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다이궁·관광객 사라진 중 ‘룽옌항’…서해 여객 뱃길 언제쯤

최현준 2023. 7. 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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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전 평택~산둥성 룽옌항 여객 수요 ‘대박’
현재 화물 이송만…한-중 갈등에 여객 회복 기약 못해
지난달 25일 오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룽옌항에 대룡해운이 운영하는 페리호 동방명주 8호가 정박하고 있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작년 말에 코로나19 봉쇄가 풀리면 올해부터 여객 수송이 재개되나 기대했어요. 그런데 아직 기약이 없네요.”

중국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항구인 산둥성 웨이하이시 룽옌(용안)항. 용머리를 닮은 땅의 눈 부분에 자리했다고 해서 ‘용의 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에서 경기 평택까지 직선거리는 서울~부산보다 가까운 370㎞다. 지난달 25일 룽옌항에서 만난 정홍(65) 대룡해운 대표는 전날 저녁 평택항을 출발해 이날 오전 8시 반 입항한 ‘동방명주(오리엔탈펄) 8호’(2만5000톤)를 바라보며 아쉬움 가득한 투로 말했다. “참 안타까워요. 코로나만 없었다면….” 이날 배엔 승객은 한명도 없었고, 화물 컨테이너만 147개(TEU)가 실려 있었다. 승객 없는 ‘반쪽짜리’ 뱃길이 3년 반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지난달 25일 오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룽옌항에 정박한 동방명주 8호에서 컨테이너가 트럭에 실려 나오고 있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2019년 9월 평택~룽옌 항로에 처음 취항해 매주 세차례씩 서해를 오가던 파나마 국적 카페리호 동방명주 8호는 취항하자마자 ‘대박’을 쳤다. 정원 600~700명인 배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승객 1500명과 컨테이너 210개(TEU)를 실을 수 있는 배가 등장해, 한국과 중국을 오갈 때마다 1000명 이상의 승객과 100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실어 날랐다. 취항 때부터 이 배를 책임져온 조상헌(74) 선장은 “중국인 단체 여행객과 한국인 여행객, 한국 제품과 중국 상품을 대리 구매하는 다이궁들로 배가 늘 북적였다”며 “12시간 이상 운항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고 말했다.

취항 넉달 만인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다. 운항 수익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여객 운송이 중단됐다. 이 기간에도 화물 운송은 유지됐지만, 한·중 양쪽 모두에서 생산·소비가 위축되면서 물동량이 크게 줄었다. 컨테이너가 실리는 동방명주 8호의 1~4층은 계속 사용되었지만, 객실·면세점·식당·노래방 등이 자리한 5~7층은 3년 넘게 텅 빈 상태다. 대룡해운은 2020~2021년 적자를 냈고, 지난해 해외 직구(직접구매) 등 화물 운송이 늘면서 2022년 어렵게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달 25일 오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룽옌항에 정박한 동방명주 8호 식당의 모습. 약 3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3년 넘게 텅 비어 있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것은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종료였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결단을 내리면서 올 초부터 여행객도 늘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은 지난 3월 항로 여객 운송을 허용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허가를 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말 일부 한-중 노선에 허용하기로 했던 여객 운송 허가도 최근 갑자기 취소했다.

정 대표는 “중국 정부가 올해 초 안전 점검을 했다. 지난 4월이나 6월엔 여객 운송을 허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최근 급격히 나빠진 한-중 관계 등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중국이 늦장을 부리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갑갑한 상황은 한 해 200만명을 실어 날랐던 한·중을 잇는 15개 항로에 모두 적용된다. 한-중 수교 전인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양국 간 뱃길 왕래는 현재 한국의 인천·평택·군산과 중국의 웨이하이·칭다오·단둥·옌타이·다롄·스다오·친황다오·잉커우·롄윈강·르자오·룽청 등을 잇는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두 화물 운송뿐이다.

지난달 25일 오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룽옌항에 정박한 동방명주 8호의 단체 객실. 저녁에 승선한 따이궁 등은 이곳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하선한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막힌 바닷길로 인한 피해는 해운사만 입는 게 아니다. 여객 운송 금지로 다이궁(대리 구매상, 보따리상)의 활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이를 활용해 사업을 하는 한·중 양쪽의 중소 상인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국 도시인 웨이하이엔 다이궁 수십수백명을 거느린 대리 구매 조직이 여러개 있는 중심지여서 타격이 더 크다.

다이궁들은 한국에선 화장품·의류·전자제품·담배·술 등, 중국에선 주로 고춧가루·참기름·마늘 등 식재료를 사서 나른다. 항공삯의 절반 정도인 뱃삯의 이점과 면세 한도를 활용해 물건을 나르는 다이궁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성’이다. 부탁한 뒤 2~3일이면 물건을 받을 수 있어, 샘플이나 기계 부품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기업들도 요긴하게 활용해왔다. 이들을 양국 무역의 ‘실핏줄’이라 부르는 이유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서는 항로 승객의 절반 정도가 다이궁일 것으로 추정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한-중 여객 항로를 이용한 200만명 중 약 100만명이 다이궁이라는 추정이다.

웨이하이시에서 건축자재 사업을 하며 종종 다이궁을 이용했다는 정광영 웨이하이 한국인회 부회장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게 활발하게 돌아가야 한-중 무역도 활성화된다”며 “양국 관계가 풀려 다이궁이 다시 시작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한국 거리인 ‘한러팡’에 농악대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한-중 간 왕래가 줄면서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중국 도시’로 불리며, 한국 공장·상점·식당 등이 많았던 웨이하이에선 점점 한국의 자취가 옅어지고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의 격전지이자 풍부한 해산물로 유명한 웨이하이는 지난달 22~24일 단오절 연휴를 맞아 중국인 관광객들로 도시 전체가 북적였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일부 골프 관광객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달 24일 웨이하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한러팡의 ‘중-한 먹자골목’ 들머리에는 한국 농악대 구조물이 설치되고 간판에 한글이 병기돼 있었다. 한국색을 강조했지만 떡볶이 정도를 빼고 한국 음식을 팔거나 먹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3년간 이어진 여파로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한국 상인들이 점포를 정리했고, 그 빈자리를 중국 상인들이 빠르게 채웠기 때문이다. 정동권(60) 웨이하이 한국인회 회장은 “중국 관광객이 이렇게 많은 이 거리에, 예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5~6곳 있었지만 지금은 딱 1곳 남았다”며 “웨이하이 교민도 코로나 직전 3만2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1만2000명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코로나 3년을 견딘 교민들이 최근 예상치 못한 한-중 관계의 냉각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달 25일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한국 거리인 ‘한러팡’에서 중국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지난달 25일 웨이하이의 한 카페에 모인 몇몇 교민들은 최근 한-중 간 갈등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중국의 태도가 경제 회복보다는 사회 통제 쪽에 방점이 찍혀 있고, 한국 역시 한-미 관계에 치우쳐 중국과 관계를 대결적으로 몰고 간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 교민은 “한국 정부가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좋지만, 하지 않아도 될 얘기로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양국 정부가 갈등할 때마다 현지 교민들이 체감하는 충격은 한국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경직돼 있는 양국 간 비자 발급이 완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교민은 “양국 교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비자 발급이 가장 중요하다”며 “중국이 먼저 비자 발급 장벽을 높이면서 한국도 비슷하게 대응했다. 양국 간 대화로 비자 발급을 활성화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글·사진 웨이하이/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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