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임금’ 勞政 공감대… ‘동일한 기준’엔 해석 제각각 [심층기획-'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권구성 2023. 7. 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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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이중구조 갈수록 심해지며
필요성 제기 많지만 이해관계 엇갈려
법원도 여러 판결서 원칙 인정했지만
취업규칙·법률상 근거 따라 판례 달라
與, 법안 발의했지만 명확한 기준 미비
전문가 “이중구조 격차 압축 방안 필요”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단순하게 보이는 명제지만,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 같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과 거리가 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간의 격차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화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직무급에 기반한 임금 체제 도입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에서도 오래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연봉제와 호봉제가 깊게 뿌리내린 국내 노동시장에선 이 원칙을 두고 벌써부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동일하게 봐야 할 노동과 임금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이중구조

국내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30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근로 형태별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 차이는 2015년 122만9000원에서 지난해 159만9000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 기준 정규직 근로자가 월평균 348만원을 받을 때 비정규직 근로자는 188만1000원을 받은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임시 근로자(temporary workers) 비중을 살펴봐도 한국은 28.3%로 압도적이다. 임시 근로자는 비정규직 중 시간제 근로자, 특수형태 근로자 등을 제외하고 집계하는데, 이웃한 일본은 15.0%, 독일은 11.4%, 영국은 5.6% 수준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 중인 가운데 윤 대통령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 크게 차이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언급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최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노동인권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라며 의제 자체에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임이자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6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노동개혁특위 제6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형동 의원은 지난달 31일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근로자의 정규직 여부나 근속 기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에 앞서 법원도 여러 판결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2019년 대전MBC 무기계약직 7명이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기본급·상여금 80%만 받는 것은 차별’이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무기계약직의 손을 들어줬다.

◆동일한 노동·임금 기준이 관건

관건은 동일한 노동과 임금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야를 비롯해 노동계 모두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그 해석에는 차이가 있다. 통상적으로 노동계가 보는 동일노동의 기준은 같은 사업장인지 여부다. 같은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반면 정부가 주장하는 직무급은 직업이나 직종, 업무의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 체계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능력이나 성과가 없어도 급여가 매년 오르는 호봉제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도 차이를 보인다. 실제 문재인정부도 직무급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추진하지 못했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동일노동의 기준을 입직 경로로 보는 경향도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벌어진 이른바 ‘인국공 사태’는 공정과 평등을 바라보는 MZ세대의 시각을 보여 준다.

결국 동일한 노동과 임금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법원 판례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가 인정되긴 했지만, 이 역시 취업규칙이나 법률상의 근거에 따른 해석 차이를 보인다. 앞서 대전MBC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경우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은 ‘사측이 무기계약직에 대한 취업규칙을 두지 않아 정규직 취업규칙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반면 지난달 기간제 교사가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을 주장하며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기간제, 정규직 교사의 임금 차이는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는데, 2심 재판부는 두 집단이 법률상 같은 집단이 아니라고 봤다. 기간제 교사는 교육공무원법상 정규직과 다른 집단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현실보다 차이 압축해야”

국민의힘이 발의한 개정안은 동일노동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용자가 그 기준을 정함에 있어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기술했는데, 동일노동에 대한 판단을 근로자대표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적정성은 따져 봐야 한다. 앞서 한국노총은 정부 여당이 추진 중인 근로자대표제 강화와 관련해 “법적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아 사용자들이 근로자대표를 임의로 내세워 선임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해 왔다”고 논평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노동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격차를 벌려) 과도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제화 과정에서 각계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자칫 격차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다. 그러면서 “(동일한 노동과 임금에 대한) 기준이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이중구조에 따른) 격차를 압축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상민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현재 일자리 데이터로는 다수가 합의할 만한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관련 논의를 위해) 정확한 직무 분석과 임금 통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구성·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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