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황에 뒤집힌 독서 트렌드… 재테크 덮고 ‘자(自)테크’ [S스토리]
자기계발서 판매 2년간 -4%→34% 상승
전체 구매자 비중의 64%가 3040세대
종합 1위 오른 ‘세이노의 가르침’ 등
베스트셀러 10위권 절반이 ‘자기계발’
엔데믹 영향으로 여행도서 인기 급증
출간 10년 지난 ‘원씽’ 2위 역주행도
애니 흥행 힘입어 日 소설·만화도 강세
‘스즈메의 문단속’ 원작소설 5위 안착
지난해 주식은 물론 부동산 투자 서적까지 열심히 사서 읽었던 회사원 이모(37)씨는 요즘 재테크 관련 서적을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진한 증시의 영향으로 투자한 주식들이 상당한 규모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탓이다. 이씨는 “지난해 재테크 책들을 보면서 주식 투자를 배워 나갔고 부동산도 공부했지만, 올해는 투자한 주식 수익률이 30% 안팎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관심이 많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책도 거의 찾아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뿐만이 아니다. 올해 상반기 경기 부진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마저 약세를 면치 못하자, 재테크 책 대신 자기계발 책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아울러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종료로 여행도서 판매가 급증한 반면, 대선 같은 굵직한 정치 일정이 없어서 정치사회 서적 판매는 크게 줄었다.
팬데믹 시기 저금리를 바탕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 투자 열풍이 불면서 재테크 서적 역시 불티나게 팔렸던 지난 1∼2년 전과 달리 올해는 경기가 부진하고 자산 시장마저 시들해지자 재테크 대신 자기계발 서적을 찾은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재테크를 비롯한 경제경영서 판매는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24.4%, 2021년 37.0%의 상승세를 보였다가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꺾인 지난해 -7.9%, 올해는 -16.7%를 각각 기록했다. 반대로 자기계발서의 경우 2021년 -4.3%에서 2022년과 2023년 각각 17.9%, 33.6%로 급증세를 보였다.
분야별로는 엔데믹(풍토병화)의 영향으로 여행도서 판매가 급증한 반면, 큰 정치 이벤트가 없어서 정치사회 분야는 부진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분야별 판매신장률은 여행이 64.6%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자기계발서(33.6%), 만화(14.6%)가 이었다. 반면, 정치사회는 -38.8%를 기록했고, 취업수험서(-17.8%)와 경제경영(-16.7%) 역시 저조했다. 전체 판매권수 점유율의 경우 중·고 학습 분야가 15.3%로 가장 높은 판매 비중을 기록한 가운데 아동(8%), 소설(6.8%), 인문(6.8%), 경제경영(6.6%)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전에 출간된 책들이 뒤늦게 붐을 일으키는 ‘역주행’도 빈번하다. 리커버 에디션 출간이나 뒤늦은 수상 등도 요인이 됐지만, 중심에는 역시 유튜브가 있었다.
게리 켈러의 책 ‘원씽’은 출간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올해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됐다. 인기 유튜버들이 자신을 일구는 데 도움을 준 책으로 소개한 뒤 2014년 40위권에 그쳤던 책이 올해 2위로 솟구친 것이다.
2015년에 출간된 최진영 작가의 소설집 ‘구의 증명’ 역시 지난 1월 책과 어울리는 음악 리스트를 추천해 주는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소개된 뒤 판매량이 급증, 올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9위까지 올랐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1월 판매량은 전월 대비 48.8%나 급상승했다. 피터 나바로의 책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역시 유튜버의 추천 후 다시 주목받아 종합 베스트셀러 32위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는 일본 콘텐츠도 강세를 보였다. 주로 애니메이션이 먼저 흥행 바람을 일으킨 뒤 해당 작품의 원작 만화나 소설이 뒤따라 약진하는 루트를 밟았다.
지난 1월 극장판 애니메이션 ‘슬램덩크’가 개봉하면서 ‘슬램덩크 N차 관람’ 유행은 물론 원작 만화책을 찾는 이들도 급증했다. 애니메이션의 원작 만화 ‘슬램덩크 리소스’, ‘슬램덩크 1’, ‘슬램덩크 챔프’가 각각 교보문고의 종합 베스트셀러 27위, 29위, 30위에 랭크됐다.
지난 3월부터 극장판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흥행하면서 동명 원작 소설도 덩달아 인기를 구가, 종합 베스트셀러 5위까지 올라섰다. 아울러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 역시 개봉하면서 만화 단행본의 판매가 크게 늘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출판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단연 ‘세이노의 가르침’이었다.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글을 독자들이 제본해 돌려 읽다가 지난 3월 정식 출간된 뒤 6월까지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책과 e북을 합치면 최소 60만부 이상이 팔리거나 유통됐다는 분석도 있다.
교보문고 통계에 따르면, ‘세이노의 가르침’은 17주 연속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자리를 유지했다. 15주 이상 연속 종합 1위는 2016년 2월 첫째 주부터 5월 둘째 주까지 1위에 오른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이후 7년 만이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맨주먹으로 시작해 부동산 사업과 증권 투자 등을 통해서 1000억원대의 자산을 일군 ‘세이노’가 2000년부터 발표한 글들을 모은 책으로,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환상을 버리라’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해야 몸값이 오른다’, ‘가난한 자의 특성은 버려라’ 등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나 깨달음이 담겼다.
특히 책의 흥행은 기존 출판 마케팅의 통념을 모두 깼다는 점에서 출판가에서도 화제가 됐다. 700쪽이 넘는 벽돌책인데 반해, 가격은 일반 책의 절반 수준인 7200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자책이나 PDF 파일은 이미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됐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은 “이해하기 힘든 가격 정책과 전통적인 마케팅 셈법에서 벗어난 듯한 판매 방식임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며 “여태까지 출판 마케팅의 통념을 깨부수며 출판계에 여러 화두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물론 책에 대한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독창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기존 책들을 짜깁기한 것이 적지 않은 데다가 과도한 부자주의나 물신주의를 지나치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198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시집 ‘엽서쓰기’, ‘다락방으로 떠난 소풍’ 등을 펴낸 김율도 작가는 천상병 시인이나 학벌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세이노의 가르침은 틀렸고, 사실을 왜곡하며, 독선적이다. 책이라고 모두 좋은 책은 아니다”라며 책 내용을 비판하고 문제 제기한 e북 ‘세이노의 가르침에 질문함―인생 가변의 법칙’을 펴내기도 했다. 호평과 찬사도 쏟아지지만, 다음 브런치나 블로그 등을 중심으로 비판 의견도 점점 확산하고 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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