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봉달호 편의점주 2023. 7.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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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 편의점 칼럼] 진보의 적 민주당, 해체하고 다시 태어날 때

● NL 운동권 세력은 ‘개혁의 훼방꾼’
● 고독한 전사라는 실존에 대한 환각
● 권력에 눈먼 사당(邪黨) 고착화
● ‘노무현 정신’ 운운, 부끄럽지 않은가
● 어부지리 정권, 진보도 보수도 끝내야

5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 문을 연 평산책방을 찾아 봉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어쩌다 운명의 주사위가 묘하게 던져져 나는 대한민국 이념 전선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모두 겪었다. 열여섯 살에 학생운동을 시작해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했고, 주사파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다가, 스물다섯 살에 종북(從北) 운동권과 결별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북한민주화운동 단체에 들어가 7년간 상근자로 일했다.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인터넷 언론매체 창간에 참여했다. 기존의 사상·이념을 뿌리부터 재검토하겠다는 생각에 '시대정신'이라는 잡지에 주요 필진으로 글을 썼다. 같은 잡지에 기고하던 필자 몇몇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나 또한 그러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 덕에 이 끝과 저 끝에 모두 인연을 두게 됐다.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에서 일하다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구속된 선배를 아는가 하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연설문을 작성한 선배하고는 NGO 사무실 바로 옆자리에서 오래 일한 인연이 있다. 광화문에 갔다가 '태극기 집회'라고 불리는 곳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가, 거기서 모퉁이 돌아 전혀 반대되는 성격의 집회 무대에서 친구가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승만의 업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자꾸 보내는 선배도 있다.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진보 진영 패널로 자주 출연하는 평론가는 절친한 선배라서 채널을 돌리다 잠깐 화면을 멈추기도 한다. 그들의 얼굴 가운데 과거의 순수하던 순간을 찾아보려 애쓴다.

‘쟤는 나중에 분명 정치를 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고, '쟤는 정치를 할 타입이 아니야'라고 고개를 저었던 친구가 있다. 둘 다 지금 국회의원이다. 한창 운동에 열중할 때 여의도를 들락거리며 정치권에 발을 딛더니 3선을 채우고 청와대 거쳐 지금은 고향 도시의 시장이 된 선배가 있고, 그 반대편 당에서 여러 번 낙선의 고배를 마신 선배도 있다. 한때는 호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극우 보수가 되더니 지금은 장관에 오른 선배도 있다. "동지"라고 부르던 사람들끼리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풍경도 본다.

동지애 탓에 망한 진보

이러고 보니 어설픈 인맥 자랑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런 인생 역정을 털어놓으면 기구하다는 소감과 함께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양쪽을 다 겪어보니 어느 쪽이 더 낫던가요?"

글쎄….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은 어디든 비슷하지 않을까. 이쪽이 천사들의 낙원이 아니듯 저쪽이 악마들의 세상은 아니다. 어디든 지나친 원리주의자나 소영웅주의자는 존재하게 마련이고, 또 어디든 교활한 사람, 부패한 사람, 부도덕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다들 그 나름의 신념을 갖고 산다. 양쪽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더 크게 느꼈다. 차라리 그것을 이야기하는 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 주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분위기 차이는 확실히 있다. '사람 냄새'로 따진다면 진보 쪽이 더 낫다. 보수 진영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따뜻한 인간미나 헌신적 열정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보수 진영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것을 무슨 보수의 징표처럼 여기기도 하더라. "우리도 저쪽만큼 내부적으로 훈훈하고 헌신적으로 참여한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빙그레 웃을 수밖에….

거칠게 표현하자면 보수 진영 사람들은 '각자 잘난 맛에' 모인 사람들 같다. 토론회를 가도 진보와 보수 진영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보수 진영은 뭘 그리 원리(原理)를 따지는 사람이 많은지, 토씨 하나 갖고도 싸우고, 표현 하나 갖고도 등을 돌린다. 무슨 학술대회장에 온 것 같다. 내가 이만큼 많이 알고, 내가 너보다 멋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각개전투를 하는 현장이라는 느낌이다. 다 자기가 잘났다.

