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 '보호'한 경찰, 민노총 집회 '충돌' …왜?[알고보니]

조현기 기자 2023. 7. 2.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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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근거해 대응하는 경찰…"퀴어축제 적법히 신고"
집시법상 '제한·금지 가능' 해석 민주노총 집회에 적용

[편집자주] 뉴스1은 격주마다 '알고보니'를 연재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궁금할 법한, 그러나 논쟁이 될 수 있는 법률적인 사안을 풀어 쓰겠습니다. 독자분들이 '알고 나면 손해 보지 않는 꿀팁'이 되도록 열심히 취재하고 쓰겠습니다.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나선 공무원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2023.6.17/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조현기 기자 = 6월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경찰과 공무원이 충돌했다. 대구시 공무원들과 경찰이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벌였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향해 '이례적'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노조·시민단체가 특정 도로나 건물을 점거할 때 공무원들이 행정대집행에 나서는데 이런 경우 경찰은 공무원들을 보호하곤 했기 때문이다.

◇참가자 보호한 경찰…진보 진영도 경찰 응원 '이례적'

그런데 이날 오전 9시30분쯤 행사 장비를 실은 퀴어축제 주최 측의 차량이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들어서자, 대구시청과 중구청 직원이 차량을 가로막았다. 경찰은 차량이 정상적으로 들어올 수 있게 공무원들과 대치하다가 한 공무원이 길바닥에 넘어져 구급대를 불렀다. 이처럼 현장이 격화하는 와중에도 경찰은 행사 끝까지 참가자들을 보호했다.

진보 진영이 경찰을 응원하는 진풍경이 곧이어 펼쳐졌다.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위원장은 "살면서 경찰을 응원해 보긴 처음"이라며 "경찰들이 교통 정리를 해주는 상황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연출됐던 걸까. 대구시와 경찰이 퀴어축제를 두고 엇갈린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주최측 스태프들이 무지개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2023.6.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대구시는 '도로교통법'을 근거로 판단했다면 경찰은 '집회 및 시위와 관한 법률'(집시법)에 근거해 대응했던 셈이다.

먼저 대구시는 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이 대중교통전용지구 구간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어기고 불법 점령해 부스를 설치했다고 판단했다.

도로 통행 및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면 적치물 등을 제거하거나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도로법 74조는 규정하고 있다.

반면 경찰은 집시법상 퀴어문화축제가 적법하게 신고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다고 봤다. 신고제로 운영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사람은 시작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관할 경찰서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경찰의 금지 통고를 받지 않으면 정상적으로 집회 시위 활동을 할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에서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맡겨 결과에 따라 법적·행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 경찰을 비판했다. 반면 경찰청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린 집회도 대구시의 논리처럼 점용허가를 받고 한 적이 없다"며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기다리겠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경찰의 논리에 좀 더 설득력이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집회와 시위는 당연히 도로점용을 한다. 특히 집시법 소관부처인 경찰청이 문제가 없다고 할 땐 도로점용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구 퀴어축제 충돌 이후 약 보름이 지난 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대구 때와 달리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축제를 놓고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청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퀴어퍼레이드는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행사"라며 "공간을 독점하는 게 아니므로 '도로점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퀴어축제 주최 측이 집회를 신고했더라도 도로점용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아 문제시했던 대구시와 다소 다르게 해석했던 셈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일대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의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촉구하며 용산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3.5.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같은 집시법이지만 민주노총과 왜 '갈등'하는 걸까 하지만 경찰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출퇴근 시간 집회를 두고 주최 측과 갈등을 겪고 있다.

먼저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오는 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해 지난달 4일부터 17일까지 경찰 측에 30건의 집회신고를 했지만 27건의 제한 통고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는 거의 집회를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민주노총의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헌법 제21조'에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고, '집시법 3조'에도 '누구도 집회를 방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됐는데 경찰이 신고제인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찰은 같은 집시법을 근거로 '출퇴근 시간대 대규모 집회를 제한 및 금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경찰이 내세운 근거는 '집시법 12조'다. 교통 소통을 위해 '관할경찰관서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교통 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집시법 12조에 명시돼 있다.

요컨대 노조와 경찰 모두 같은 집시법를 두고 해석을 달리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양측은 조율하면서 집회를 진행했지만, 최근 들어선 의견 조율에 실패하면서 양측이 계속 충돌하고 있다.

이렇게 갈등이 지속되면 법원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1박2일 노숙집회'로 논란이 됐던 지난 5월17일 출퇴근 집회·행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경찰은 민주노총이 신고한 야간행진을 금지하라고 통고했으나 민주노총은 반발해 법원에 판단을 요청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2000명 이하 참가 등을 조건으로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민주노총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오후 8시30분부터 오후11시까지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행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서울광장 사용 불허 규탄, 집회·시위 자유 보장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6.2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cho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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