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투? 형 믿으니까 똑같이 꽂았죠"…괜히 277억 벌었겠어요

김민경 기자 2023. 7. 2.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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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양의지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울산, 김민경 기자] "바닥에 공 한번 심었는데도 똑같이 꽂을 수 있었던 건, (양)의지 형을 믿어서 그렇게 던졌죠."

두산 베어스 필승조 정철원이 1일 울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챙긴 뒤 안방마님 양의지에게 공을 돌렸다. 정철원은 두산이 2-1로 쫓긴 9회말 1사 1, 2루 위기에 마무리투수 홍건희의 공을 이어 받아 김민석과 고승민을 연달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1점차 승리를 지켰다.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정철원은 첫 타자 김민석을 상대할 때는 볼카운트 2-2에서 7구째 포크볼을 잘 떨어뜨려 헛스윙을 끌어냈다. 양의지는 다음 타자 고승민을 상대할 때도 계속해서 포크볼을 던지게 했다. 변화구로 신중하게 승부를 걸었고, 볼카운트 0-2까지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데 3구째 포크볼이 너무 낮게 제구되면서 포수 뒤로 빠지는 폭투가 됐다. 2사 2, 3루로 상황이 바뀌면서 두산 배터리는 더더욱 압박을 느낄 법했다.

양의지는 폭투로 공을 한번 흘린 상황에서도 정철원에게 4구째 한번 더 포크볼 사인을 냈다. 이번에도 폭투가 될 뻔한 위험한 공이었는데, 양의지가 필사적으로 몸 앞으로 공이 흐르도록 막아섰다. 누상에 주자는 당연히 움직일 수 없었다. 5구째 직구가 파울이 되자 양의지는 다시 포크볼을 던지게 했다. 6구째 볼로 풀카운트까지 갔는데, 결국 7구째 포크볼로 헛스윙을 유도하며 삼진으로 경기를 끝냈다.

정철원은 "자신 있게 의지 선배 사인대로 던졌다. 너무 낮게 던져서 공이 빠져 잠시 위기도 있었지만, 의지 선배 사인에 자신 있게 낮게 낮게 던진 게 좋은 결과로 따라오지 않았나 싶다. 바닥에 공을 한번 심었는데도 똑같이 꽂을 수 있었던 것은 의지 형을 믿어서 그렇게 던졌다. 사인 자체가 직구는 코스대로 잘 들어갔던 것 같고, 첫 번째 삼진(김민석) 잡은 포크볼 역시 사인을 믿고 던졌다"며 안방마님의 리드를 전적으로 따랐다고 밝혔다.

▲ 양의지(왼쪽)와 정철원 ⓒ 두산 베어스

선발투수 곽빈도 양의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곽빈은 이날 공 104개를 던지면서 스트라이크가 55개에 불과할 정도로 제구가 안 되는 날이었다. 4사구는 5개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7승(2패)째를 챙길 수 있었던 건 함께 돌파구를 찾아준 양의지 덕분이었다.

곽빈은 "의지 선배가 내가 던지는 경기에서 90% 이상은 함께한다. 정말 감사하다. 한국 최고 포수랑 같이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허리가 좋지 않아) 아프신데도 팀을 위해 뛰어주셔서 나도, 팀도 본받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두산 투수들이 호투 뒤 양의지에게 감사를 표하는 건 늘상 있는 일이다. 양의지는 까마득한 후배들의 감사 표현에 "이틀 연속 팽팽한 투수전으로 경기가 진행돼서 어떻게든 집중해 연패를 끊자는 생각만 했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두산이 괜히 양의지를 올 시즌을 앞두고 KBO FA 시장 역사상 최고액을 적어 데려온 게 아니다. 양의지는 2019년 시즌을 앞두고 처음 FA 자격을 얻어 NC 다이노스와 4년 125억원에 계약했다. 두산을 대표하는 안방마님이었던 양의지의 이적은 꽤 큰 파장을 일으켰다. 두산은 4년 동안 양의지가 다시 자유의 몸이 되길 기다렸고, 지난 시즌 뒤 FA 재자격을 얻자마자 4+2년 총액 152억원 계약서를 내밀어 도장을 받았다. 양의지는 FA 총액 277억원으로 역대 최고액 신기록을 세웠다.

▲ 양의지 ⓒ 두산 베어스

30대 후반에 접어든 지금도 양의지는 공수를 겸비한 리그 최고 포수다. 곽빈, 정철원, 박치국, 이영하, 김동주 등 팀은 물론 한국 야구를 이끌어야 할 영건들의 성장에 이바지하면서 4번타자 임무까지 맡고 있다. 68경기에서 타율 0.321(224타수 72안타), OPS 0.900, 7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이런 양의지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이 감독은 "사실 무리를 했다. 포수로 나가지 않을 때는 지명타자로 나갔다. 정강이가 안 좋을 때 휴식하긴 했지만, 1주일을 풀타임으로 뛰기는 체력 부담이 있다. 투수들이 잘 막아주고 있는 비결은 당연히 양의지의 힘이 크다. 많은 경기에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컨디션 조절과 허리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무리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양의지는 사령탑의 마음도, 지금 자신이 팀을 위해 어떤 임무를 해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양의지는 "팬분들께서 허리 상태 걱정을 많이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정말 철저히 관리해 주는 덕분에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어떻게든 팀 승리에 보탬이 되는 것만이 그 응원과 걱정에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전반기 10경기가 남았는데, 최대한 많은 승수를 쌓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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