진보 진영은 다르다. 어쨌든 기본적 동지애 같은 것이 존재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대의를 위해 뭉치는 포용성 같은 것이 있다. 반면 보수는 사람을 설득하고 감화하고, 사람을 모아 조직하고, 집단적 열정을 유지하는 능력에서 한참 떨어진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보수 진영 사람도 많다. 그런 진영이 대통령선거 때는 힘을 합쳐 정권을 창출해내니, 그 또한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진보가 낫고 보수는 글렀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진보가 망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다. 진보는 서로를 감싸려는 경향이 있다. '동지'라고 생각했다면 그 사람이 약간 틀려도 크게 개의치 않고 무난히 받아넘긴다. 사소한 표현의 차이를 갖고 원론적으로 다투지는 않는다. 진보는 그래서 망했다.

어깨 걸고 나아가는 모양새가 군사정권과 맞서 싸울 때야 성장의 자양분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집권 세력이 돼 정부와 국가를 이끌 때는 부패와 무능의 단초가 됐다. 더욱이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대통령 권력을 쟁취하고, 국회에서 압도적 과반까지 차지하고, 명실상부 주류 세력이 됐는데도 여전히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전사라는 '실존에 대한 환각'이 그들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권력의 단맛 취한 옛 동지들

개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나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할 뻔했다. 당시 북한민주화운동 단체에서 기관지를 편집하고 있었는데, 노무현 예비후보 경선 캠프에 있던 선배가 합류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아니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조차 없을 때였다. 노무현 경선 캠프에 일하는 상근자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현역의원으로 결합한 사람은 천정배 의원 한 명뿐이었다.

민주당 쪽에 있는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이인제 의원에게 줄을 서 있었다. 누구든 이인제가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여기던 때다. 나 개인적으로도 "노무현이 후보 경선에 최종 승리할 것"이라는 선배의 말에 '어쩜 저렇게 현실감각이 없을까?' 하고 속으로 비웃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당시 나는 북한민주화운동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 보지 않던 때라 선배의 제의를 거절했다.

쉬이 예상하겠지만 그 선배는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과 지근거리에서 일했다. 동갑내기 친구가 캠프에 들어갔는데, 당선 후 청와대 행정관이 됐다. 여러 선배, 동료들이 무슨 자리를 맡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 없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직전엔가, 북한인권운동을 하던 목사님 한 분이 유명을 달리해 좌우의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대통령비서실에 들어간 어떤 선배가 청와대는 연못 크기가 어떻다느니, 집무실이 어떻다느니, 들으라는 듯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다. 지금이야 우스운 풍경이지만 그때 우리는 30대 초반, 기껏 40대 중반이었다. 어쨌든 그 선배를 바라보는 옛 동료들의 눈빛에는 아니꼽기도 하고, 한편 부럽기도 한, 복합적 감정이 일렁였다. 인생의 출생 가도에서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격 아닌가. 노무현 정부의 몰락은 거기서 시작됐다.

숱한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을 봤다. '어제 누구랑 술 한잔했다'면서 과거에 우리가 만날 수 있으리라 상상도 못했던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을 흘리며 뻐기는 선배가 있었다. "요즘 공무원들이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면서 아버지뻘 되는 고위 공무원에게 호통을 쳤다고 자랑하는 선배도 있었다. 벌써 요령을 터득해 대기업에서 거액의 후원을 받고 구설에 오른 선배, 갑자기 사업가로 변신해 큰돈을 벌었다는 지인, 국가인권위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토론자로 만났더니 이젠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선배도 있었다. 각자 돈과 권력의 단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이다.

노무현에 무임승차한 운동권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 있어서나,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더 낫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면 김대중 정부 시절만 해도 운동권 출신이 제도권 정치를 하겠다고 민주당에 들어가는 일은 일종의 변절로 여겨졌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그러한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져버렸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은 있었는지 민주당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분칠하면서 마치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사람들 행세를 했다.

태생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보'라는 이름의 기득권은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민주당에 들어가 진보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민주당의 비극은, 혹은 진보 정치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운동권이 제도권에 흡수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제도권 외곽에서 한 10년쯤 고생도 해보고, 야당 생활도 10년쯤 해보고, 보좌관이나 당직자 생활도 해보고,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 정권을 잡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나 역사에 있어서도 순리일 터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권력자'로 이력을 시작한 것이 모두에게 비극이 됐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에게 많은 권력이 압도적으로 집중된 나라에서 말이다.

물론 노무현은 고생을 많이 했다. 수차례 선거에 떨어졌고, 고졸에 지방 출신이라는 소외와 수모 또한 겪었다.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진가를 미리 알아보고 함께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대다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위에 뒤늦게 무임승차한 집단일 따름이다. 오늘날 '노무현 정신'을 운운하는 정치인 가운데 정말 노무현과 동고동락한 정치인은 얼마나 되는가. '동락'은 했을지 모르나 '동고'한 사람은 드물다.

