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라 퀴어나라"···불볕 더위 속 서울퀴어문화축제 가보니

이승령 기자 2023. 7. 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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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을지로서 개최
참가자 "존재 자체로 환영받아 너무 좋다"
서울광장 사용 허가 두고 잡음 있었지만
을지로2가 일대 새 장소 물색해 준비해
세종대로서는 反퀴어축제 맞붗집회 열려
[서울경제]

“저 멀리 무지개가 있듯 우리를 방해해도 우리는 계속 커질 겁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1일 서울 을지로2가 일대에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날 축제에서 참가자들은 ‘피어나라 퀴어나라’를 슬로건으로 외치며 평소에는 드러내지 못했던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마음껏 발산했다.

1일 서울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썸머(36)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령 기자

축제 현장은 그야말로 ‘자유로움'의 극치였다. 주변인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자유롭고 개성있는 스타일을 뽐내며 축제를 함께 찾은 연인과 손을 잡고 축제를 즐기는 모습들이었다. 축제 참가자들은 허물없이 서로의 복장과 분장을 칭찬하고 함께 모여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축제를 찾은 허(18)씨와 구(17)씨는 “날씨는 덥지만 너무 행복하다”며 “한편으로 우리 정체성을 숨기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존재 자체만으로 다들 환영해줘서 너무 좋다”며 소회를 밝혔다.

1일 오후 서울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제는 각종 퀴어 단체 부스와 체험 부스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오후 12시께부터 시작됐다. 오후 2시께부터는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노래, 춤, 풍물패 등의 공연과 참가자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이날 축제를 찾아 무대에 오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많은 방해가 있었음에도 멋진 퀴어 퍼레이드를 올해도 어김없이 열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같은 시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동성애 반대)행사의 이름이 방파제라고 들었는데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 무지개색의 물결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축제에는 각국 대사관에서도 참석했다. 프랑스, 캐나를 비롯해 유럽연합 대표부와 태국정부관광청 등도 부스를 설치하고 축제의 다양성을 더했다. 더불어 ‘성소수자부모모임’ ‘국가인권위원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50여개가 넘는 각계 단체들도 부스를 설치하고 연대의 의미를 더했다.

축제 현장에 설치된 부스 중에서 ‘축제 공식 기념품’ 부스와 ‘무지개 네컷’ 부스가 특히 인기리에 운영됐다. 참가자들은 뜨거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긴 줄을 기다려 구매한 굿즈 인증샷을 찍고 연인, 친구와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서울광장 사용 불허에 새로운 장소 찾아
1일 오후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열린 서울광장 옆은 서울퀴어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시작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올해 축제는 서울광장이 아닌 을지로2가 일대의 도로 위에서 열렸다. 서울광장 사용허가가 나지 않은 탓이다.

지난 5월3일 열린 ‘2023년 제4차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서울퀴어문화축제’와 ‘청소년·청년회복콘서트’의 서울광장 사용 신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위원회에 따르면 두 행사 모두 행사일 90일 전에 동일 순위로, 동일 기간에 신고됐다. 하지만 청소년 유해물건 판매 등을 하지 못하게 조건부 광장 사용 승인을 의결했던 지난 축제에서 조건들이 이행되지 않았고 시민들의 불편사항 등을 들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광장 사용을 불허하고 기독교계 단체인 CTS 문화재단의 광장 사용을 승인했다.

이에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워원장은 6월7일 축제 개최 발표 기자회견에서 “불허를 결정한 위원들은 퀴어문화축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이는 2019년 서울지방법원의 판결 사실조차 모르는 편견에서 비롯된 판단이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서울지방법원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의미, 성격, 참가인원, 규모 등에 비춰볼 때 아동·청소년에 한해 집회의 참가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축제 주최 측은 결국 서울광장을 벗어난 다른 공간을 찾아야했다. 을지로2가 일대 축제 장소로 선택한 계기에 대해 김가희 서울퀴어퍼레이드집행위원회 기획단원은 “을지로를 선택함에 있어 집행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안전이다”며 15만 명이 참여하는 상황과 혐오력의 폭력이라는 위험요소를 고려해 오가는 동선이 확보되고 고립되지 않으며 경사가 없는 평평한 도로인 을지로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축제를 찾은 한 참가자는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는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역시 장소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反동성애 기독교 단체, 서울 세종대로 일대서 대규모 맞불집회 열어
1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2023년 통합국민대회 거룩한방파제’ 참석자들이 무대를 향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을지로 일대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시간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는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주최로 ‘2023 통합국민대회 거룩한방파제’의 집회가 개최됐다. 집회 참여자들은 반동성애·반차별금지법 등을 외쳤다.

이날 집회 참석을 위해 충북 청주에서 온 김주성(52)씨는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이 탈동성애 하기 바란다”며 “사람들은 동성애를 존중하고 인정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들이 그러면 허락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1일 오후 퀴어퍼레이드 행렬 옆으로 기독교 단체 회원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각역,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집회를 이어간 일부 기독교 단체 회원들은 퀴어문화축제 현장과 퍼레이드 구간에서 피켓을 들고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질서 유지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서울광장 사용을 두고 서울퀴어문화축제와 경쟁했던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도 예정대로 서울광장에서 개최됐다.

시민들도 들썩 들썩, 축제 대미 장식한 퀴어 퍼레이드
1일 오후 서울광장 인근을 지나고 있는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차량 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승령 기자

여전히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1일 오후 4시30분께 퍼레이드를 인솔할 첫 번째 차량이 을지로2가사거리를 출발했다. 출발 전부터 을지로2가 사거리 일대는 몰려드는 인파로 가득 차 경찰과 주최 측 봉사자들의 통행 유도가 이어지고 안내 방송이 계속됐다. 첫 번째 인솔 차량이 한 무리의 참가자들을 이끌고 나가자 그 자리를 또 다른 인솔 차량과 한 무리의 참가자들로 채워졌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화려한 퍼레이드에 일대를 지나는 시민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시청 인근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던 한 시민은 일행에게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냐”며 행진 대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리듬에 들썩이기도 했다.

퍼레이드 행렬은 명동성당-한국은행-서울광장-종각을 거쳐 약 1시간 30분만에 다시 을지로2가 행사장으로 들어왔다.

퍼레이드 이후 이어진 2부 무대 공연과 연대발언을 마지막으로 서울 퀴어문화축제는 마무리됐다. 이날 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는 “축제를 열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축제 만들어 내면서 혐오세력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항 용기가 필요한데 그것을 해낸 축제 조직위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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