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 환자인 외과의사 이수영 교수가 글을 쓰는 이유[인터뷰]
“지난 15년 동안 많은 환자를 만났고 함께 울고 웃었어요. 환자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고 흐려지는 게 아쉬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수영 화순전남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40)가 대학병원 외과 의사의 치열한 일상을 담은 에세이 <메스를 손에 든 자>를 펴냈다. 이 교수는 수술실에서 살려낸 환자들과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환자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외과 의사로서의 고뇌와 속내를 책에 담았다.
최근 서울 용산역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Zero’라는 필명으로 외과 의사의 일상, 의사의 눈으로 본 책과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2015년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과 보령의사수필문학상 은상 등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다. 2014년 전남대병원에서 ‘당장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에 연고도 없는 화순에 내려가 현재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성적이 좋아 의대에 갔지만 암기 위주의 공부 방식이 맞지는 않아 의사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실제 환자들을 진료해보니 이 일이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내 노력으로 환자들이 회복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외과를 지원했습니다.”
이 교수와 같은 해 졸업한 동기 150여 명 중 외과를 지원한 사람은 그를 포함해 4명뿐이었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인기 학과를 지원하는 동기들과 비교해 저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환자를 살리고 싶어 선택한 외과지만 부모 앞에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릴 때나, 대장암 말기 환자의 배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배를 닫아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익숙해지기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수술 후 환자로부터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 느끼는 기쁨과 희열로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 메스를 잡는다”고 밝혔다.
그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의사로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 역시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을 앓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3년 차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환자 입장이 돼 보니 본인 스스로도 이 진단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현재는 주변의 권유와 아내의 응원으로 꾸준한 약물치료와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
크론병은 최근 종영한 인기드라마 <닥터 차정숙>에 관련 환자가 등장하며 논란이 됐다. 크론병을 유전성 질환이자 불치병 등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마음이 심란했어요. 크론병은 난치병이지만 불치병 또는 유전병은 아니거든요. 약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고 일상생활도 가능해요. 대장항문외과 의사로 꿋꿋하게 사는 제가 그 증거니까요.”
최근 지방에서는 외과를 비롯해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의 의사가 부족해 의료 공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는 전공의들의 외과 기피 배경에는 개원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과 외과 의사들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잣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방의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 선행되지 않는 한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 “당장은 지역거점병원으로의 수송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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