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북아프리카계 소년 경찰 총격 사망’ 후 닷새째 격렬 시위
교통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북아프리카계 청소년이 경찰의 총격에 숨진 사건 이후 프랑스 전역이 들끓고 있다. 닷새째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고, 경찰은 주말 이틀새 2000여명이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올해 초 연금개혁을 강행했다가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로 곤욕을 치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시위로 다시 한 번 정치적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현지시간) 르몽드 등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에서 719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다만 시위 나흘째인 지난달 30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전국에서 1311명이 체포된 것에 비하면 이날 시위의 폭력 수위는 다소 낮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시위에서 자동차 1350대와 건물 234채가 불탔고, 총 2560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앞서 프랑스 내무부는 방화와 약탈이 이어지며 시위가 폭동 수준으로 격화하자 전국 주요 도시에 경찰 병력 총 4만5000여명을 배치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체포된 시위대의 3분의 1 가량이 미성년자라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체포된 시위대 평균 연령이 17세이며, 13세도 다수 있다고 전했다.
시위로 인한 치안 불안이 고조되자 경찰은 경장갑차와 헬리콥터, 특수부대를 주요 도시 곳곳에 배치했다. 평소 관광객들로 붐비는 수도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경찰의 불심검문이 이뤄졌다. 지방 당국들은 시위 금지령과 함께 대중교통의 저녁 시간대 운행을 중단했으며, 일부 도시는 야간 통행금지를 발동했다.
앞서 ‘나엘’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알제리·모로코계 17세 소년이 지난달 27일 오전 교통 법규 위반으로 차를 멈춰 세운 경찰을 피해 달아나려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차 안에서 숨졌다. 경찰의 근거리 총격 장면이 찍힌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나엘의 사망 당일인 지난달 27일부터 5일 연속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연일 시위가 격화되자 마크롱 대통령은 2~4일 예정돼 있던 23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프랑스 국내 사정으로 외교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것은 올해 들어서만 이번이 두 번째다. 올해 초에는 연금개혁 반대 시위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프랑스 방문이 취소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청소년의 죽음을 이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시위에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우파 공화당과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단계에서는 이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말 프랑스 전역을 마비시킨 ‘노란 조끼’ 시위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프랑스 사회의 해묵은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특히 가난한 교외 지역에서 더 강하게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하면서도 프랑스 법 집행 기관에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은 부인했다. 그러나 프랑스 인권단체들은 최근 수년간 경찰의 총기 사용 등 폭력적인 진압이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한 사망자 대부분이 흑인이나 아랍계라는 점을 들며 법 집행 과정에 인종차별이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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