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바그너 그룹, 모차르트 그룹…용병기업이 클래식 음악과 무슨 관계?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용병 조직, 바그너(Wagner) 그룹 뉴스가 요즘 국제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의 PMC, 즉 민간 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입니다.
그런데 왜 이 용병 조직의 이름이 바그너일까요?
맨 처음 '바그너 그룹'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아는 '바그너'라는 이름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혹시 이 그룹 수장이라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바그너 팬인가? 설마? 그랬는데 알아보니까 이 이름이 바로 그 작곡가 바그너 맞더라고요. 도대체 용병 조직과 클래식 작곡가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요.
이번에 반란을 주도한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푸틴의 측근이었던 러시아 기업가 출신입니다. 그런데 바그너 그룹은 프리고진 외에도 러시아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 지휘관 출신인 드미트리 우트킨(Dmitry Utkin)이 공동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사 작전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우트킨이 주도하고, 프리고진은 자본을 댄 셈이죠. 다만 우트킨의 행적은 2016년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게 없습니다.
우트킨은 히틀러를 숭배하는 네오 나치로 알려져 있는데요, 히틀러가 광적으로 좋아했던 음악가가 바로 바그너입니다. 우트킨도 히틀러의 팬이자, 히틀러가 좋아한 바그너의 팬이었던 겁니다. 그가 군에서 사용하던 호출부호도 '바그너'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용병 조직의 이름도 '바그너 그룹'이 된 거죠. 바그너 그룹 관계자들이 종종 그룹을 '오케스트라'로, 전투원들을 '뮤지션'으로 불러왔다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뉴요커의 기사 'The Wagner group is a crisis of Putin's own making 바그너그룹은 푸틴이 자초한 재앙이다' 참조.)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615 ]
미국 용병 '모차르트 그룹'
바그너 그룹에 맞선다면 베르디 그룹이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만. 바그너가 당대 독일 오페라를 대표한다면 베르디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로 맞수라 할 만하니까요.
모차르트 그룹은 미국 해병대 예비역 대령 앤드류 밀번이 역시 예비역 대령이자 우크라이나에서 30년간 사업을 해온 앤드류 베인과 함께 창립했습니다. 전직 특수작전부대원, 참전용사, 전직 파일럿들로 용병을 모았고, 우크라이나인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며 전장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정부 지원 없이 기부금을 받아 우크라이나 병사를 훈련시키고, 주민 대피, 부상자 구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우크라이나에 군 장비를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밀번은 전쟁 초기 SNS에 영상을 올리고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기부금을 모았는데, 지난해 9월 이들에게 거액을 기부하던 단체가 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우크라이나 업체를 선택하면서 재정난이 심각해졌습니다.
게다가 용병들 중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는 노령의 퇴역군인들로, 업무 시간 외에는 술독에 빠지거나 온라인 데이팅에 열을 올리면서 온갖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결국 공동 창립자들 사이에 분쟁까지 생기면서 모차르트 그룹은 와해 상태입니다.
[ https://www.nytimes.com/2023/02/01/world/europe/american-veterans-ukraine-mozart.html ]
바그너와 히틀러
다시 바그너와 히틀러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바그너는 클래식 음악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는 작곡가이며 극작가, 연출가, 지휘자, 음악이론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는데요, 독일 오페라를 문학과 음악, 연극과 미술 등 모든 예술장르를 통합한 종합예술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오페라를 '음악극(Musikdrama)'라고 부른 바그너는 북유럽 신화와 게르만 전설을 소재로 대본도 직접 썼는데요, 나흘간 공연되며 휴식 시간 빼고 러닝타임이 무려 16-17시간에 이르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이 유명하죠.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신과 인간,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권력과 욕망,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게 하는 방대한 신화적 스토리이며 '영웅담'이기도 하죠.
또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로엔그린' '파르지팔' 같은 대표작들이 있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전문 가수들은 거대하고 장중한 관현악을 뚫고 나오는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소리를 가져서, 헬덴(Helden 영웅적) 바리톤, 헬덴 테너, 헬덴 소프라노 등으로 불리곤 합니다.
바그너는 1876년 독일 바이에른주의 바이로이트에 자신의 작품만을 연주하는 전용 공연장을 직접 설계해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초연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피트를 다른 오페라 극장보다 더 깊이 파서 오케스트라가 관객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했고, 관현악이 마치 심연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객석으로 울려 퍼지도록 설계했습니다. 또 이전과는 달리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서 오직 무대만 주시하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바이로이트에서는 매년 여름 바그너의 작품만 공연하는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바그너의 직계 후손들이 운영하는 이 축제는 독일의 정치인들도 대거 찾는 중요한 이벤트이자, 유럽의 주요 음악축제 중 하납니다.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도 바그너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바그네리안'이라고 부르는데, 바이로이트는 바그네리안의 '성지'와도 같습니다.
히틀러 역시 열렬한 바그네리안이었고, 바그너 가문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바그너는 1883년에 세상을 떠났고 히틀러는 1889년 태어났으니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바그너라는 이름이 나치와 직접 연결되는 지점에는 바그너의 영국인 며느리, 위니프레드 바그너가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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