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영의 이제 좀] 생활동반자법과 한동훈의 세계
[미디어오늘 황두영 작가]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지난 21일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마치 동성혼이 아니라 1인 가구에 대한 것인 양 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민주당이 동성혼을 주장하고 싶으면 1인 가구 핑계대지 말고 당당하고 주장하라”고 대답했다. 전날인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격렬히 이뤄진 후였다.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써서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나는 한동훈 장관 덕에 갑자기 떳떳하지 못하게 진의를 숨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한동훈의 주장은 생활동반자법, 더 나아가서 이 세계 자체에 대한 한동훈의 착시를 드러낼 뿐이다. 한동훈은 법사위 회의에서 여러 차례 생활동반자법은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신 관계를 형성하는 양자 사이의 가족법적, 민사적 계약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한동훈의 가족관이 부러웠다. 이성애자의, '초혼 적령기'의, 경제적 상류층의, 비장애인의, 남성의 가족구성에서는 위험성이 현저히 적다. 이런 가족관에서 가족 구성에서 중요한 건 민사적으로 손해 없이 더 큰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비슷하거나 나은 상대'를 만나고, 민사적 제도를 통해 손해를 예방하는 것만이 문제가 된다.
이런 시각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독해하면 생활동반자법도 그저 기존 가족법 밖의 사람들을 위한 민사적 제도로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국민들, 다양한 관계들을 보호하려는 생활동반자법의 다층적 의미는 도무지 독해되지 않는다. 한동훈이 독해에 실패한 부분을 제외해버리면 '가족 구성을 위한 민사적 계약'이 불허된 동성애자들을 위한 '혼인과 유사한 계약'이라고만 이해될 수밖에 없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해석은 더 노골적이다. 이날 회의에서 조정훈은 “1인가구는 그냥 1인가구 하면 된다”며 “1인가구가 많기 때문에 혼인 외의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법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인가구가 동반자성을 원하면 혼인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조정훈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1인가구는 그저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져 혼자를 선택한 사람이 된다.
한동훈과 조정훈은 가족이 되는 일이 엄청나게 어렵고, 남사스럽고, 반대와 차별을 자처하고, 폭력의 위험에 스스로를 놓는 일이 된다는 걸 결코 모를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이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간절함을 공감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OECD에서 압도적으로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이 1등인데도 말이다. 또 가정폭력과 스토킹의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변변치도 않은 동거인과 불안정한 관계를 반복적으로 맺는 사람들은 그저 한심한 자들이 된다. 동성 애인과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게 되는 동성애자들은 '마땅히 그래도 되는 자'들이 된다. 우리 정치의 정책결정자들은 이 취약함의 냄새를 결코 맡지 못하지만, 사기꾼과 폭력배들만은 취약한 사람들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착취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이해하는 것까지만 '세계'라고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각자의 '세계들'에 산다고 볼 수도 있다. 정책결정자들도 결국 한 개인으로서 각자가 이해한만큼만의 '각자의 세계'에 산다. 하지만 누군가를 대표하겠다는 것은 '내 세계'를 넘어 '공동의 세계'를 만들어보겠다고 감히 자임하는 것이다. 이 불가능한 과제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 정치이다. 우리가 조금씩 세계를 공유하게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적 능력이며, 그것이 결코 쉬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정치적 겸손이 된다. 한동훈이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한동훈이 자라난 '잘난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과 오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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