권력에 눈먼 사당(邪黨)

요컨대 운동권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옛 NL운동권은 권력의 핵심으로 향하는 특급 열차에 지나치게 빨리 올랐다. 노회찬의 표현대로 "길 가다 지갑을 주운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 권력 위에 편승해 흥청망청하게 됐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지질한 보수세력이 노무현 탄핵이라는 헛발질까지 하면서 하늘을 나는 양탄자까지 얻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 이른바 '탄돌이'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이미 5선을 쌓았다.

더 나아가 살펴보자. 능력이 통해서가 아니라 운이 기막혀 정권을 잡는 행태는 역사에 또 한 번 반복됐다.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더라도 대통령 문재인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길을 가다 지갑을 두 번 주운 꼴이다.

노무현의 죽음은 이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준 것이 아니라 복수와 확증편향의 시간을 줬다. 보수가 탄핵돼 다시 손쉽게 정권을 잡은 것은 '앞으로 보수정권이 들어선대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껏 권력의 칼춤을 추는 그들만의 호사를 누렸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부패와 무능을 덮을 수 없는 반면의 행운마저 누렸다.

그럼에도 정권을 잃었으니 이건 또 어찌 된 일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찬찬히 살펴봐야 정상일 텐데, 이제 그들은 더는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본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린 집단 같다. 그저 적(敵)만 노려보는 존재가 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필코 탈환해야 할 '달콤한 권력'만 주시하는 것이다.

민주당 이야기는 이쯤 해서 그만하고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애정이나 미련이 남아 있지 않다. 돌아보면 뜨겁게 사랑하거나 기대한 적도 별로 없고.

다만 양당 정치의 한 축을 구성할 정당으로서 민주당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제는 갈수록 '민주당이 양당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당도 변화하게 마련이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의 그 민주당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때의 민주당과는 멀어도 너무 먼 정당이 돼버렸다. 개인의 사당(私黨), 권력에 눈먼 사당(邪黨)으로 고착돼 가는 느낌이다.

주한중국대사관 달려간 야당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8일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관저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싱 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큰 논란이 됐다. [뉴시스]
한심한 부분은 이렇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3대 개혁이라고 하면서 노동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을 앞세웠지만 그 가운데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치(內治)에 실패한 대통령이 외교에서 성과를 내겠다면서 해외순방길에 올라 마치 국제 질서를 선도하는 지도자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잠깐 지지율이 올라가 우쭐대는 모습도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거쳐갔던 패턴과 한 치의 다름도 없다. 아무렴 그렇지 않겠는가. 이명박을 한번 다뤄봤던 '선수'들이 지금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구워삶을 수 있는지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다.

대통령이 양질의 정보를 갖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보가 많은 만큼 측근들의 왜곡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반대편 이야기도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검사나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윤 대통령은 싫은 소리 듣길 엄청나게 싫어하는 인물형이었고, 절대 권력자가 된 지금은 어떠하리라는 사실 또한 충분히 짐작되고 남는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중핵이다. 미국 말고 우리에게 어떤 동맹이 있을 수 있을까. 흔들 수 없는 동맹이고 흔들려서도 안 되는 동맹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교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를 굳이 자극할 필요까지 있을까. 중국과의 관계가 그렇다. 중국이 적국은 아니지 않은가.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라고 '전략'이라는 용어를 추가하면서까지(기존에는 '전면적' 협력동반자였다) 격상시켰던 정부가 이명박 정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지도자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찾아가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관람하며 시진핑 주석 옆자리에서 박수를 쳤던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물론 그때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 테고, '중국에 그렇게 잘해줬는데도 얻어맞는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 일부러 중국을 자극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이른바 미·중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다고 지나치게 투박하게 미국 편에 서는 듯한 태도를 취할 이유는 없다. 자유민주국가 가운데 어느 나라 지도자가 윤 대통령처럼 거칠게 움직이던가. 한국이 그 무슨 '동북아 균형자'가 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반대편 편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조용히 원칙으로 회귀해도 충분하다. 그게 현명한 일이다. 뭐든 지나치면 탈이 생기는 법이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의 대응은 도대체 대한민국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결정판은 6월 8일 이재명 대표가 주한중국대사관을 찾아가 싱하이밍 대사를 만난 대목이다. 그날 싱 대사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 큰 논란이 됐다.

