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좀 맞는 게 뭐 대수야? ····워킹맘의 ‘마인드 컨트롤’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7. 2. 1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대부분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한때 일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엄마는 일을 하는 기간에도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 대신 일종의 ‘재택근무’를 했다. 미술을 전공한 엄마는 집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일을 하더라도 집에서 아이를 맞아줘야 한다는 게 내 엄마의 철학이었다. 외할머니가 일을 해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던 엄마는 늘 자기의 엄마가 그리웠다고 한다. 그래서 ‘내 자식은 꼭 내 손으로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런 엄마의 결심과 철학 덕분에 부모의 부재를 경험하지 않고 보냈던 어린 시절이지만, 그래도 속상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아 비를 맞으며 울면서 혼자 육교를 넘어 집에 가야만 했던 날의 기억이다. 나를 속상하게 했던 것은 비 맞은 생쥐 꼴을 하고 들어온 나를 너무도 태연히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때 엄마가 한 말은 “비 맞았네, 얼른 옷 갈아입어”였던 것 같다. ‘우리 딸 많이 젖었네, 엄마가 미안해’ 하는 한 마디만 더해졌더라면 나는 이날을 오랫동안 곱씹지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물론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은 그때의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도 분명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오히려 지금 나는 어린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그렇지만 내 아이들이 입을 지도 모를 상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나는 내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 내 선택 때문에 나의 딸들은 매일같이 엄마의 부재를 경험해야만 한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부모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내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엄마는 늘 죄인이라는 말을 늘 절감하며 매일을 보낸다.

하지만 최근 여성학자인 박혜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더 잘 알려져있다. 박혜란 작가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우산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비에 젖으면서 자연스럽게 우산의 중요성을 깨닫고, 앞으로 비가 올 때는 우산을 꼭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었다.

그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우산을 가져다 주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습관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박 작가의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꼭 가져가며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이 시점에 다시 어린시절 나의 엄마를 소환한다. 박 작가의 말처럼, “하교길 짧은 거리, 집에 뛰어와서 샤워하면 되는 거지 뭐” 라는 게 엄마의 뜻이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에게는 기억에도 남지 않아있는 일이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마도 이러한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경험 덕분에 준비물과 우산을 스스로 챙기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의 엄마가 ‘우리 딸 미안해’라고 말 했다면, 나는 더욱 더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로 자랐을 지도 모른다.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내 아이는 앞으로 남은 어린 시절도 ‘워킹맘의 자녀’로 보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마도 내 아이들의 기억 속 엄마는 ‘일하는 엄마’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늘 미안해 하는 엄마보다는 보다 대범하고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함께하는 시간에 뜨겁게 사랑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들이 나와 내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어본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