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 지분 매각' 쉰들러, 두 가지 의문점
쉰들러, 현대엘리 지분 0.54% 매각…38억원 규모
'장내 매도·지분율 10% 유지' 등에 대한 해석 분분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편집자]
악연(惡緣)
다국적 승강기 업체 쉰들러(Schindler)가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오랜 시간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노려왔던 터라 쉰들러의 등장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동안 쉰들러는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써왔습니다. 그때마다 현정은 회장을 필두로 현대그룹 측이 착실히 방어, 쉰들러의 시도는 무산됐습니다.
최근 쉰들러는 '현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습니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했습니다. 현 회장이 1700억원을 마련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마련,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켜냈습니다.
당초 현대그룹과 쉰들러는 우호적인 관계였습니다. 쉰들러는 과거 정상영 KCC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인수 추진 당시 현대그룹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쉰들러는 KCC그룹의 현대상선 인수가 무산되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대하면서 현대그룹을 압박했습니다. 뒤늦게 쉰들러의 속내를 알아차린 현대그룹은 지금껏 20년 가까이 쉰들러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그룹과 쉰들러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 상태입니다.
쉰들러에게 현대엘리베이터는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점유율 40%가 넘는 압도적인 1위 기업인 만큼 현대엘리베이터를 품으면 한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쉰들러는 집요했습니다. 현대그룹을 직접 흔들거나 여의치 않으면 간접적으로 흔들었습니다. 질긴 악연입니다.
의문 하나 : 왜 '0.54%'인가
지난달 26일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9만119주(지분율 0.54% 상당)를 장내 매도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주당 4만3000원선에 정리해 약 38억원을 현금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매각으로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종전 16.2%에서 15.95%로 낮아졌습니다. 쉰들러 측이 밝힌 지분 매각 이유는 '투자금 회수 목적'이었습니다.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매각한 것은 10년 만입니다. 쉰들러는 지난 2013년 말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5000주를 장내 매입한 이후 지금까지 지분 거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현대엘리베이터의 잇단 유상증자, 무상증자, 자사주 소각 등으로 지분율에만 변동이 있었습니다. 그랬던 쉰들러가 10년 만에 지분의 일부를 매각했으니 저의가 무엇인가 관심이 쏠렸습니다.
업계에선 '투자금 회수'로 보지 않습니다. 액수나 매각 주식수가 너무 작은 수준입니다. 통상 대주주 지분 매각시 활용하는 블록딜 대신 장내 매도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도한다는 점도 의문입니다. 블록딜은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매도자가 사전에 매수자를 구해, 주식를 넘기는 것을 말합니다.
업계에선 쉰들러가 아주 소량의 지분을 움직여 시장반응을 본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장내 매매 방식을 택한 것도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미끼라는 해석입니다.
의문 둘 : "10% 이상 유지"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일부를 매각하면서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0% 이상을 지속 유지할 계획이며 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로서 남을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향후에도 대주주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업계는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쉰들러측 발언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입니다. 말 그대로 '이번에 지분 일부를 매각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10% 이상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해석과 '이번 지분 매각을 계기로 앞으로 계속 지분을 매각하되 최소한 10% 이상은 남겨두겠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두 해석은 묘하게 다릅니다. 첫 번째 해석은 지금처럼 15%대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지만 두 번째 해석은 지분율을 계속 낮춰 10%대 초반까지 낮추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쉰들러는 두 해석 중 어디가 맞다고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입장입니다. 어느 쪽이 됐건 쉰들러는 훗날 문제가 될 소지를 사전에 차단한 셈입니다.
쉰들러 발표 후 시장은 움직였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쉰들러 지분 일부 매각 발표일인 지난달 26일 주당 4만3100원에서 다음 날 4만95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달 29일에는 3만97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나흘 만에 7.9% 하락했습니다. 시장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추가 매도할 것에 무게를 실은 겁니다.
쉰들러 진짜 속내는
그렇다면 쉰들러의 이번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일부 매각은 치밀한 계산속에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장내 매도를 한 점과 10% 이상 지분 유지 방침을 밝힌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쉰들러의 움직임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관찰하고 다음 스텝으로 옮겨가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입니다.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하락하면 쉰들러에게 유리합니다. 만약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추가 매수할 경우 부담이 줄어듭니다. 현대그룹에게는 악재입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현 회장 측이 향후 추가 담보 설정하기에 불리합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주가를 흔들어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게 진짜 이유라는 이야기입니다.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열망'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뜨겁습니다. 현대그룹의 입장에선 쉰들러의 '집착'이 참 괴롭고 지겨울 겁니다. 쉰들러가 불러일으킨 위기 때마다 방어해왔던 현 회장과 현대그룹이 이번 공격엔 어떻게 대응할까요. 함께 지켜보시죠.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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