싱 대사의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수차례 "미국에 반하는 베팅을 하지 말라"고 동맹국들에 경고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상당히 무례한 비외교적 언사인 것은 분명하다. 야당 대표가 극히 민감한 시기에 제 발로 중국대사관저를 찾아간 것도 정무적 판단이 한참 떨어지는 행위일뿐더러, 그런 말을 고분고분 듣고만 있었던 것도 황당한 일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 대표가 그 자리에서 중국대사에게 항의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더라면 이 대표의 지지율이 한층 올라가지 않았을까.

지금 민주당이 보인 여러 행태는 과연 이 당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윤석열 정부의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줄 모르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오히려 국민을 실망시킨다.

더불어민주당은 6월 5일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혁신위원장에 임명했다가 논란이 일자 9시간 만에 지명을 철회했다. [뉴시스]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개혁을 책임질 혁신위원장 자리에 이래경 씨를 임명했다가 지명 9시간 만에 철회한 것도 판단 능력이 한참 흐려진 (혹은 원래부터 흐렸던) 징조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이래경 씨는 "자폭된 천안함"이라느니 "우크라이나군을 전범으로 체포해야" 한다느니 숱한 설화를 뿌린 인물이다. 30초만 검색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안인데 그걸 몰랐을까. 이미 알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별문제 있겠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지닌 사고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재명과 극성 팬덤, 구 NL운동권 집단은 이렇게 어영부영 계속 민주당을 이끌어가다가 윤석열 정부의 실수에만 온통 기대를 걸면서, 다시 '운 좋게' 정권을 잡는 미래를 그려보고 있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두 번이나 정권을 잡았으니 이제는 실력보다는 운에 맡기는 정치 집단이 된 지 오래다. 구태여 노력하기보다 그러는 편이 훨씬 낫다는 교훈(?)을 경험으로 깨달은 것 아닐까.

얼치기들이 정치하면 무서운 법

다시 서두로 돌아와 이야기하자. "보수와 진보 양쪽을 모두 겪어보니 보수 쪽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듣는다.

이른바 보수 쪽에 할 말은 많지만, '보수는 사람을 키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표현한 대로 보수는 '각자 잘난 사람들이 모인' 진영이니 다른 사람이 자라나는 꼴을 못 본다. 자기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내리누리거나, 아무튼 내가 쟤보다 더 잘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 보수 진영이다. 그러니 자체적으로 사람이 못 크고, 저쪽에서 큰 사람을 수입하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보자.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민주당에서 큰' 인물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또한 보수정당 출신이긴 했지만, 역시 '민주당에 있다 건너온' 인물이다. 보수 진영에서 차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저쪽에 있다가 이쪽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보수의 적자'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부 팬덤이나 열광할 따름이지 다수 국민에게는 별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독한 전사'라는 자의식에 충만해 살아간다는 측면에서 이른바 '보수우파'는 NL운동권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앞으로도 보수정당은 내내 그런 식으로 생명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진보 진영에서 지치거나 거기서 화를 겪은 사람들이 보수 쪽으로 넘어와 보수 쪽에 중도의 이미지를 덧칠하거나, 복수의 일념 아래 극단으로 치닫거나, 둘 중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당선과 오늘을 그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보수의 손쉬운 집권 공식이 됐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한국의 보수주의가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 보수주의인지도 알 수 없다. 기존의 반공 보수에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시장(市場) 보수가 결합하고, 권력형 일자리를 노리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버무려져 자칭 보수 진영을 이루고 있다. 진영 의식이 약하긴 하지만 대통령 권력 앞에서는 하나로 뭉치는 이익공동체다.

혁신 아닌 해체가 답

앞서 내내 '진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86세대 정치인들을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재삼 강조하다시피 그들은 그저 이익공동체가 됐을 따름이다. 그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그 무슨 진보적 정책이 있었는가. 최저임금 인상? 임대차 3법? 북한 인권에 대한 침묵? 동맹을 벗어난 친중 외교? 그게 도대체 좌파나 진보적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얼토당토않은 '검수완박'을 추진함으로써 이제는 검찰개혁이란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이래서 얼치기들이 정치를 하면 무서운 법이다. 민주당의 NL 운동권 세력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의 적' '개혁의 훼방꾼'이 됐다.

민주당을 대신할 민주당이 태어날 시점이다. '혁신'으로 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3지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이 망한다고 저절로 3지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3지대가 아니라 '새로운 양당' 가운데 하나가 되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바람을 타고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으려는 시도는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나라 전체에 불행한 일이다.

봉달호 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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