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로 조성한 산약초타운 “약초는 없고 잡초만 무성”
주민 소득 증대 온데간데없고, 개인 한의원과 테마공원 등으로 둔갑
(시사저널=박치현·윤효성 영남본부 기자)
'느낌과 쉼이 있는 산소카페'. 경북 청송군의 블로그 타이틀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청송군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 덕분에 전국 최고의 청정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공시지가가 전국에서 가장 낮지만 친환경 유기농산물 재배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주왕산 심산유곡의 수많은 약초와 버섯, 토종 천연꿀은 일본에까지 수출되는 인기 특산품이다.
이곳에 '산약초타운'이 들어선 건 2013년. 이명박 정부 시절(2009년) 산림청이 공모한 산약초타운 조성사업에 청송군이 선정되면서다. 총사업비 50억원(국비 20억원, 도·군비 30억원), 26ha 넓이에 20여 종의 산약초 재배단지, 테마공원, 약초가공 체험장, 전시·판매장, 한방 체험공간 등을 갖췄다. 청송군은 여기서 수확한 산약초를 팔아 주민들에게 수익금을 나눠주고 한방 힐링센터를 지어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계획이었다.
시사저널은 6월23일, 조성된 지 10년째인 청송 산약초타운 현장을 찾았다. 약초밭에는 약초가 없고 죽은 잡초만 무성했다. 약초생태관에는 쓰다 버린 농기구들이 먼지를 덮어쓴 채 어지럽게 널려 있고 약초연구센터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산책로 이정표는 뿌리째 뽑혀 있고 약초를 심었던 자리에는 조경수들이 군데군데 식재돼 있다. 관리인조차 찾아볼 수 없는 청송 산약초타운은 장기간 개점휴업 상태로 버려져 있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행정의 방치 속에 약초타운이 아니라 흉물타운이 된 지 오래됐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청송 산약초타운, 문 걸어잠근 지 5년 지나
산약초타운은 주민들이 산약초를 재배하고 가공·관리에 직접 참여해 운영하도록 계획됐다.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에게도 소득이 돌아가는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주민들은 배제됐다. 청송군은 2014년 4월 덕성여대와 5년간 관리위탁 계약을 체결하고 약초 재배와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위탁계약 기간 중 이렇다 할 성과 없이 2019년 4월 위탁관리 계약은 끝났고 덕성재단은 철수했다. 결국 청송군은 매년 8000만원씩, 5년 동안 4억원의 관리비만 날리고 운영을 접었다.
산약초타운의 실패는 거창한 계획만 있을 뿐 세부 실천사항은 부실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정미진 청송군의회 의원은 "주민과 전문기관이 공동 운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지역 특성에 맞는 아이템을 도입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고,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안일한 행정과 디테일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려진 산약초타운을 재정비해 약초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들어와 마음껏 약초를 재배·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지역 농가와 연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송 산약초타운은 문을 걸어잠근 지 5년이 지났다. 청송군 관계자는 "효율적인 활용 방안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아 산림조합중앙회 위탁관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 산청군에는 지리산 청정 환경에서 1000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고 있다. 또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은 어린 시절을 여기서 보냈고 그의 스승인 유의태 선생의 고향이기도 해, 유서 깊은 한의학의 고장이다. 이곳에도 산림청 공모사업으로 국비 50억원을 지원받아 국내 1호 산약초타운(2012년)이 들어섰다. 하지만 무늬만 산약초타운이지 애초부터 한방 체험공간 위주로 지어져 주민 소득 증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약초타운 안에는 허준의 집이란 의미에서 '동의본가'란 이름을 붙인 한옥 11동이 있다. 진료실과 체험동, 곳간채, 정자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광객들은 여기서 머무르며 진맥과 명상·한방 마사지·기공 등 한방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산청군은 이 시설을 통째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에 매년 3300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5년간 빌려줬지만 운영 실패로 2020년 문을 닫았다. 산청군은 2년 동안 비워둔 산약초타운을 지난해 한의사 A씨에게 다시 빌려줬다. 그런데 임대료를 놓고 뒷말이 많다. 첫 임대료(3300만원)의 3분의 1도 안 되는 700만원에 임대계약을 하면서다. A씨는 50억원짜리 산약초타운을 단돈 월세 58만원에 개인 한의원으로 쓰고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공모로 사업자를 선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약초타운 인근 마을에 사는 B씨는 "주민들이 약초를 키워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산약초타운을 짓는다고 해놓고, 그 비싼 시설을 한의원에 임대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누가 그렇게 했는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국 산청군의회 의원은 "운영방식도 모호하고 턱없이 싼 임대료는 이해가 가지 않아 해당 부서에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약초 심었으나 다 실패…펜션사업으로 수익"
산약초타운은 2012년부터 2015년 사이 전국 5곳(경북 청송, 경남 산청, 충북 제천, 강원 화천, 전북 진안)에 조성됐다. 적게는 25억원에서 많게는 70억원까지 모두 242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현재 제천 한 곳에서만 주민 소득이 약간 발생할 뿐 나머지 4곳은 방치(청송), 적자 운영(화천), 임대(산청), 테마공원(진안) 등 당초 조성 취지와 어긋나는 파행 운영 상태다.
이유는 산약초타운이 애초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산림청은 현장실사나 경제성 분석도 하지 않고 지자체가 내놓은 사업계획서만 보고 국비를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허술한 서류심사만으로 사업자를 선정한 결과 국민 세금만 날리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 부처와 지자체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당시 국감자료를 보면 산약초타운 3곳은 하루 방문객이 10명 미만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다. 제천은 사업 주체인 영농법인에 문제가 생겨 정상 개관을 하지 못했다. 청송은 3년간 매출이 '0원'이었다. 진안과 화천은 대학 연구팀과의 협력이 무산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산약초타운의 부실 논란이 확산되자 산림청은 지자체와 함께 새로운 운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6년 전 국정감사 지적 이후 산림청이 내놓은 개선 방안이 얼마나 이행됐을까? 산약초타운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햇수로 11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조합원 64명이 출자해 영농조합을 설립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은 제천 산약초타운이 유일하다. 연간 매출액은 5억원. 적지만 조합원들은 배당금을 받아간다. 그런데 수익금 대부분은 약초 재배가 아닌 펜션사업에서 나온다. 이곳의 김호영 대표에게 산약초타운에 약초가 없는 이유를 물어봤다. "작약과 더덕, 구절초 등 여러 가지 약초를 심어봤지만 실패했다. 밀림 형태의 우리나라 산지 특성상 약초(저상식물)는 큰 나무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재배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실정이다. 약초로 수익을 창출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펜션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의 5개 산약초타운 중 약초가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산림청은 예산만 퍼준 후 손을 뗐고 관리를 떠안은 지자체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 타당성 검토도 없이 시작한 '선심성' 산약초타운이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책임지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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