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도 변할 수 있을까…고선웅 신임 서울시극단장 첫 연출작 ‘겟팅아웃’
바로잡을 ‘교’(矯), 인도할 ‘도’(導). ‘교도소’는 범죄자를 교정하고 교화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시설이다. 교도소라는 이름에는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겼다. 하지만 어떤 범죄자는 과연 ‘교도’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1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는 재판에서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말했고, 사형을 선고받은 뒤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연 흉악한 범죄자라도 건전한 사회인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서울시극단의 신작 연극 <겟팅아웃>은 ‘변화가 가능하도록 사회가 포용해야 한다’는 쪽이다. 유명 연출가인 고선웅이 지난해 9월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원작은 퓰리처상을 받은 극작가 마샤 노먼이 1977년 처음으로 발표한 희곡이다. 고 연출은 지난달 8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과오가 끝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공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금 관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과거가 주인공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안타깝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포용했으면 해서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됐습니다.”
연극은 주인공 알리가 교도소에서 8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 하루 동안의 시간을 담았다. 알리는 어릴 적 부모에게 보호를 받지 못했다. 살아가며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폭력으로 해결해왔다. 사회는 그런 알리를 특수학교와 교도소로 보내며 짐승처럼 취급했다. 이제 알리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사회에 복귀하며 ‘알린’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알리’로 대한다. 알린 자신에게서도 불현듯 과거의 모습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알린이 얻은 방은 그의 삶처럼 난장판이 된다. 계속 청소하지만 연극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는다.
고 연출은 하나의 무대에서 과거와 현재의 두 장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무대 1층을 알린이 가석방된 뒤 머무는 월세방으로, 2층을 알리가 복역 중인 교도소 독실로 꾸몄다. 주인공 배우 두 명이 각각 1·2층에서 연기를 펼친다. 암전(暗轉)해 장면을 전환하지 않고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의 서사를 완성한다.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 관객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다.
주인공의 심리와 감정을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연기력이 중요한 연극이다. 알린 역 배우 이경미는 과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내면을 밀도 높게 표현했다.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할 법한 선을 넘어서 폭발하는 장면이 마음을 움직였다. 알리를 맡은 배우 유유진의 연기는 생생한 날것의 느낌이었다. 감정을 셈여림 조율 없이 강하게만 쏟아낸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사나운 알리 역에 어울렸다. 당일 연극이 끝날 때마다 두 배우가 기진맥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알린은 자기 자신부터 포용하면서 새로운 삶의 출발점을 찾는다. 쉽게 화해나 용서를 말하지 않는 것도 작품의 미덕으로 보인다. 극장을 나올 때 많은 생각거리가 떠오르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개운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오는 9일까지 상연한다. 공연시간은 쉬는 시간 없이 105분.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3만원. 만 13세 이상 관람가.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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