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사건 재판에 피해자의 목소리는 없었다 [주말엔]

강병수 2023. 7.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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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지켜주면 저는 어떻게 살라는 건지. 왜 죄 한 번도 안 저지른 사람한테 이렇게 힘든 일을 만들게 하는 건지….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 지난달 12일 항소심 선고 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A 씨

부산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폭행해 의식을 잃게 한 뒤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충격적인 사건 내용뿐만 아니라, 이후 범행을 저지른 남성의 신상공개 여부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이 더욱 안타까워 한 부분은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회복을 위해 직접 호소하고 뛰어야만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피해자 A 씨는 사건 당사자였지만 사건의 진행 상황과 피고인의 신상정보 등을 알기 어려웠고,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계속 방청석에 앉은 '제 3자'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 "범죄피해자에게 '정의'란 피해자의 목소리가 존중되고 반영되는 것"

범죄피해자에게 '정의'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형사 절차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존중되고 주된 결정 내용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송강 대검 기획조정부장, 지난달 30일, 형사법 아카데미 中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 드러나듯 현재 사법체계에서 형사소송은 검찰과 피고인 간 싸움으로 이어지고, 정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잊혀지기 쉽습니다.

피해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회복적 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이기도 합니다.

마침 지난달 30일 대검찰청에선 검사와 학자, 변호사 등이 함께 모여 '범죄피해자의 형사 절차 참여 강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형사법아카데미'가 열렸습니다.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범죄피해자는 형사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절차 진행에서 소외되는 측면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절차가 상대적으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에 더 치중한다"는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은 지난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이미 헌법상 권리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검사와 피고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에서 피해자는 주로 법정의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는 '주변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 독일 '공소참가 제도' ·일본 '피해자참가 제도'

학술대회에선 이러한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다른 나라의 사례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독일의 경우 '공소참가 제도'를 통해 피해자가 형사재판 절차에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데, 재판출석권을 비롯해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권, 피고인이나 증인에 대한 질문권도 갖습니다.

또 재판장의 명령에 대한 이의제기권과 의견 진술권 등을 보유하는 것은 물론 직접 증거를 신청하거나 상소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2008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살인·성폭력·상해 등 특정 범죄의 피해자나 그 유족이 형사재판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피해자참가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도 소개됐습니다.

이 제도에 따르면 피해자참가인은 공판기일에 출석할 수 있고 일정 요건 아래에서 증인에 대한 신문 또는 피고인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으며 법원에 사실 또는 법률적용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에 참석한 김혁 부경대 교수는 "피해자를 형사 절차에 참여할 주체적인 권리자로 인정하는 '피해자 중심적 사고'로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피해자가 피해감정이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도모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재(再)피해나 보복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신체·생명의 보호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주체에 해당한다"며 "가해자 구속 여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부여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재판절차 진술권' 상세히 안내할 것"

법원 일 하면서 깨달은 절대적인 사실이 하나 있어.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모두 모르더라고.
- 드라마 '소년심판' 中

이렇게 피해자를 더는 재판의 제 3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자 검찰도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은 일단 "현재 공소제기 단계에서 범죄피해자를 상대로 재판에서 진술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막상 피해자의 다수는 재판절차 진술권의 의미나 그 절차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짚었습니다.

제도상으로는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내용이나 사용방법을 잘 알지 못해 '활용'을 충분히 못 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검찰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재판절차 진술권'을 상세히 안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먼저, 살인·강도·성범죄 등 중대 범죄를 기소하는 경우에는 필수적으로 대면, 유선 또는 문자메시지(SMS) 등으로 피해자에게 재판절차 진술권의 상세 내용 및 절차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진술 의사 역시 확인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스토킹 등 검사가 피해 내용, 정도 등에 대해 피해자의 진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건의 경우 적극적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또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면 피해자나 피해자의 대리인에게 재판절차 진술권에 관한 상세한 안내 사항을 포함한 사건 결정결과 통지 문자메시지를 꼭 발송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판 시작 전뿐만 아니라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보장은 계속됩니다.

검사는 공판 단계에서 직접 재판부에 ‘피해자 의견 진술 신청’을 하거나, 피해자에게 '피해자 의견 진술서' 양식을 제공해 검사 또는 재판부에 제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피해자 의견진술서'에는 피해자가 입은 심리적·신체적·사회 관계적·경제적 피해에 관해 항목별로 세부 피해 상황을 기재할 수 있는데 피해자가 범죄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직접 진술할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피해 회복'에도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입니다.

또 보복위협 등 '2차 피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진술이 가능해 재판에 참고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해자 A 씨는 사건 이후 언론 등을 통해 "피해자라면 지난 일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어떻게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호소했습니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 A 씨의 호소가 많은 사람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공감을 얻어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형사사법체계가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에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중요한 피해자의 어려움엔 귀를 기울이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이번 변화는 검찰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어려움을 공감하겠다는 것"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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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기자 (kbs03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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