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 환자인 외과의사 이수영 교수가 글을 쓰는 이유[인터뷰]

이진주 기자 2023. 7. 2.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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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병원 외과 의사의 치열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 <메스를 손에 든 자>를 펴낸 이수영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태형 기자

“지난 15년 동안 많은 환자를 만났고 함께 울고 웃었어요. 환자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흐려지는 게 아쉬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수영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40)가 대학병원 외과 의사의 치열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 <메스를 손에 든 자>를 펴냈다. 이 교수는 수술실에서 살려낸 환자들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환자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외과 의사로서의 고뇌와 속내를 책에 담았다.

최근 서울 용산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Zero’라는 필명으로 외과 의사의 일상, 의사의 눈으로 본 책과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15년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과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은상 등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다. 2014년 전남대병원에서 ‘당장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연고도 없는 화순에 내려가 현재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성적이 좋아 의대에 갔지만 암기 위주의 공부 방식이 맞지는 않아 의사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실제 환자들을 진료해보니 이 일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내 노력으로 환자들이 회복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외과를 지원했습니다.”

이 교수와 같은 해 졸업한 동기 150여 명 중 외과를 지원한 사람은 그를 포함해 4명뿐이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인기 학과를 지원하는 동기들과 비교해 저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환자를 살리고 싶어 선택한 외과지만 부모 앞에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릴 때나, 대장암 말기 환자의 배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배를 닫아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익숙해지기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수술 후 환자로부터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느끼는 기쁨과 희열로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 메스를 잡는다”고 밝혔다.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을 앓는 환자인 이수영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의사로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조태형 기자

그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의사로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 역시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을 앓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3년 차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환자 입장이 돼 보니 본인 스스로도 이 진단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현재는 주변의 권유와 아내의 응원으로 꾸준한 약물치료와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

크론병은 최근 종영한 인기드라마 <닥터 차정숙>에 관련 환자가 등장하며 논란이 됐다. 크론병을 유전성 질환이자 불치병 등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마음이 심란했어요. 크론병은 난치병이지만 불치병 또는 유전병은 아니거든요.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고 일상생활도 가능해요. 대장항문외과 의사로 꿋꿋하게 사는 제가 그 증거니까요.”

최근 지방에서는 외과를 비롯해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의 의사가 부족해 의료 공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는 전공의들의 외과 기피 배경에는 개원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과 외과 의사들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잣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방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 선행되지 않는 한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 “당장은 지역거점병원으로의 수송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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