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화순탄광 ‘폐광’, 11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3. 7. 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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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시절 1905년부터 채탄…6월30일 종업식 갖고 폐광
호남지역 최대 탄광…지역경제 버팀목 ‘군민과 애환’
‘국민 연료’에서 석탄산업 퇴조 못 이기고 쇠락의 길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118년 채탄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가 30일 폐광됐다. 유일하게 채탄작업이 이뤄졌던 '동갱'은 4월 30일자로 채탄작업을 종료했다. '118년 동안 화순경제의 중심이었던 화순광업소, 고생많으셨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표지석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화순탄광이 6월 30일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05년 문을 연 지 118년 만이다.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지만 누적 부채 규모가 커지고 생산설비도 노후화되면서 결국 폐광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전남 화순군 동면 복암리 일대에 자리한 화순탄광은 이날 오전 9시, 간략한 종업식을 갖고 폐광했다. 유일하게 채탄작업이 이뤄졌던 '동갱'은 지난 4월 30일자로 채탄작업을 종료했다. 

산업부는 지난해 노사정 간담회를 통해 대한석탄공사가 소유한 전남 화순탄광, 태백 장성탄광, 삼척 도계탄광을 조기폐광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왔다. 지난 2월 대한석탄공사 노사는 올해 6월 말 화순탄광을 시작으로 내년 태백 장성탄광, 2025년 삼척 도계탄광을 폐광하기로 최종 합의한 바 있다.

국내 1호 전남 화순탄광이 30일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05년 문을 연 지 118년 만이다.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지만 누적 부채 규모가 커지고 생산설비도 노후화되면서 결국 폐광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화순군 동면 화순탄광 전경 ⓒ화순군

화순탄광은 어떤 곳

화순탄광은 국내 1호 탄광으로 서민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화순탄광의 정식 명칭은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로 호남탄전의 중심부인 화순지구에 있는 무연탄 광산이다. 화순군 동복면·동면·한천면·이양면·청풍면 일대 200㎢에 걸쳐 20여개의 광산이 분포됐다. 면적만 해도 30.7㎢, 갱도 길이가 80km에 이른다. 

화순탄광은 대한제국 고종 시절인 1905년 4월 한국인 박현경이 광업권을 등록해 문을 열었다. 이후 1934년 일본인이 매입해 종연탄광과 남선탄광으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했다. 지난 118년 동안 우리나라 남부권의 최대 석탄 생산지로서 과거 '국민 연료'였던 연탄의 수급 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엔 삼척과 영월, 음성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탄광으로 꼽혔다. 특히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부흥기를 맞는다. 

국내 1호 전남 화순탄광이 30일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05년 문을 연 지 118년 만이다.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지만 누적 부채 규모가 커지고 생산설비도 노후화되면서 결국 폐광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30일 오전 화순탄광 갱도 안에 멈춰선 축전차(전차) ⓒ시사저널 정성환

화순군민 애환 서린 곳…지역경제 버팀목

화순탄광은 국토 서남권의 유일한 탄광으로, 화순뿐만 아니라 전남지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초기에는 북갱(北坑) 단일체제로 운영하다가 1960년에 남갱을 신설하고 이를 중심으로 남구 구역을 개발하여 생산량을 증대했다. 탄광의 호황과 더불어 광산 취락도 발달하게 돼 1960년대에 화순 지역의 인구는 15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해줬던 고마운 광산이었다. 

최대 호황기는 80년대 중·후반으로, 연간 70만 5000톤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한 때 화순탄광의 종사자가 1700여명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이 시기 화순 동면의 인구가 1만명을 넘어서며 자연스레 광업소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됐다. 광부의 월급이 공직자들보다 많을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탄광 주변 산골마을에 기차가 지나고 영화관, 대형병원이 들어설 만큼 북적였다.

