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통화스와프 체결 성공 주역에 쏠리는 관심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일까.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한·일 양국의 적대감이 경제 분야에서도 마침내 허물어졌다. 한·일 통화스와프(통화 교환)가 8년 만에 복원됐기 때문이다. 두 나라, 또는 여러 나라 간의 통화 스와프는 반드시 필요한 경제 행위라고는 보기 어렵다. 정치·외교·안보·군사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에 더불어 경제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때 성사되는 것이다. 따라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다는 것은 해당 국가 간의 신뢰와 우호가 그만큼 깊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안보·군사 분야에서도 ‘공동의 이해(common interest)’가 있을 때만 성사된다는 뜻이다.
▶당대의 금융 전문가, 추경호 부총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은 경제정책·세제·예산 등을 다루는 기재부의 수장(首長)으로서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지만, 사실상 세부 전공을 따지면 ‘금융 전문가’다.
행정고시 25회에 합격해 공직을 시작한 추 부총리는 옛 경제기획원(EPB) 종합정책과 서기관 등 경제 기획 등의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치기도 했지만, 옛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 금융정책국장,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친 ‘정통 금융통’이다.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과거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듣던 재무부 이재국장의 후신(後身)이다. 옛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거친 뒤에도 그는 금융위원회 차관급 자리인 부위원장까지 역임하면서 ‘금융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이나 경제 부총리로 재직하는 과정에서는 경제 전(全) 분야를 관장하게 되지만, 굳이 따지자면 추 부총리의 세부 전공은 금융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본인이 옛 재경부 금융정책과장-금융정책국장을 모두 거쳤기 때문에 금융의 본질에 대해 이해도가 높고, 직원들이 한·일 통화스와프를 추진할 때도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지시를 내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한 후원군’ 역할을 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무 총사령탑,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
한·일 통화스와프를 실무적으로 총괄 지휘한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은 ‘기재부 국제담당 차관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제 경제와 관련된 사안은 김 관리관의 손을 거친다는 뜻이다. 1969년생으로 행시 37회에 합격해 공직을 시작한 김 관리관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을 졸업했다.
그는 기재부 국제기구과장, 외화자금과장,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국장 등 국제금융 라인의 주요 보직 모두를 거친 뒤 지난해 9월 16일 우리나라 국제금융 라인의 실무를 총괄하는 국제경제관리관(1급)에 올랐다. 주뉴욕대한민국총영사관 영사 등을 거쳐 국제 금융계 동향에도 빠르다. 기재부 노동조합이 발표하는 ‘닮고 싶은 상사’에 총 3회 선정돼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을 만큼 부 안팎에도 높은 명망을 얻고 있다.
▶실무 책임자, 범진완 기재부 국제금융국 금융협력과장
기재부가 29일 오후 전격적으로 배포한 ‘한·일 1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 체결’ 자료에는 범 과장과 4명의 사무관, 1명의 주무관의 연락처가 담당자로 명기돼 있다. 한·일 통화스와프 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 전체가 총력을 기울여 ‘혈투(血鬪)’를 펼친 흔적이 역력하다. 범 과장은 1973년생으로 서울 광신고-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행정고시 46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장관 비서관, 국제금융국 서기관, 대변인실 정책홍보담당관(과장)을 거쳐 현재 국제금융국 금융협력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제금융을 살펴보는 시야가 넓고, 추진력이 강하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보다 중요한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
이번에 체결된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는 100억 달러, 계약 기간은 3년이다. 2001년 20억 달러로 시작한 한일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을 거치면서 2011년 7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그 뒤 한·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규모가 계속 줄었고, 마지막 남아있던 100억 달러 계약이 2015년 2월 만료되면서 8년 넘게 중단됐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통화 교환 방식이 미 달러화 베이스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일본만은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 환율(엔·달러 환율)이 30일 국제금융시장에서 144~145엔대에 달할 만큼 급격히 오르고 있다. 앞으로 1달러당 150엔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원화를 일본 엔화로 직접 교환하는 방식의 통화 스와프는 양국 모두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시장에 불안감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 달러화 베이스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한 것은 우리나라 협상팀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환율이 불안정한 일본 측에도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양국 모두 ‘윈·윈’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가(外交街)에서는 "‘이익의 균형(Balance of Interest)’이야말로 외교의 예술(藝術)"이라는 말이 있다.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양측의 이익이 균형점을 잘 잡았을 때만 협정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한·일 통화스와프는 그런 측면에서 이익의 균형이 비교적 잘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해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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