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세 명’과 삽니다 [반려인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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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대화 상대가 "몇 마리요?" 하고 물어올 때가 있다.
"세 명이요"라고 답했다가는 긴 설명을 덧붙이는 유난을 떨어야 할 가능성이 크고, 때로는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핀잔(혹은 순수한 의문)이 돌아올 수도 있다.
'마리'라는 두 글자에서 절단되어 피 흘리는 머리통을 떠올리게 된 이후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자 누군가의 가족, 친구, 무리의 구성원일 존재들에게 그러한 단어를 붙인다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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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대화 상대가 “몇 마리요?” 하고 물어올 때가 있다. 답은 세 마리다. 그런데 요즘 나는 잠시 망설인다. ‘마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려서다.
‘마리’는 짐승이나 물고기, 벌레 따위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다. 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동물을 세는 단위로도 ‘명’을 쓰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을 셀 때 쓰는 ‘명(名)’ 자 대신에 ‘목숨 명(命)’ 자를 넣는 것이다. 인간이든 비인간 동물이든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목숨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는 같으니 사소한 언어 하나에서부터 차별의 시선을 걷어내보자는 취지다.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쓰고 말하는 나의 손과 입이 생각만큼 자연스레 따라와주지는 않는다. “세 명이요”라고 답했다가는 긴 설명을 덧붙이는 유난을 떨어야 할 가능성이 크고, 때로는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핀잔(혹은 순수한 의문)이 돌아올 수도 있다. 노파심과 자기검열의 덫이 나를 붙들어 세운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부터는 편집자로서 이 문제를 한층 더 민감한 과제로 끌어안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쓰는 언어가 부지불식간에 타자를 차별하고 가치 절하하는 인식 속에 형성된 것이라면, 그 언어를 하나씩 교체해나가는 일은 분명 중요한 문화적 움직임이다. 내가 신뢰하고 즐겨 읽는 이들의 말과 글은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성큼성큼 걸으며 손을 내밀어준다.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 다양한 관심사와 가치관을 지닌 이들에게 동시에 공유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지 가끔은 자신이 없다. 예컨대 ‘물고기’를 ‘물살이’로 대체할지 말지, 성별 이분법적이라는 혐의를 받는 ‘그녀’를 원고에서 삭제할지 말지, 나는 여전히 갈등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떤 단어에 일단 한번 이물감을 느끼고 나면 마음 편히 입에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수 세기 전부터 사용되어온 ‘마리’라는 표현은 ‘머리(頭)’를 어원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축한 짐승의 대가리는 분명 두당 얼마짜리 교환가치를 지닌 고깃덩어리로, 적어도 언젠가는 고깃덩어리가 될 개체로서 헤아려졌을 것이다. ‘마리’라는 두 글자에서 절단되어 피 흘리는 머리통을 떠올리게 된 이후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자 누군가의 가족, 친구, 무리의 구성원일 존재들에게 그러한 단어를 붙인다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연재 코너의 제목은 ‘반려인의 오후’다. 돌이켜보면 ‘반려동물’도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차츰 사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그 의미가 사회에 받아들여져, 어느덧 출판과 언론, 방송은 물론 일상 전반에서도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의식을 담는 그릇인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변화한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듯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변화는 아닐 테다. 주저하고 고민하고 한발 물러섰다 용기 내어 시도해보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변화할 때, 언어도 의식도 온전히 새로고침 되는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시급한 것이 당장 바꾸어 쓸 더 나은 단어들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언어 속에서 혀 위의 모래 같은 껄끄러움을 감각하는 경험, 그 순간들을 함께 축적해나갈 시간이 필요하다.
김영글 (미술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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