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소나기 맞으러 황순원 마을 갑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3. 7. 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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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매시 정각 인공소나기 쏟아져/아이들 소설 ‘소나기’ 주인공 처럼 흠뻑 비맞으며 신나는 시간/황순원 문학관엔 작가의 일생 살아 숨쉬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광장 인공 소나기
“2분 남았다!” 한 꼬마가 목이 터져라 외치자 소나기광장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부모 손을 뿌리치고 한꺼번에 달려 나온다. 시계가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키는 순간, 4개 녹색기둥 끝에서 미사일처럼 뻗어나가는 거대한 물줄기. 약 10여m 상공에서 야자수처럼 포물선을 그리더니 소나기가 되어 내린다. 아이들은 옷이 흠뻑 젖어도 좋나 보다. 신나게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는 걸 보니. 황순원 단편소설 ‘소나기’의 주소년·소녀가 된 것처럼.
오두막과 수숫단
◆‘인공 소나기’ 맞으러 황순원문학촌 가볼까

섭씨 30도를 웃돌던 뜨거운 더위는 인공 소나기 한방에 깜짝 놀라 달아나 버렸나 보다. 순식간에 공기가 서늘해지는 걸 보니. 비를 맞은 아이들은 서운한 표정이다. 오늘의 인공 소나기쇼가 오후 5시로 모두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부모 손을 잡아끌며 한 번 더 소나기를 내려 달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없으니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재미있는 퍼포먼스로 아이들 사랑을 듬뿍 받는 이곳은 경기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어린시절 딱 한번 읽은 소설 ‘소나기’는 어른이 돼서도 마치 내가 겪은 추억처럼 가슴 한편에 살아 숨 쉬니 참 대단한 작품이다. 그런 소설 속 맑고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야기와 소설에 묘사된 장면을 실사로 재현한 곳이 바로 소나기마을이다.

황순원문학관 앞 분수 조형물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는 수상스키어들을 부러워하며 두물머리에서 15분을 북한강을 거슬러 달리면 소나기마을에 닿는다. 입구 언덕에 꾸민 보리밭에는 허수아비들이 히쭉 웃으며 여행자를 반긴다. 입장권이 단돈 2000원에 불과하니 아이들 손잡고 반나절 나들이로 즐기기에 매력적인 ‘가성비 갑’ 여행지다. 안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소설 속 장면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주인공들이 소나기를 피하던 수숫단이 잔디광장 주변을 꾸미고 있어서다. 황순원문학관 앞 분수에는 홀딱 벗은 아이 7명이 입을 막거나 귀를 막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조형물에 설치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린다. 분수 근처 오두막을 차지한 가족은 시원한 그늘에서 도란도란 떠들며 맛있는 김밥을 나눠 먹는다.

아이들은 인공 소나기를 맞는 것이 목적이지만 어른들도 다양한 산책로가 마련돼 천천히 걸으며 머리를 식히기 좋다. 1코스(10분)는 소나기광장∼사랑의 무대∼고백의 길, 2코스(15분)는 AR소나기 안내판∼개울가∼야생화꽃밭∼수숫단 속∼소년의 등∼소녀와 이별∼소녀와 함께 춤을∼소녀와 기념사진∼소년과 기념사진을 따라 걷는다. 3코스(20분)는 문학관 왼편 황순원묘역에서 시작해 수숫단 오솔길∼고향의 숲∼해와 달의 숲∼들꽃마을∼학의 숲∼송아지들판∼너와 나만의 길∼고백의 길∼소나기광장으로 이어진다. 4코스(50분)는 3코스를 돌아 매표소를 통과한 뒤 목넘이고개∼징검다리까지 다녀온다.

수숫단
소나기광장 인공소나기
소년과 소녀가 꽃을 꺾으며 가까워지기 시작한 곳은 들꽃마을로, 송아지를 타며 놀던 장면은 송아지들판으로 꾸몄다. 너와 나만의 길은 소년이 소녀를 업고 물이 불어 있는 도량을 건너는 장면을 재현했다. 소녀가 건넨 대추와 소년이 따던 호두를 소재로 호두, 밤, 대추를 딸 수 있는 고백의 길도 마련해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소설 한 편을 모두 읽는 느낌이다. 해와 달의 숲은 장편소설 ‘일월’의 무대이며, 단편 ‘학’에서 어린 시절 우정을 떠올리며 갈등을 승화하는 장면은 학의 숲으로 만들었다. 소설은 AR앱으로도 다시 태어나 소나기광장 곳곳에 설치된 QR마크를 활용하면 증강현실 속 소나기를 만난다.
황순원문학관
황순원 시 작품
◆문학관에 살아 숨 쉬는 황순원 발자취

수숫단 모양으로 지은 3층 규모 문학관에도 볼거리가 많다. 일생 동안 시 104편, 단편 104편, 중편 1편, 장편 7편을 남긴 황순원의 작품은 ‘순수성과 완결성의 미학’으로 한국 문학사의 한 봉우리를 차지한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 ‘소나기’ ‘별’ ‘목넘이 마을의 개’ ‘그늘’ ‘기러기’ ‘독짓는 늙은이’와 장편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등이 있다. 언론 자유가 철저하게 통제되고 한글 사용이 금지되던 일제강점기에 많은 작가들이 일본에 협력해 한글을 버렸다. 하지만 황순원은 우리말을 지키려는 비장한 각오로 글쓰기를 시작해 한치의 흔들림 없는 문학 외길을 걸었다.

황순원문학관
1전시실에선 영상과 유품 등을 통해 작가의 생애와 문학을 한눈에 볼 수 있고, 2전시실은 ‘독짓는 늙은이’ 등 대표작을 조형물로 꾸몄다. 영상체험관은 ‘디지털 소나기 산책’으로 단장했다. 1관은 ‘하늘을 담은 유리상자:쪽빛하늘’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함이 페인팅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펼쳐진다. 2관은 은하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로 벽면에 소설 속 개울가 모습이 재현된다. 바닥면 징검다리와 개울이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인터렉티브 기법으로 만들어 보다 실감나게 소설 속 장면을 즐길 수 있다.
황순원문학관
‘공부 안 해도 되는 문학교실’
3관은 ‘판타지아 소나기:서당골의 꿈’. 벽면의 환상적인 영상과 바닥의 몽환적인 영상이 연동돼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는 터치형 인터렉티브 체험공간으로 꾸몄다. 은하수 방에선 소나기가 그친 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질 듯 펼쳐진다. ‘공부 안 해도 되는 문학교실’도 들러보길. 옛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한 곳으로 다양한 인문학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고 제한 없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디지털칠판을 이용하면 더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양평=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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