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취준생 지단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취업. 어렵다. 누구에게나 어렵다.
오늘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 2년째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취준생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지난 2021년 그 좋다고 소문한(연봉도 업계 최상위라는) 직장 레알 마드리드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뛰쳐나온 지네딘 지단 감독이다. 그는 지금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취준생 지단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견으로 축구와 예술(아트)을 연계시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진정 예술이었다. 아트 사커의 마에스트로.
개인적 감정은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자. 지단은 얼마나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까.
먼저 지단의 스펙부터 간단히 짚어보자. 워낙 업적이 많아, 일일이 다 나열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정말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그리고 발롱도르 수상까지. 하나도 갖기 힘들다는 이 3개를 모두 가진 욕심쟁이. 세계 축구 역사에 9명만 존재한다.
참고로 나머지 8명은 바비 찰튼·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파올로 로시·히바우두·호나우지뉴·카카·리오넬 메시다.
감독으로서 스펙도 대단하다. 이것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한 번도 어렵다는 UCL 우승을 레알 마드리드에서 3연패를 달성했다. 21세기 최초다. 유러피언컵에서 UCL로 재편된 후 최초이기도 하다.
너무나 위대한 스펙. 고스펙 중 슈퍼 고스펙. 취준생의 끝판왕 아닌가.
그런데 이런 그도 취업이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아무리 고스펙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만족하는 직장을 구하기는 어렵다. 취업이란 스펙도 중요하지만 모든 상황과 변수가 맞아떨어져야 이뤄지는 법. 운과 타이밍도 따라줘야만 한다. 그래서 지단의 재취업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취준생 지단은 오직 한 곳을 바라보며 재취업을 준비했다. 바로 조국의 축구팀, 프랑스 대표팀 감독직이었다. 하지만 거부당했다. 그리고 모욕도 당했다. 프랑스는 디디에 데샹 감독과 재계약을 했는데, 남의 자리를 탐한다며 공개적인 조롱을 받은 것이다.
노엘 르 그라에 프랑스축구협회 회장은 이렇게 막말을 했다.
"지단에게 많은 지지자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몇몇은 데샹이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샹이 떠난다는 말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지단이 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면,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지단이 다른 대표팀이나 다른 클럽을 찾을 수 있도록 특별한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굴욕을 당한 지단. 이때다 싶어 상처 받은 지단을 위로하고자 많은 팀들이 달려 들었다. 브라질 대표팀, 미국 대표팀, 벨기에 대표팀 등 국가대표팀과 파리 생제르맹, 유벤투스, 첼시 등 빅클럽들도. 하지만 지단은 모두 정중하게 거절했다.
왜? 고스펙의 하늘을 찌르는 잘난 척인가.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옷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단은 다음 직장의 환경, 그 직장 사람들이 주로 쓰는 언어 등 모든 것을 고려하고 파악했고, 자신에게 대비시킨 후 판단을 내렸다.
즉 자신의 인생을 담을 직장에 진정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 진정성은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취준생도 자존심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이 있다. 함부로 대하지 마라.
지단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를 지단에게 연봉 7500만 유로(1080억원)를 제시했다. 세계 최고 감독 연봉 신기록. 감독 연봉 1000억원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지단은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의 진정성이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지단은 프랑스 대표팀이 아니면 취업을 하지 않을 생각인 것일까. 아직 데샹 감독의 계약이 끝나려면 3년이나 남았다.
지단과 친하지는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니라고 추측한다. 꼭 프랑스가 아니더라도 지단의 철학과 방향성이 맞아 떨어지는 팀이 등장할 것이라고 본다. 3년은 너무 길다. 그의 고스펙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러면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 취준생에게 하는 잔인한 말, 잔인한지도 모르고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 더욱 잔인한 말. '눈높이를 낮추라!' 지단은 눈높이를 낮춰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건 애초에 잘못된 말이다. 프랑스 대표팀보다 낮은 수준의 팀을 고르는 것이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눈높이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빅클럽이면 눈높이를 높이는 거고, 중소 클럽이면 낮추는 건가. 돈을 많이 주면 눈높이가 높은 거고, 적게 주면 낮은 건가. 이런 1차원적인 발상과 발언은 무시해도 좋다.
취업에 관한 눈높이는 높고 낮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자신의 눈높이에 편안하면 된다. 빅클럽에서 더 많은 우승을 쟁취하며 역사와 전통을 즐기는 것도 의미가 있고, 작은 클럽을 맡아 강호로 도약시키는 것 역시 의미가 크다. 어떤 일이 더 가치 있는 일, 눈높이가 높은 일인지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눈높이가 아니라 마음이 닿는 크기라고 생각한다.
지단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단은 자신의 편안한 눈높이에 맞게, 가장 마음이 커지는 곳으로 취업을 할 것이다. 이를 위해 2년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 내가 진정 다니고 싶은 직장, 내가 진정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을 성급하게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급증으로 인한 '묻지마 취업'은 자신의 커리어에 커다란 구멍을 낼 가능성이 크다.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눈이 편안한 곳으로 향하면 실패할 확률은 낮다.
지단 같은 슈퍼 고스펙도 취업이 힘들다. 모욕도 당했고, 상처도 받았다. 천하의 지단이라도 무직의 시간이 길어지면 걱정되지 않겠는가. 그래도 자신을 믿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지단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취준생들, 좌절 금지.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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