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중국] 공자는 2천 년 넘게 존경받는데...왜 공자학원은 지구촌 곳곳서 퇴출될까
- ‘공자 사상’ 전파하겠다는 공자학원, 지구촌에서 퇴출 ‘수모’
- 문화혁명 때 박해받던 공자, 시진핑 집권 후 ‘각광’
이미 무더워진 6월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줄지어 향을 피우고 과일을 올려놓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이곳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시 콩푸(孔府)의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大成展)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한쪽에선 제사에 필요한 향과 제수 음식을 팔고, 또 소원을 적는 패도 판매하고 있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기자가 취푸를 방문했을 때가 마침 중국의 대입 수학능력시험 격인 가오카오(高考) 직전이었다. 대성전에 오는 사람 중 유독 학생들이 많이 보였던 이유가 이 가오카오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한 중년 여성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주변에 가오카오를 보는 자녀들이 많아서 공자님 앞에서 이들이 시험을 무사히 치러달라고 기도했다”고 답한다.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479년)는 춘추시대 유학(儒學)자이다. 주나라의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여 유학의 기초를 정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사실상 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노나라 정공(定公)의 신임을 얻어 지금의 법무부 장관 격인 대사구(大司寇)의 벼슬까지 올랐지만, 당시 권세가들에게 견제당하며 실각당한다. 공자는 이후 여러 제자를 이끌고 13년 동안 중국 천하를 돌며 자신의 정치 이념을 실현할 군주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하고 고향 노나라로 돌아왔다. 공자의 가르침은 그의 사후 2천 년 이상 동북아시아에서 위세를 떨치며 유교 문화권을 형성했지만, 정작 공자 자신은 당대에 자신의 이념을 현실에서 펼쳐 보이진 못한 것이다.
공자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에 생민미유(生民未有)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1678~1735)가 헌정했다고 한다. 생민미유는 <맹자>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세상에 나온 이래로 공자만 한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대단한 극찬이다. 짧은 식견으로 공자가 왜 이렇게 존경받는지 글에 담기가 두렵다. 혹여나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이 공자의 깊은 헤아림을 가리지나 않을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어릴 적부터 우스갯소리로 읊곤 했던 ‘공자왈~ 맹자왈~’에서 보듯이 적어도 동아시아권에서 공자는 그 위상이 실로 대단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겠다며 설립된 게 바로 공자학원(孔子學院/Confucius Institute)이다. 그런데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첨병으로 불리며 한때 전 세계 수백 곳에서 운영되던 공자학원 때문에 요 몇 년간 지구촌 곳곳이 시끄럽다. 공자학원을 바라보는 서방세계의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공자학원이 각 나라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서방 국가들의 판단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분위기도 더해졌다. 2004년 처음 세워진 이래 2020년 전 세계 160여 개 나라에서 560여 개까지 운영되던 공자학원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퇴출 대상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2005년 메릴랜드대에 처음 문을 연 공자학원은 점점 늘어나 2017년 118곳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 뒤 급격하게 줄어들더니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단 7곳의 공자학원만 남게 됐다. 공자학원이 해외에서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첩보활동까지 벌이는 것 아니냐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물론 중국 정부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의심의 눈초리는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공자학원을 허용했던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이미 2020년에 모두 폐쇄했으며, 핀란드는 올해까지만 기관을 운영 후 폐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도 공자학원을 내쫓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자학원이 세워진 나라는 우리나라라고 한다. 2004년 서울에서 공자학원 1호점이 문을 연 것이다. 전 세계적인 공자학원 퇴출 바람과 맞물려 몇몇 시민단체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공자학원 폐쇄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23개 공자학원 중 실제로 문을 닫은 곳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한때 급속하게 세를 불리며 지구촌 곳곳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던 공자학원이 퇴출 대상이 된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의 과도한 경계심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인지 언젠가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다만, 이런 부분은 생각해 볼 만 하다. 중국에서도 사실 공자가 찬밥 신세였던 적이 있으니, 1949년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부터 약 60여 년간은 공자의 가르침이 중국 내부적으로 잘 적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문화혁명 시기에 공자는 자신의 묘가 파헤쳐지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2012년 시진핑 현 주석이 집권한 이후 중국 내에서 공자 다시 배우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특색사회주의(中國特色社會主義)를 만들기 위해서일까. 시진핑 주석은 2014년 공자 탄생일에 국가주석으로는 25년 만에 직접 기념행사에 참석해 “공자 연구와 유학 연구는 중국인의 민족적 특성을 이해하고 현재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 뒤로 중국 정부는 대대적인 공자 홍보에 돌입했다.
처음 공자학원이 문을 열던 시점에서의 설립 정신과 이후 운영 과정에서의 중점 사안이 같은지 아니면 달라졌는지는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공자학원이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펼쳐진 중국의 패권주의와 공명효과를 가져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다른 나라들의 시선이 꼭 기우라고 치부하며 가볍게 넘어갈 수만은 없는 노릇일 것이다.
[베이징=윤석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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