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농촌 최저임금 똑같이…"물가가 다른데" 지역 차등 솔솔
[편집자주]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매년 되풀이된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연대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인상'과 경기 침체를 이유로 한 '인하'가 충돌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공정성은 늘 화두가 된다. 머니투데이가 '공정'이란 가치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결정 구조와 사회 파급 효과, 미래 방향성을 짚어봤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더이상 직원을 고용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차라리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생각해 봐야겠어요."
최근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사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걱정했다. 시간당 9620원인 현재 시급에서 1만원 이상으로 오른다면 직원을 고용하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한달에 버는 수익도 적은데 인건비만 계속 올라서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인건비가 없기 때문에 매년 오르는 최저임금 걱정을 덜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저임금은 고용뿐 아니라 물가 등 우리 경제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법적으로 매년 다음해 최저임금을 정하게 돼 있는데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사실상 인상폭을 결정하는 기구인 셈이다.
최저임금은 매년 3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임위에 심의를 요청한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이 위원회는 근로자 측 9명, 사용자 측 9명,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정한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이뤄진다. 매년 5~6월부터 열리는 전원회의에서 노사위원들은 다음 연도 최저임금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진행한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 참석에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결정되며 매년 6월29일까지 다음해의 최저임금을 정한다. 노사의 이의신청을 받은 뒤 고용노동부 장관이 8월5일에 이를 고시한다.
1일 최임위에 따르면 총 28개 법령에서 최저임금을 활용한다. 즉 최저임금이 오르면 28개 법령에 명시된 제도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우선 고용보험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고용보험법 46조 '구직급여일액'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에 연동된다. 최저임금의 80% 수준이 실업급여로 설정된다. 또 지역고용촉진지원금과 고용촉진장려금, 출산전후 휴가 급여 등이 최저임금에 연동된다.
선거때 지출되는 인건비도 최저임금에 민감하다. 공직선거관리규칙을 보면 공정선거지원단원(선거 보조원)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수당을 지급할 때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하게 돼 있다.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도 마찬가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규정한 소득의 범위도 최저임금에 맞춰진다. 최저임금법 제5조에 따른 최저임금액 등을 고려할 때 소득 관련 자료의 신뢰성이 없다고 보장기관이 인정하는 경우 개별가구의 생활실태 등을 조사해 확인한 후 최저임금을 토대로 산정할 수 있다.
이밖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보험급여의 종류와 산정기준 등을 정할때 최저임금을 보고 한다. 보험급여(장의비는 제외)를 산정할 때 최저 보상 기준금액이 최저임금액(시간급 최저임금액×8)보다 적으면 그 최저임금액을 최저 보상기준 금액으로 한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서도 최저임금을 활용한다. 구금에 대한 보상금의 한도를 1일당 보상청구의 원인이 발생한 연도의 최저임금법에 따른 일급 최저임금액의 5배로 규정했다.
이외에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등도 연동된다. 결국 최저임금이 오르면 28개 법령에 바탕을 둔 각종 지급액도 오를 수밖에 없다. 각종 사회보험과 수당 등이 따라 오르면 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일각에선 물가가 안정되고 경기가 좋지 않을 땐 사회적 합의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도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기가 침체되는 와중에 디플레이션(장기간 물가하락) 현상이 발생할 경우에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 서민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고용을 줄이고 물가를 자극하는 등 실생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저임금에 연동돼서 움직이는 항목이 법령으로 30개 가까이 되지만 각종 일자리 사업 등으로 확장하면 200여개 정책 등에 영향을 미친다"며 "물가가 안정되고 경기가 좋지 않다면 무조건 최저임금을 올릴 게 아니라 동결 등 다른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는 올해도 불발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엔 지역별 차등적용이다. 경영계·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지역별 물가와 생계비를 고려해 최저임금을 정하면 기업의 지방 이전이 늘어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업종별 차등적용'과 지역별로 최저임금 수준이 다른 '지역별 차등적용'으로 나뉜다. 업종·지역별로 각 기업들의 최저임금 지불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종별 차등적용의 경우 현행 최저임금법상으로도 적용 가능하지만 실제 다르게 적용한 것은 최저임금제가 처음 적용된 1988년뿐이다. 지난해 심의에 이어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논의됐다. 그러나 노동계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경영계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들며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차등적용이 저임금 업종의 낙인효과로 인한 구인난을 야기하고 제도의 근간을 흔든다며 반대했다.
