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전쟁'에 '위축' 우려하는 팩트체커들
[글로벌팩트10] 팩트체크 컨퍼런스에서 정부·정치권 대응에 우려
"가짜뉴스 용어 그만… 트럼프 때 부작용 이미 목격했다"
규제·소송 난무하는 '진실판정의 사법화'에 팩트체커들 "해법 아닌 위축"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정치권 공방 속 정부의 '가짜뉴스' 규제 흐름에 팩트체크 기사마저도 정파적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며 팩트체커들이 '위축 효과'를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부정하기 위해 '가짜뉴스' 용어를 사용한 것처럼 팩트체크가 정쟁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판정을 언론이 아닌 검찰, 법원에 기대는 '진실의 사법화'도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지난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와 국제팩트체킹연맹(IFCN)이 주최한 '글로벌팩트10'이 열렸다. 이날 '한국의 팩트체킹 발자취를 조명하다' 세션에선 실제 팩트체크를 했던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 이경원 SBS 기자와 함께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원석 미디어정보리터러시 오픈네트워크(MILON) 대표 등이 왜 한국에서 팩트체크가 힘든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정부는 '가짜뉴스 퇴치'를 최우선 미디어 과제로 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각종 공식 석상에서 가짜뉴스 문제를 강조한 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국민통합위원회 등이 가짜뉴스 대응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가짜뉴스' 용어는 기준이 모호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기 쉽다. 학계에선 오남용을 막기 위해 생산자 의도에 따라 '허위정보' '허위조작정보'나 '오정보' 등으로 구분한다. 가짜뉴스로 뭉뚱그리다 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딱지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때리기 전쟁 시작했다]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는 “진영이 다른 이들이 서로를 공격할 때 주로 쓰다보니 허위조작정보란 다소 어려운 개념보다 가짜뉴스가 통용되고 있다. 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YTN 기자를 지냈던 최원석 대표는 “잘 알다시피 지난 수년간 우리는 허위조작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노력해왔다”며 “팩트체크 결과가 '가짜뉴스'로 불리는 사례를 우리는 미국 트럼프 정부 때 목격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가짜뉴스 공방이 지속되면 팩트체크는 자연스럽게 위축된다. 팩트체크를 해도 정치인이 '가짜뉴스'라 규정하면 그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 이경원 SBS 기자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불리한 팩트체크 기사를 보면, 기사를 쓴 팩트체커를 공격하고, 나아가 팩트체크 저널리즘 자체를 불신하는 경우를 여럿 보게 된다”며 “사실 한국은 정치 팬덤 문제가 심각하다. 개인적으로 극렬 좌파, 극우 적폐 세력이라는 공격을 동시에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는 “심지어 지난 대선 때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서, 상대 후보의 발언을 검증하겠다며 실시간으로 팩트체크 결과를 기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말이 팩트체크지 사실 검증이 아니라, 정치적 비난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모습은 정치권이 앞장서 팩트체크를 오염시키는 상징적 장면”이라고 말했다.
팩트체커를 넘어 팩트체크 기관까지도 공격받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은 SNU팩트체크 사이트의 편향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요구한 바 있고 지난 1월 국민의힘은 SNU팩트체크센터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가짜뉴스 선동자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졌던 시민참여 팩트체크 서비스 '팩트체크넷'은 지난 2월 윤석열 정부 아래 서비스가 종료됐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정부 때 만든 시민 참여 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관련 기사 : '네이버 뒷돈 받은 편향 팩트체크' 국민의힘 주장 적절한가]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한 정권이 교체되면 그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재정적으로 독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SNU팩트체크센터는 그간 민사 형사 소송을 다 겪어야 했다. 각각 무혐의 처분과 원고 패소로 끝나기는 했지만, 재판이 끝나기까지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팩트체크를 하는 기관으로서는 이러한 소송들이 활동을 위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소송, 규제가 난무하는 현상, '진실판정의 사법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팩트체크 결과에 대해 소송을 걸고, 가짜뉴스 판정을 사법기관에 기대는 것이 본질적으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팩트체커들은 입을 모았다.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는 “문제는 소송이 해법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가짜뉴스는 흑과 백을 넘어 회색지대에 있는 경우도 있다. 80%는 틀리고 20%가 맞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법원은 '허위정보에 가깝다고 보여지지만,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은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판결은 해법이 되기보다 오히려 소송에 임한 당사자들, 혹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내가 맞지 않았느냐'는 주장의 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파성 문제는 팩트체크에 있어 한국 언론의 큰 숙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0대 국회 기간(2016~2020년)에 가짜뉴스 또는 허위조작정보를 규제하기 위한 법률안이 27건이 나왔다. 더 재밌는 건 이 법률안에 누가 동의를 해서 발의가 됐는가 보면 색깔이 다 다르다. 즉 보수당은 보수당, 진보당은 진보당 이런 모든 정당이 독립적으로 자기 의원만 참여하는 법률안을 만들었다는 의미”라며 “정파적 관점에서 가짜뉴스 규제 법을 남발한다는 건 표현의 자유를 위축할 수 있기에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팩트체크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잘못된 점이 있을 경우 오류를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팩트체크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팩트체크 활동을 위축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법적 행정적 규제를 이용할 위험성은 언제나 있다. 이러한 '진실판정의 사법화' 경향은 팩트체크를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짜뉴스 관련 소송이 선호되는 이유는 언론보다 사법부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언론이 스스로의 신뢰도를 높이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 알고리즘 보수언론 불리하게 변경? 방통위 ‘실태점검’ - 미디어오늘
- 300만 인천시민의 KBS, 제대로 하셨습니까? - 미디어오늘
- 언론노조 이어 PD연합회도 이동관 방통위원장 선임 ‘반대’ - 미디어오늘
- 국민의힘 의원들 수조물 마시자 JTBC “굳이 먹어야 했는지” - 미디어오늘
- 부자들의 환경주의, 서울국제환경영화제 - 미디어오늘
- [슬기로운 서평생활] 책이 전통매체라면, 책방은 새로운 미디어 - 미디어오늘
- 박찬욱 감독이 ‘남의 나라’ 얘기를 연출하는 이유 - 미디어오늘
- 주장하지 말고 분석합시다 - 미디어오늘
- 생활동반자법과 한동훈의 세계 - 미디어오늘
- 챗GPT는 미성년자가 혼자 이용해선 안 된다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