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윤공희 대주교 40여년 전 그날 증언…"5·18, 나도 겁이 났다"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1980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재임 당시 5·18민중항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헌신해 온 윤공희 대주교가 40여 년 전 그날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2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따르면 윤 대주교는 지난 6월 30일 기록관 7층 세미나실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윤공희 대주교와 대주교를 수행한 엔다 수녀를 비롯해 이기홍·윤광장 변호사(제2대 5·18기념재단 이사장), 김준태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안성례 전 유네스코등재추진위원, 박용수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 국장,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일련의 사건들을 상기하며 회고했다.
그는 80년 5월19일 가톨릭센터 6층 집무실에서 계엄군의 잔악행위를 직접 목격했다.
윤 대주교는 "6층에서 골목길을 내다보니 젊은 신사가 피가 났다. 저 사람 빨리 응급치료해야겠는데, 나도 겁이 났다"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그 이야기의 사제와 같구나' 싶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 5·18운동 기간 김성용·조비오 신부와 협의해 두 신부가 수습위원으로 활동하도록 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끝난 후에는 진상규명 활동에 나섰다.
80년 6월4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 이름으로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성명서를 전국 천주교회에 배포했다.
그해 12월3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의장으로 광주항쟁 관련 수감자 전원 석방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전두환 신군부에 발송했다. 석방을 위해 4000여명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윤 대주교는 81년 3월31일 대법원에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정동년·배용주· 박노정 등 3명이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언급하며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만나 사면요청을 한 상황을 증언했다.
윤 대주교는 "대법원 재판과정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다음날 정동년 이사장의 부인 이명자 여사 등이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며 "김수환 추기경과 상의해 전두환씨를 만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두환씨를 만난 자리에서 "사면해 주십시오. 사면해 주십시오"라며 계속 요청했고 결국 4월3일 '사형' 선고된 사람들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80년 7월 신부 훈방과 관련한 일화도 전했다.
당시 보안대는 광주교구 소속 4명의 신부를 훈방겠다며 신병을 인도해 가라고 통보했다. 훈방조건으로 각서를 써야한다고 했다.
윤 대주교는 "각서를 읽어보니 첫머리에 죄목이 내란죄였다. 서류를 던져버리고 일어나 '신부들이 무슨 죄라고 어떻게 단정하느냐'고 보안대장에게 항의했다"며 "결국 죄목을 모두 삭제하고 신병을 인도한다는 새로운 서류에 사인하고 구금됐던 신부들과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81년부터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국 미사를 수차례 집전했다. 82년 5월18일에는 2주기 추모 미사에서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윤 대주교는 2000년 광주대교구에서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2022년 8월27일에는 천주교 염주대건 교회에서 백수 감사 미사가 한국 최초로 봉헌됐고 현재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생존해 있는 최고령 주교로 기록돼 있다.
윤공희 대주교는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데 필요한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주교는 간담회 후 기록관 6층 상설전시실이자 윤 대주교가 광주 교구장으로 봉직하던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집무실을 둘러봤다. 당시 작성한 메모지, 기록물과 집기류, 손때 묻은 가구들과 '윤공희 대주교의 일생' 사진 전시물 등을 관람했다.
박용수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은 "윤공희 대주교님이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외부에 알리고, 희생을 막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윤공희 대주교는 5·18민주화항쟁 기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 5·18민주화항쟁을 알리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노력하신 분"이라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 5‧18민주화운동의 기록이 시민 모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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