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큐] 입안에서 통삼겹살 살살...7시간 고생스러움 사르르
구덩이 파서 뜨거운 수증기로 익히는 방식
돼지고기·닭고기·고구마·달걀 등 차곡차곡
마을주민들 옛 시절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
‘삼굿구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삼굿구이는 구덩이를 파서 고기를 익히는 우리나라 전통 바비큐다. 삼굿구이의 ‘삼굿’이란 구덩이에 돌을 넣고 장작불로 달군 후 물을 부어 뜨거운 수증기로 삼을 찌는 것을 말한다. 이는 1500년대 고서인 ‘묵재일기’에 ‘삼을 베어서 돌을 달구어 푹 익혔다’는 문장으로 처음 등장한다. 19세기 실학서 ‘임원경제지’에는 증기로 삼을 찌는 방식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라고 기록돼 있다.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삼굿 잔존물을 통해 삼굿이 지역을 막론하고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이름조차도 낯설고, 농촌 어르신에게도 이젠 어릴 적 기억에만 남아 있는 삼굿구이를 만나러 강원 횡성으로 향했다.
횡성군 둔내면 삽교3리에 사는 오금택 이장(65)은 삼굿구이를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다. 농촌체험마을 ‘태기산 아침의 새소리’를 운영하는 그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삼굿구이를 선보이고 있다. 이날은 마을공동체 협의회가 열려 주민들과 함께 삼굿구이를 해 먹기로 했다.
‘삼굿구이’는 이렇게…
오 이장이 오전 5시부터 1시간 동안 판 불구덩이는 어느덧 깊이와 지름이 1m 정도 됐다. 그 옆에 음식을 넣는 작은 구덩이를 파고 솥을 올릴 ㄷ자형 벽돌 틀을 만든다. 두 구덩이 사이에 폭이 20㎝ 되는 짧은 통로를 낸 후 아래에 틈을 띄워 벽돌을 올린다. 불구덩이와 음식 구덩이를 분리한 것은 뜨거운 수증기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불을 피우는 구덩이를 ‘화집’, 삼을 찌는 구덩이는 ‘뫃곳(몰아놓는 곳)’이라고 불렀다. 1년에 한번, 삼 수확기인 7월에 온 마을에서 키운 삼을 모두 모아 삼굿을 했기 때문에 화집과 뫃곳의 크기는 매우 컸다. 2007년 강원 정선에서 재연한 전통 삼굿에선 화집과 뫃곳의 가로세로 길이가 3m에 이르렀단다.
오 이장이 큰 구덩이에 소나무 장작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마른 나무를 쓰면 금세 다 타버리고 젖은 나무에는 불이 붙지 않아 적당한 땔감을 쓰는 게 중요하단다. 쌓인 장작에 종이 불쏘시개를 넣자 불길이 장작으로 번져나간다.
“어디 보자. 불 좀 활활 피우려면 이게 필요하겠네요.”
오 이장은 낙엽 청소용 송풍기를 꺼냈다. 덜덜거리는 소음을 내며 바람을 일으키는 송풍기는 전통과 현대의 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송풍기를 갖다 대자 흰 연기를 내뿜으며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1시간30여분 동안 장작불이 타자 불구덩이에 어른 한뼘만 한 커다란 돌덩이들을 넣는다. 돌을 데워 그 위에 물을 부었을 때 나오는 뜨거운 김으로 음식을 익히기 때문이다. 돌은 2시간 동안 장작불 속에서 달궈지며 500℃까지 오른다.
“음식 넣어도 되겠네요.”
오 이장이 커다란 쇠솥과 음식 재료를 마당으로 가져왔다. 이날 삼굿구이에는 통삼겹살·닭고기·고구마·감자·옥수수·더덕·도라지·달걀이 들어간다. 솥에 재료를 차곡차곡 넣고 솔잎으로 덮은 후 뚜껑을 닫아 작은 구덩이 속 벽돌 틀 위에 올린다. 음식 구덩이 위에 널빤지를 얹고, 불구덩이와 음식 구덩이를 흙으로 덮는다. 전통대로라면 온 동네 사람이 삽을 들어야 하지만 오 이장은 흙을 담아둔 트랙터를 끌고 나타났다. 트랙터로 흙을 쏟고 빈틈을 삽으로 마무리한다.
쇠솥이 없던 옛날에는 음식 구덩이 바닥에 솔가지를 깔고 흰 보자기를 올렸다. 그 위에 연잎이나 호박잎 등으로 감싼 돼지고기·닭고기·옥수수·고구마·감자 등을 올려놓고 다시 흰 보자기를 덮었단다. 마지막으로 솔가지를 놓고 흙을 덮어 완성했던 것이다.
“기자님, 지금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잘 보세요.”
흙에 구멍을 내고 물을 부을 시간이다. 오 이장이 꼬챙이로 불구덩이 위를 푹 찌르자 체험마을에서 일하는 조명현 실장이 양동이로 물을 붓는다. 땅에서 활화산처럼 흰 김이 뿜어 오른다. 음식 구덩이로 김이 이동하도록 구멍은 흙으로 다시 덮는다. 이 과정을 ‘진물 붓기’라고 한다. 물이 많이 필요해서 전통 삼굿은 개울 근처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음식이 익는 동안 오 이장의 집으로 마을주민이 한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부녀회장 심연자씨(67), 새마을지도자 정병규씨(68), 신광순씨(70)가 마을의 막내 오 이장 집으로 모였다. 전남 곡성 출신인 심씨는 “고향에서도 삼을 많이 재배해 매년 삼굿을 했었다”며 “먹을 게 많지 않던 시절이라 기껏해야 감자·고구마나 넣었는데 돼지고기·닭고기도 맘껏 먹고 세상 참 좋아졌다”며 웃었다.
솥을 묻은 지 2시간여가 지나고 드디어 음식을 꺼낼 시간이 됐다. 주민들이 저마다 삽을 들고 흙을 퍼낸다. 온 마을이 힘을 모아야 했던 삼굿이 작게나마 재연됐다. 횡성에서 자란 정씨는 “서당에 다니던 6살 때 형들과 삼굿구이를 했다”며 “집에서 감자·옥수수를 가져와 땅을 파고 고무신으로 냇물을 퍼 나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신씨는 “닭을 훔쳐 오던 애들도 있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야, 맛있게 잘 익었네.”
솥을 여니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오 이장은 삼굿구이가 잘됐나 확인하려면 달걀을 깨봐야 한다며 청달걀 하나를 집어 든다. 뜨거운 달걀을 조심스레 만져가며 껍데기를 벗기고 반으로 쪼개자 샛노랗게 익은 노른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음식이 잘 익은 걸 확인한 심씨는 통삼겹살을 도마 위에 올려 숭덩숭덩 썰어냈다.
“치킨 닭가슴살은 퍽퍽한데 이놈은 아주 살살 녹네.” “감자·고구마에도 훈제 향이 아주 잘 배었어.”
마을사람들은 음식에 만족하며 즐거워했다. 삽교3리 토박이 신씨는 “이곳에서는 삼굿을 ‘삼꼿’이라고 불렀다”며 “삼의 마약 성분 때문에 마을에서 삼 재배가 금지되며 삼굿도 사라지게 됐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장장 7시간에 걸친 삼굿구이는 새벽배송으로 삼겹살을 주문하고 가스레인지로 10분 만에 익혀 먹을 수 있는 현대에선 지나치게 고생스러운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온 마을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와 가난한 사람들까지 먹인 삼굿구이는 누군가에겐 1년 동안 애타게 기다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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