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치매연구에 배고프다"...최고과학기술인상에 의사과학자 '고규영'
치매를 유발하는 뇌척수액 노폐물 주요배출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한 고규영 KAIST 특훈교수가 2023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올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에 고 교수를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과학기술정통부는 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하는 제1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개회식에서 수상자에게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하고자 2003년 제정됐다. 올해까지 총 46명이 수상했다.
올해 수상자는 지난해 말부터 공모와 발굴, 추천을 통해 접수한 후보자 23명을 대상으로 3단계 심사과정을 거쳐 선정됐다. 경제발전 기여도와 국민생활향상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평가했다.
올해 수상자에 선정된 고 교수는 KAIST 의과학대학원에 재직 중인 의사과학자다. 뇌 속 노폐물 배출경로와 림프절에 도달한 암세포 생존전략을 규명한 성과가 대표적이다. 관련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 연구는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경로가 뇌 하부에 있는 뇌막 림프관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폐물 배출능력이 떨어지는 '뇌막 림프관 기능 저하'도 함께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뇌의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고 교수는 또 림프관을 경유하는 암세포가 림프절로 전이하기 위해 지방산을 핵심 연료로 활용한다는 사실도 최초로 규명했다. 기존 연구에선 대부분 암세포가 포도당을 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고 교수는 기존 암 연구와는 다른 접근법을 적용해 면역기관인 림프절에 전이돼 성장하는 암세포의 생존전략을 규명했다. 향후 암 치료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외에도 암성장과 림프절 전이에서 암혈관과 림프관의 특성, 쉴렘관(각막주위 림프관)의 항상성 유지와 녹내장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 등 림프관 관련 연구에서 성과를 내놓았다.
고 교수는 앞서 국제혈관생물학회(IVBM) 회장을 역임했으며 2015년 7월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단장으로 선정돼 활발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수상 소감을 전한다면.
“기쁘다. 지금까지 같이 연구해 온 연구원, 학생연구원, 국내·외에 계신 동료 연구자들에게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Q.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하는 뇌 속의 노폐물이 뇌 밖으로 배출되는 주요 뇌막 림프관이 뇌 하부에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 이러한 연구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활동을 많이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만큼 노폐물과 독성물질을 많이 생성한다. 이 물질들은 150 ml의 뇌척수액에 녹아 있는데 림프관을 경유해 배출돼야 한다. 그러나 그 배출경로가 확실하지 않아 지금까지 난제로 남아 있었다. 이를 밝히고자 우리 연구팀이 도전해 성과를 이뤘다.”
Q. 연구 결과가 질병치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발견한 뇌막 림프관을 통해 배출되는 뇌척수액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소한다. 이때 노폐물이 너무 많이 뇌에 쌓이면 치매 같은 뇌퇴행성 질환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 배출을 원활하게 해주면 치매 방지 및 진행을 막을 수 있다.”
Q. 현재 계획 중인 연구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발견은 쥐와 같은 실험동물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는 영장류에서 재현하고 있다. 훗날에는 치매가 확진된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요법이나 물리적인 자극을 통해 인지능력이나 기억력이 회복되는지 확인하는 연구에 도전하고 싶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는 만큼 치매를 방지하는 연구는 앞으로 더 주목받을 것이다.”
Q. 임상의사가 아닌 의사과학자로의 삶을 택한 이유와 직업적 매력은.
“양쪽을 다 알고 있으니 연구의 폭과 깊이가 더 있는 것 같다.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를 가지고 기초 연구를 하니 더 깊은 역량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연구와 더불어 인재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연구자이자 스승으로서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세대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있는 것 같다. 해당 분야를 공부할수록 연구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이다. 차분히 재미있게 집중하다 보면 중요한 발견을 하고 그에 따라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바닥부터 올라가야 한다.”
Q. 연구철학, 좌우명은.
“지금도 연구에 배가 고프다.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죽는 것이 꿈이다.”
Q. 앞으로의 연구 목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이후 우리의 모세혈관 및 림프관 연구방향을 뇌를 포함한 머리와 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정말 흥미로운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치매치료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신약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
[박건희 기자,박정연 기자 wissen@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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