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화장실·원룸서 출산하는 청소년 부모들"…미혼모들은 어디에
"'자동 통보' 출생신고제 환영…보호출산제는 재고해야"
(서울=뉴스1) 유민주 김민지 기자 = "모텔과 화장실, 원룸에서 아기를 낳는 엄마들이 제가 상담하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엄마들이 익명 출산을 원해 병원에 가지 않는 게 아니에요. 90%는 자기 몸 상태나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출산한 경우입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미혼모 긴급주택지원 단체에서 6년째 상담 중인 유미숙씨는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씨를 찾아온 미혼모들은 청소년을 포함한 만 24세 이하의 부모다. 임산부들은 보통 40주 동안 아이를 품다가 출산한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덜 성숙한 어린 부모들은 조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어려움과 출산의 두려움에 가로막혀 병원으로 향하지 못한다. 결국 '병원 밖 출산'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또 출산 이후 출생신고를 원해도 신청 절차가 어려워 미혼모들이 이곳으로 발걸음한다는 게 유국장의 설명이다.
병원 밖 출산은 유령영아(출생 미신고 영유아) 문제와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태어났지만 기록엔 없는 유령 아동에 대한 정부의 전수조사가 진행되면서 미신고 아동이 최소 2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곳곳에서 잇달아 영유아 유기 사건이 발생하자 '유령영아' 실태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익명 출산 원해 병원 가지 않는 게 아냐"…미혼모의 현실
지난해 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한 A양(당시 17살)은 부모의 강요로 임신 중단을 강제로 당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임신 사실을 알고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부모에게 연락하면 또 임신 중단을 강제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A양은 자택에서 조산했다. 동갑내기 남편이 탯줄을 잘랐다. 이후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했지만 그때서야 알았다. 한국은 병원 밖에서 출산한 경우 그 과정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해야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유 국장은 "지난 6년간 만난 청소년 부모들 가운데 애초에 출산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병원 밖에서 출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운을 뗐다.
"일각에서는 미혼모들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는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최근 1년간 A양을 비롯해 유씨를 찾은 청소년 부모 17명은 저마다 사연이 있었지만 비슷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 가정사로 인해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청소년 부모들이었다.
"대부분 임신 상태를 모르고 지내다가 출산 직전 막달에 알게 된 미혼모들,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돼 아르바이트가 힘들어지자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미혼모들이 상담을 요청해요. 밀리는 월세 등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지만 결국 빚이 쌓여 고시원과 친구 집 등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아요."
벼랑 끝에 몰린 청소년 부모들은 갈 곳을 찾던 중 홈페이지에 실린 유 국장의 글과 연락처를 보게 되면서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미혼모 '삶의 변곡점' 올까…주거 안정·정서적 지원 필요
유 국장이 일하고 있는 단체는 위기 미혼모들을 상담하고 자립 의지 정도에 따라 임시거처를 제공할 미혼모를 선정한다. 선정되면 '매입형 공동생활가정' 형태의 주택은 물론 채무 해결을 위한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매입형 공동생활가정은 시중 전셋값의 30% 수준에서 보증금과 임대료로 나눠 책정되며 운영기관에 선정된 민간 기관은 여성가족부와 서울시로부터 운영권을 받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직접 요청해 집을 고를 수 있다.
B양은 19세에 아기를 낳고 미혼모 시설에 들어갔다. 하지만 자립이 안되자 시설에서 나와 친구 집 등 곳곳을 떠돌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 유 국장은 금융 전문가에게 요청해 B양의 부채 상황을 파악하고 기초생활수급 등 긴급복지를 신청했다.
"긴급복지는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2주 후에 지급돼요. 그렇게 나온 돈을 어떻게 생계비로 활용할지에 대해 같이 계획하고 신용회복 혹은 개인회생 단계에 나서기도 합니다."
유 국장은 이들에게 '삶의 변곡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 시작은 주거 안정이었다. 몇 차례 긴급 생계비로 끝내는 일회성 정책이 아니라 청소년의 상황에 맞게 임신 단계에서부터 필요한 진료와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거비를 낮춰주면 생계비를 더 높여주는 효과가 나잖아요. 근데 그거는 한 번만 제대로 해주면 계속해서 시너지(상승 효과)가 나는 거니까요. 그래서 주거 보증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혼자서도 아이와 함께 살아갈 토대를 만들어주는게 중요하다고 봐요."
B양의 경우 정서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원래 있던 시설 B양의 방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유 국장은 "미혼모들의 경제적인 안정만 도울 것이 아니라 산후 우울증 등 심리적 상담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최근 많이 느꼈다"고 털어놨다.
◇'익명 출산 유도'해 양육 포기 부추길 우려
국회는 지난 30일 본회의를 열어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지자체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으로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가능성을 고려해 보호출산제를 함께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익명 출산을 유도해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보호출산제는 아직 계류 중이다.
유미숙 국장도 산모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보호출산제의 접근방식이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유 국장은 "출생신고제를 개편해 자동으로 출생을 통보하는 제도 변화는 환영하지만 이와 연계돼 성급히 추진되는 보호출산제는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발의된 보호출산제 특별법안(국민의힘 김미애의원 발의)이 통과되면 특수상황에 놓인 여성은 병원에서 자신의 신분을 가린 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그 즉시 산모와 분리돼 입양 대상 아동이 된다.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양육 포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 국장은 "신분을 밝히기 어려워하는 외국인 체류자, 북한이탈주민, 성매매피해여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 청소년 미혼모들이 보호출산제를 통해 입양 대상 아동의 주공급자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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