지역별 차등적용은 법적 근거가 없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 6월 6일 국회 부의장인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지역별 차등적용이 골자인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논의가 재점화됐다.
개정안은 시·도지사가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요청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임금수준 불균형과 소득감소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 취약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이 최저임금 근로자 임금을 지원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포함했다.
정 의원은 제안 이유에서 "인구 밀집지역인 서울·경기권과 지방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 간에는 물가 수준 차이로 생계비 차이가 있고 지역별 인력 수급구조 차이도 임금 수준에 차이를 가져온다"며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인구 유출과 일자리 감소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임금 수준을 고려해 최저임금도 달리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역별 임금은 지난해 서울시와 울산시 임금수준(100%)을 기준으로 충북은 82%, 강원·대구는 75%, 제주 7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이나 대기업이 조업 중인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임금수준이 20%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차등적용이 현실화되면 지방의 기업 유치가 늘고 일자리 창출로 지역 소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잖다. 배진한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 같은 이유로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영동권, 영남권 5개 권역별로 생활물가·주거비 등의 실질물가를 책정해 최저임금을 매기자는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지역이나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미국·캐나다·중국·러시아 등은 지역별로, 일본·호주·스위스·벨기에 등은 지역별·업종별로 차등을 둔다.
미국은 연방 최저임금도 있지만 주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한다. 일본은 도도부현(광역지방자치단체) 별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특정 산업 노사 요청에 따라 산업별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 중국은 33개 성(省)급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적용이야말로 우리 경제 현실에 맞는 정책"이라며 "각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고 지방소멸이 눈앞에 다가오는 현실을 봐야한다. 지역별 차등적용은 지방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임금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업종별, 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달리 결정하는 방법이 거론되지만 논의조차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너무 미온적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1일 국가통계포털(KOSIS) 일자리 행정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세전 월 소득(보수)은 563만원으로 중소기업 근로자(266만원)의 약 2.1배다.
기업 규모뿐 아니라 고용 형태별로도 차이가 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7233원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2만4409원)의 70.6% 수준이다. 이는 72.9%인 2021년보다 2.3%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그 사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커졌다는 의미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도 늘었다. 지난해 6월 기준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16.9%로 2021년(15.6%)보다 1.3%p 늘었다. 저임금 근로자는 임금 수준이 중위 임금(월 314만6000원)의 3분의 2 미만인 근로자다. 2013년 24.7%를 기록한 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던 이 비중이 증가세로 전환한 것은 9년 만이다.
문제는 불합리한 임금 격차에 목소리를 내고 해결책을 제안해야 할 대기업 노조의 미온적 태도다. 대기업 노조 가입자들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안정적이고 높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 중 노조에 가입된 이들의 비율은 전년 대비 0.4%p 상승한 13.5%로 집계됐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노조에 가입된 이들은 전년과 동일한 0.7%에 그쳤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전국 2021년 전체 조합원 수는 2020년 280만5000명보다 약 2만8000명가량 증가한 293만3000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수치다.
특히 3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가 46.3%였다. 반면 3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전체 1197만8000명의 근로자 중 조합원은 2만5170명인 0.2%에 불과했다. 30인 이상 99명 이하 사업장은 1.6%. 100명에서 299명 사이의 중견급 기업도 10.4%에 그쳤다.
이같은 경향이 강해지면서 과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달리하자고 주장했던 노조의 '하후상박' 정신이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언제부턴가 한국의 노조들은 노동자의 범주 안에 정규직만 포함시키는 경향이 생겼다"며 "정규직보다 권익에서 뒤처져 있는 비정규직을 먼저 챙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의 노조는 정규직과 노조원들을 위한 이익 단체로 변질됐다"며 "순수한 의미의 노조라고 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많은 국민들이 노조가 오직 일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가 노조 활동에 부정적이었다.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13%에 그쳤다.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응답자 중 46%가 그 이유로 '노조에 소속된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서'라고 답했다.
정부도 노조에 연대 정신을 요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9일 서울 팀플레이스에서 열린 '노동의 미래 포럼 3차 회의'에서 "노조도 조합원의 이익에만 몰두하지 않고 상생과 연대의 정신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대노총(한국노총·민주노총)이 중소기업·하청근로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임금 교섭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교섭력이 강한 대기업·원청노조가 하청·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상생 통로가 되는 것도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세종=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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