화순군 동면 오동리 최병철 이장은 "그 당시 마을의 모든 가게들을 광업소 직원들이 먹여 살렸다"며 "모든 음식점, 술집 에서 광업소 다닌다고 하면 외상이 가능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오죽하면 교사, 경찰 등이 공무원을 그만두고 광업소로 이직했겠느냐"고 당시를 회상했다.

번성 못지 않게 어두운 그림자 또한 얼씬거렸다. 매년 압사나 갱도 붕괴 등으로 숨지는 광부가 속출했다. 화순광업소가 매년 9월 9일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합동제사를 지내고 석탄산업 종사자 추모공원을 조성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화순탄광은 5·18 당시 계엄군이 금남로에서 광주시민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자 시민군들이 전남도청 사수를 위해 폭약과 뇌관 등을 가져온 곳이기도 하다. 계엄군에 맞설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할 목적이었다. 그로 인해 계엄군이 쉽사리 도청으로 진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화순탄광 정문에는 5·18 사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국내 1호 전남 화순탄광이 30일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05년 문을 연 지 118년 만이다.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지만 누적 부채 규모가 커지고 생산설비도 노후화되면서 결국 폐광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30일 오전 휑한 화순탄광 갱도 내부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대한제국(고종) 시절부터 채탄을 시작해 118년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가 6월 30일 폐광됐다. 유일하게 채탄작업이 이뤄졌던 '동갱'은 4월 30일자로 채탄작업을 종료했다. 이날 오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축전차(탄차)가 '동갱' 갱도 입구에 멈춰 서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난방 LNG로 바뀌고 정부 석탄사용 규제로 사양길

하지만 호황을 누리던 에너지원과 산업구조 변화의 흐름 속에 점차 경쟁력을 잃어갔다. 화순광업소는 88서울올림픽을 맞아 정부가 석탄사용을 규제하고 에너지원 구조를 바꾸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어 1989년 액화천연가스(LNG)로 난방이 바뀌고 1990년대 들어 정부의 석탄 감산 정책에 따라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지난 2021년 한해 생산량은 6만3000톤에 그쳤다. 잘 나가던 80년대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특히 연탄 수요 감소로 석탄 생산원가가 급증해 매년 대한석탄공사의 누적 부채 규모가 커졌다. 정부 재정도 악화됐다. 갱도가 계속 깊어지고 생산설비가 노후화하면서 근로자의 안전사고 가능성도 커졌다. 이 같은 석탄산업의 퇴조로 인해 화순광업소도 규모가 축소되고 탄광촌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는 7월 1일자로 '화순사무지소'로 조직을 축소해 올해 말까지 탄광 정리작업 등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어 내년부터는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관리주체가 넘어가 광해관리와 해당 지역 활성화 방안 등을 진행한다. 화순탄광에 마지막까지 남은 근무인력은 260여 명으로 폐광과 함께 모두 퇴직처리됐다. 

국내 1호 전남 화순탄광이 30일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05년 문을 연 지 118년 만이다. 남부권 최대 석탄 생산지였지만 누적 부채 규모가 커지고 생산설비도 노후화되면서 결국 폐광의 길을 걷게 됐다. 화순탄광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화순군, 부지 대체산업 모색…정부차원 지원 요구

화순군은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 탄광부지 개발에 나서게 된다. 화순군은 광업소 부지 매입비를 325억원을 정부가 전액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 화순군은 폐광 이후 근로자들의 고용승계나 대체산업 개발, 주변 마을 지원대책 등 정부차원의 전반적인 대책마련도 촉구하고 있다. 강원도 정선에 사북탄광이 문화관광촌으로 탈바꿈된 이후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화순탄광도 사북탄광처럼 장기적으로 재생을 위한 부지 활용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을 떠안고 있다. 

구복규 화순군수는 "평생 고된 채탄작업을 통해 국가와 화순경제에 기여한 광업노동자들이 충분한 지원과 예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화순광업소 부지매입비 전액을 국비로 지원하고 순직한 석탄산업 종사자의 추모공원 등 폐광 복구계획을 실행하는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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