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조 사생활 영상이 '리벤지 포르노'라고요?[바로 젠더]

이기범 기자 2023. 7. 2.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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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포르노' 용어 대신 '디지털 성범죄' 권고
"가해자 중심 시각…'포르노' 소비로 이어질 수도"

[편집자주] '젠더'란 타고난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달리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성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 현상이 바로 젠더입니다. 그러나 젠더 관련 논의는 진영 논리에 따라 갈등으로 치닫거나 기피 대상이 되기 일쑤입니다. 남녀 혹은 성소수자를 둘러싼 오해 등 젠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바로 젠더'를 연재합니다.

축구선수 황의조. 2023.6.20/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리벤지 포르노 논란 황의조' '리벤지 포르노에 당한 황의조'

최근 사생활 폭로 논란에 휩싸인 축구 국가대표 황의조(31) 선수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황씨가 동의 없이 불법촬영물을 찍어 리벤지 포르노(복수성 음란물) 논란을 일으킨 가해자 혹은 리벤지 포르노에 당한 피해자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여섯 글자입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 단어 사용을 자제하자고 권고하기 때문입니다. 성범죄 인식을 왜곡하거나 흐릴 수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해외에서도 '용어 적절성' 놓고 다양한 논의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고자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물을 말합니다. 사귈 당시 찍은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음란물로 소비하게 만들어 복수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리벤지 포르노란 용어 또한 성범죄를 '포르노'로 소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복'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 가해자 중심의 시각이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홍남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2018년 '디지털 성폭력의 불법화 과정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복수'를 의미하는 '리벤지'로 지칭하는 것이 가해자 중심의 시각이며, '포르노그라피'라는 명명 또한 산업에 의해 기획, 제작된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보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표현을 먼저 쓴 해외에서도 해당 용어의 적절성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비동의 포르노' '비자발적 포르노' 등이 대체어로 제시됐으나 성적인 즐거움을 주는 '포르노'로 인식될 수 있어 '사이버 착취' '사이버 강간' '사이버 성폭력' 등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성단체 '디지털 성범죄 아웃'(DSO)이 2016년부터 리벤지 포르노를 '디지털 성범죄'로 부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도 2017년 해당 용어가 여성들에게 2차 가해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대체어를 쓰고 있습니다. 2019년 국립국어원은 '보복성 음란물'로 순화해 쓸 것을 제안했습니다.

현재 '디지털 성범죄' 또는 '성착취물'이 리벤지 포르노의 대체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차 가해·피해 발생할 수도, 예방할 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몰카'(몰래 카메라) 역시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하며 반응을 살피는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거나 유희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범죄를 순화한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에 정부는 '몰카'가 아닌 '불법촬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몰카는 또 '디지털 성범죄'로 통칭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너무 포괄적인 표현이라 '리벤지 포르노' '몰카' 등 범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성범죄든, 리벤지 포르노든 용어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범죄 예방을 실질적으로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 범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인식이 규정될 수 있고 2차 가해·피해를 야기할 수도,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이 성 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표현 하나하나에 주의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부분을 바로잡을까 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본다고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무분별하게 확산됐던 황의조 선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n번방 사건' 이후 지난 2020년 5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의 개정으로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관한 처벌 조항이 강화해 불법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뿐만 아니라 시청한 경우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n번방 사건은 가해자들이 미성년자 등 여성들의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텔레그램에서 공유·판매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입니다. 2019년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성폭력처벌법 개정 및 형법 개정, 정보통신망법 개정 등을 포함한 'n번방 방지법' 마련의 계기가 됐습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인 이은의 변호사는 "명백히 불법촬영물이 맞다면 보는 것만으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며 "과거에는 유명 연예인의 불법촬영물이 유포됐을 때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왔다면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법리가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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