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좀 맞는 게 뭐 대수야? ····워킹맘의 ‘마인드 컨트롤’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런 엄마의 결심과 철학 덕분에 부모의 부재를 경험하지 않고 보냈던 어린 시절이지만, 그래도 속상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 비를 맞으며 울면서 혼자 육교를 넘어 집에 가야만 했던 날의 기억이다. 나를 속상하게 했던 것은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들어온 나를 너무도 태연히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때 엄마가 한 말은 “비 맞았네, 얼른 옷 갈아입어”였던 것 같다. ‘우리 딸 많이 젖었네, 엄마가 미안해’ 하는 한 마디만 더해졌더라면 나는 이날을 오랫동안 곱씹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때의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도 분명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오히려 지금 나는 어린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입을 지도 모를 상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나는 내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 내 선택 때문에 나의 딸들은 매일같이 엄마의 부재를 경험해야만 한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부모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내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엄마는 늘 죄인이라는 말을 늘 절감하며 매일을 보낸다.
하지만 최근 여성학자인 박혜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져있다. 박혜란 작가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우산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비에 젖으면서 자연스럽게 우산의 중요성을 깨닫고, 앞으로 비가 올 때는 우산을 꼭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습관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박 작가의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꼭 가져가며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 시점에 다시 어린시절 나의 엄마를 소환한다. 박 작가의 말처럼, “하교길 짧은 거리, 집에 뛰어와서 샤워하면 되는 거지 뭐” 라는 게 엄마의 뜻이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에게는 기억에도 남지 않아있는 일이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마도 이러한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경험 덕분에 준비물과 우산을 스스로 챙기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의 엄마가 ‘우리 딸 미안해’라고 말 했다면, 나는 더욱 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로 자랐을 지도 모른다.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내 아이는 앞으로 남은 어린 시절도 ‘워킹맘의 자녀’로 보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내 아이들의 기억 속 엄마는 ‘일하는 엄마’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늘 미안해 하는 엄마보다는 보다 대범하고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함께하는 시간에 뜨겁게 사랑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들이 나와 내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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