의 부모님은 낯선 땅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동시에 전통을 지켜가며 딸을 키워왔다. 외동딸 앰버에겐 이 가게를 물려받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해온 아버지가 바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앰버가 결혼도 불 원소와 하길 원했다.
앰버는 부모님의 희생에 자신의 희생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자신의 진짜 꿈을 펼쳐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나쁜 딸'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앰버에게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 원소 웨이드는 앰버에게 변화의 계기가 되는 인물이다. 가치관부터 성격까지 매우 다른 두 캐릭터가 특별한 관계를 쌓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많은 한국 관객들이 '엘리멘탈'을 보고 깊이 공감했다. 포털 사이트 평점란에는 "한국인이면 공감 안 될 수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엘리멘탈'이 미국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소 의아한 평가다. "K-장녀 성장기"라는 말로 영화를 표현하는 이도 있었다. 각종 SNS에도 앰버를 보며 한국 장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는 후기글이 게재됐다. '엘리멘탈'의 앰버가 부모님의 희생에 부채 의식을 느껴왔던 자식의 모습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아이인 만큼 더 큰 부모님의 기대, 평생 뒷바라지 해온 그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많은 장남, 장녀들이 갖고 있었던 고민이다. 바른 청년 이미지를 가진 이승기조차 SBS '써클 하우스'에서 장남의 부담감을 토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부모님의 기대가 보인다. 동생 성적표와 내 성적표의 무게가 다르다는 걸 (맏이는) 본능적으로 안다"면서 "내가 속이 막혀 있는지 몰랐는데 갑자기 눈물이 터질 때가 있다. 장남이 하나씩 응어리를 갖고 있는 듯하다"고 말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유발했다. 효의 정신을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아온 한국인, 그중에서도 맏이라면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유독 힘들었을 터다. 앰버의 고민이 K-장녀로 살아가고 있거나 이들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국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재밌는 점은 '엘리멘탈'의 피터 손 감독이 재미동포 2세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 픽사에서 유일한 한국계 감독이기도 하다. 손 감독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자신과 가족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냈다. 식료품 가게를 하던 부모님은 장남인 손 감독이 일을 이어받길 원했다. 할머니는 그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길 바랐다. 한국인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손 감독이 했던 경험과 고민들은 '엘리멘탈'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그 결과 K-장남, 장녀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자극한다는 입소문은 '엘리멘탈'의 역주행을 불러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23~25일 개봉 2주 차 주말 동안 49만 명 넘는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1위를 기록했다. 이는 개봉 첫 주말 42만 명가량을 동원했던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앰버의 성장기는 극장가를 찾은 K-장남, 장녀들에게 한동안 따뜻한 위로를 전할 전망이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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