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30년 국수 대접' 대전 구암사 나눔회·북천 스님
"봉사 누구나 할 수 있어… 돕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피로가 다 녹죠.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못 그만둬요."
대전 유성구 구암사 나눔회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한 김정미(67) 총괄 부단장은 "더불어 나누며 배려와 사랑을 배웠다"며 "국수를 먹으러 오시는 분들과도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가족이 됐다"고 말했다.
구암사 나눔회는 1987년 신도 30여명이 32사단 국군장병들에게 매주 국수를 만들어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36년간 지역 군부대,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주민, 국가유공자 유족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대전·세종 다섯 군데에서 나눔의 집 '나마스테'를 운영하며 회원만 1천명을 넘기기도 했다.
현재까지 짧게는 1년 길게는 30년이 넘게 참여 중인 회원 300여명은 연령과 성별, 사는 곳과 종교까지도 다르지만, 봉사 정신만큼은 '한 마음'이다.
지난달 29일 찾은 국립대전현충원 내 구암사 나눔의 집에서는 장맛비 속에서도 멸치육수를 우리고 면을 삶는 회원들로 분주했다.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참여하는 회원들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준비해 11시부터 2시간여 동안 700명∼1천명, 연평균 30만명에게 국수를 대접한다.
명절, 공휴일은 물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매일 국수를 만들다 보니 현충원 행사 일정까지도 외우다시피 해 몇그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척척 알게 됐다고 했다.
표고버섯과 김치 고명을 정성스레 올린 국수를 내주며 시민들과 정다운 인사를 주고받은 회원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자부심이 가득 묻어났다.
4년째 봉사활동을 한 박정희(60)씨는 "이곳에서 하는 세종시 어르신 무료 급식 봉사에 중학생 아들과 우연히 참여한 것이 계기였다"며 "아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한 봉사가 제 삶의 낙이 됐다"고 말했다.
구윤자(70)씨는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봉사는 종교를 초월하는 것 같다"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급식 봉사를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도 계속 돕고 싶다"고 밝혔다.
30년 넘게 나눔회를 이끄는 구암사 주지 북천 스님(68)은 "돕고 싶어서 도왔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에 즐겁고 책임감이 생겨 계속했다"며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다 회원들 덕분"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군부대와 지역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이어오던 그는 2009년 우연히 대전현충원을 찾았다가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국가유공자 유족들의 모습을 보고 국수 봉사를 결심했다.
스님은 "당시에는 거의 매일 안장식이 있었는데 곤궁해 보이는 유족들이 많았다"며 "이곳에 영면한 분들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있는 것인데 대우를 받아야 할 후손들이 현충원 곳곳에 즐비한 상인들의 돈벌이 상대가 되기도 하고, 슬픔에 잠긴 가운데서도 가족, 친지들 밥을 해결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회상했다.
2009년 현충원의 허락을 얻어 비닐하우스 국수 봉사를 하던 그는 2013년 4월께 6천700만원을 들여 '나눔의집' 시설을 지어 기부채납 후 현재까지 지역주민들과 현충원 방문객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있다.
스님은 수십년간 봉사를 이어오면서도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기업체 등 후원이나 재정지원을 받지 않았다.
대신 국수를 먹고 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도 돕고 싶다'며 내민 꼬깃꼬깃 접힌 지폐 한장 한장은 아직 잊지 못한다고 했다.
스님은 "생각조차 못 했는데 국수를 드시고 가신 분들이 설거지하겠다고 다시 찾아오고, 돈을 들고 와서 써달라고 성화를 냈다"며 "이 마음들이 모여 오늘의 나눔의집이 됐다. 돈을 생각했으면 아무도 할 수 없고 돕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원들과의 믿음도 단단하다. 나는 나눔의 집 장부를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는데 회원들이 콩나물 한봉지 가격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내가 그릇 설거지만큼은 아주 잘한다"며 "앞으로도 설거지 열심히 하면서 국수 한 그릇 필요한 분들께 음식 대접도 하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coo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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