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뚜루' 도킹해도 괜찮아…이승윤, 비선형적 서사의 선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도킹(docking)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실제 우주에선 두 우주선 간 안정적인 물리적 결합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우주에선 좀 다르다. 칠흑 같은 고립감 속에 조금은 '삐뚜루'(삐뚤게) 연결이 돼도 괜찮다는 심리적 위안.
1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펼쳐진 이승윤의 투어 '도킹' 앙코르 공연은 직선 같은 선형적(線形的) 세계관이 아닌 구(球)처럼 비선형적인 세계관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이승윤은 JTBC '싱어게인' 초대 우승자라는 영예에도 '야생마'처럼 다시 필드에 나왔다. 하지만 불안함은 어쩔 수 없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라는 고민에 자신처럼 간 선례가 있나 찾았다. 하지만 이날 딱 맞는 선례를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최소 모두가 아는 히트곡 한곡은 보유한 '원히트 원더'는 돼야 공연으로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히트곡 하나 없고 방송에서 화제가 된 곡을 부르지 않는 이승윤이 이런 콘서트를 여는 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승윤은 선례가 됐다. 그도 "내가 선례인가 싶었다"고 했다. "이런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건 다 팬들 덕분"이라고 감사해하며 씨익 웃었다.
이제 이승윤은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은하(銀河)에서 재정의를 해야 하는 천체인 셈이다. 그 천체 속 행성의 진가를 알게 된 이들이 점차 그곳에 연착륙해 삶을 나누고 있다. "삶은 원일까 / 아니면 구일까 / 구하고 원하다 보면 /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 이승윤이 이날 막바지에 노래한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의 가사처럼.
근데 이 곡이 진짜 얘기하는 건 이승윤이 '마름모'라는 사실. 심지어 '삐뚜루' 서 있다.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 내리"는데 삶 역시 그렇다. 그런 삶의 일부분이 이승윤의 '도킹'에 녹아 있었다.
삶에서 파악하기 힘든 것들은 파악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겸손함과 예의. "구실을 찾으시려거든 대접부터 / 먼저 내오시든가"('구름 한 점이나'), "별과 별 사이엔 / 어둠이 더 많아"(알라리깡숑 '게인 주의'), "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 / 고요한 숨을 품은 /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기도보다 아프게') 등의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
이런 서사가 객석에 잘 전달된 건 음악적으로도 단련돼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밴드, 코러스와 함께 한 이날 콘서트는 지글거림 없이 사운드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이승윤 첫 스탠딩 공연이었는데 "(관객들이) 내일 아침에 안부를 전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못 전하는 상황"이 될 만큼, 로킹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본인의 '로망 풀기 공연'이라고 한 만큼 눈에 띄는 무대 연출도 자주 눈에 띄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다운 말' 등을 부를 때는 메인 무대 앞 돌출된 런웨이 무대에서 이승윤과 밴드 멤버들이 일렬로 서 마주하며 노래했다. SBS TV 드라마 '그 해 우리는' OST '언덕나무'를 부를 때 객석의 응원봉은 나뭇잎처럼 초록빛을 띠었다.
이승윤은 히트곡이 없다고 겸손했지만 '영웅수집가'는 공연의 화룡점정을 찍을 만한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이승윤의 레이블 이름이자 그를 상징하는 도형 마름모가 다양한 크기, 모양으로 변하며 그를 감싸는 영상 효과는 일품이었다. 이어진 정규 2집 타이틀곡 '꿈의 거처' 역시 길이길이 불릴 노래였다.
'꿈의 거처'를 비롯해 이승윤의 노래는 무엇보다 답을 확실하게 정해놓지 않는다. 인생엔 정답이 없고 저마다 해답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던진다. 그건 삶을 쉽게 해석하지 않으려는 이승윤의 태도와 맞물린다. 무대 밑에선 수줍음과 여백으로 그걸 조곤조곤 이야기한다면, 무대 위에선 팬덤 '삐뚜루'를 등에 업고 자신감으로 그런 태도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강압적이지 않다. 불가해한 삶은 그 삶의 몫으로 남겨두는 대신 노래가 해야 할 일을 노래로서 한다. 그 노래의 주파수는 광활한 우주에서 언젠가는 닿게 돼 있다.
'도킹' 앙코르 공연은 2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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