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의견] 주장하지 말고 분석합시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2023. 7. 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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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기자는) 칼럼 쓰지 맙시다'라고 지난 글에 썼다. 이에 대한 전형적 반론이 있다. '사실과 의견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가?' 물론 그 경계는 굵은 직선으로 그어져 있지 않다. 사실과 의견의 경계는 해변을 닮았다. 쉼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덮이지만, 끝내 바다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땅이다.

[관련기사: [사실과 의견] 칼럼 쓰지 맙시다]

그 해변에서 기자는 사실을 모래알 단위로 잘게 부수어 분석(analysis)하고, 그 연관을 해석(interpretation)하며, 복잡한 관계를 설명(explanation)하여, 독자에게 맥락(context)을 제공한다. 이 네 범주는 의견의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 있지만, 여전히 단단한 사실의 땅에 속한다. 이 해변에서 기자는 공론에 뛰어드는 독자에게 분석, 해석, 설명, 맥락의 구명조끼를 입힌다.

그런 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1930년대에 등장했다. 핵심 계기는 1차 대전이었다. 당시 (미국 독자에게) 해외 뉴스의 주요 창구였던 AP는 '분명히 발생하여 자명한 것에 대한 사실적 보도'만 기자들에게 요구했다. 그 기사를 읽은 미국인은 유럽에서 왜 그토록 거대한 전쟁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1930년대 중반 새로운 유형의 기사가 등장했다. <뉴욕타임스>의 '뉴스 리뷰' 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현재의 뉴스를 잘 이해할 수 있고(understandable) 의미 있게(meaningful) 만드는 배경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배경 정보', '사실의 의미', '독자의 이해'라는 단어를 주목하자.

이를 저널리즘의 핵심 기치로 끌어올린 인물은 기자이자 언론학자였던 커티스 맥두걸(Curtis MacDougall)이다. 그는 1932년 초판을 발행한 교과서 <초년 기자를 위한 보도>(Reporting for beginners)의 제목을 1938년 2판에서 <해석적 보도>(Interpretative reporting)로 바꿨다. 이 책의 3판에서 '해석 보도'를 설명한 대목을 발췌·요약하면 이렇다. '해석적 보도는 어떤 뉴스를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사건들의 연쇄 고리로 본다. 다른 사람들이 현상만 관찰할 때, 해석적 보도는 그 원인을 본다. 해석적 보도를 추구하는 기자는 과학자들이 현미경으로 시료를 조사하는 것처럼 그 사건을 연구한다.' 여기서는 '사건의 연쇄 고리', '과학', '원인', '조사', '연구'라는 단어를 기억해두자.

그래도 '사실과 해석과 의견'이 어떻게 다른지 묻는 기자들이 그 시절에도 많았던 것 같다. 해석적 보도가 확산되던 1953년 4월, 미국 <뉴욕타임스> 일요판 편집장 레스터 마클(Lester Markel)이 미국신문편집자협회(ASNE) 기관지에 적은 글을 발췌·요약하면 이렇다. '

▲ 1953년 5월 뉴욕타임스 일요일 편집자 레스터 마클(Lester Markel)과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Montgomery) 육군 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당국이 상원의원을 조사한다는 것은 뉴스다. 왜 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해석이다. 그 상원의원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지적은 의견이다. 해석은 배경적 지식에 기초한 객관적 판단이다. 의견은 기자의 주관적 판단이다. 의견은 의견란에 게시되어야 한다. 해석은 뉴스의 핵심적 부분이다. 그 구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세기 전, 미국의 일개 신문사 부장이 제시한 정의만으로 '사실과 의견의 분리'라는 철학적 화두를 깨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 기자들에겐 낯선 기사 장르를 영미 언론이 아주 예전부터 갈고 닦았다는 점은 알 수 있다. 그것은 여러 사실을 연결하여 분석하고, 상관·인과 관계를 해석하여, 핵심을 친절하게 설명하되, '좋고 나쁨'의 주장과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분투하는 기사다. 이는 오늘에 이르러 '해석 보도'(interpretatvie report), '설명 보도'(explanatory report), '맥락 보도'(contextual report) 등으로 불린다.

그러니 '사실의 의미를 전하려면 칼럼이 필요하다'거나 '독자는 기사보다 칼럼을 좋아한다'거나 '칼럼 잘 쓰는 기자가 훌륭한 기자다'라는 오해를 바로 잡으려면, '칼럼'이라는 단어의 자리에 '분석·해석·설명·맥락 보도'를 넣으면 된다. 기자는 칼럼 쓰지 말고, 분석하고 해석하여 설명하면서 맥락을 제공하는 기사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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