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두 얼굴] 챗GPT시대, 학생들의 생각을 멈추게 하다
[인공지능의 두 얼굴 (13)]
과제 대신해주는 측면 부각, 진짜 문제는 '생각' 멈추게 하는 것
교육부 AI 맞춤형교과서 속도전, "도구적 활용, 속도주의 경계해야"
교사들, 적극 활용하되 '맹목적 이용' 경계·리터러시 교육 강화 필요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
챗GPT시대 '학교'와 '교육'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교사들 대상 연수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기 주제는 '인공지능', 그리고 '챗GPT'다. 교사들이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원 52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8.9%가 챗GPT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2000년대 초 정보화시대를 맞아 교실마다 컴퓨터를 배치하고 교사들이 컴퓨터 문서 작업을 공부하던 때에 못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과제 베끼기에 대응하는 학교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미 학교 안에 들어왔다. 특히 숙제나 과제를 할 때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사례가 늘면서 학교의 고민도 커졌다. 챗GPT에 특정 주제에 관한 글 작성을 요청하면 순식간에 그럴 듯한 글을 만들어내다 보니 과제에 활용하기 좋다. 책 독후감, 역사속 인물에 대한 평가,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 수필 등 다방면의 과제를 대신 해줄 수 있다.
지난 22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도호쿠대 연구팀이 대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조사에서 응답자 32.4%가 챗GPT를 활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선 아르바이트 플랫폼 알바천국이 지난달 대학생 54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AI를 학업에 활용했다는 응답은 25%(136명)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대학에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고려대, 국민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은 학내에 챗GPT 등 인공지능 서비스 활용 가이드라인을 냈다. 국민대는 △과제 제출시 인공지능 활용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을 비판 없이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사용 여부를 교수와 학생이 상호 합의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중앙대는 교수자에게 '생성형 AI사용금지' '사전 승인 또는 출처 표기 후 사용가능' '자유롭게 사용 가능' 등 3가지 중 하나의 방식을 택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교수자에 공통적으로 생성형 AI가 도출한 결과물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신뢰성 있는 정보원을 통해 재확인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진짜 문제는 '생각' 멈추는 것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이 과제를 대신해주는 것이 '부정행위'라는 점에서 논란이 부각되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생각'할 기회를 줄인다는 점이다. 특히 대학생과 달리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할 경우엔 우려가 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조슈아 윌슨 델러웨이대 교육학과 부교수는 “우리의 사고력은 글쓰기 과정을 통해 향상된다”며 “챗GPT는 과정을 생략하고 완성품으로 점프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사고하는 방법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제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사라지면서 논리력,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힘들어진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 점은 챗GPT 개발사 오픈AI도 인지하고 있다. 오픈AI가 명시한 사용자 가이드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18세 미만의 경우는 부모나 보호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글이 만든 생성형 인공지능 바드 역시 18세 미만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교육 격차 커지나
생성형 인공지능이 사회적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정현선 경인교대 교수는 “유료인 챗GPT 4.0버전과 무료인 3.5버전이 내놓는 응답 수준에 차이가 있다. 4.0을 쓸려면 월 20달러를 내야 한다. 딥엘 등 다른 인공지능 서비스에도 돈을 내야 한다”며 “돈을 내고 서비스를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간의 격차, 부모가 기술에 대해 잘 알고 가르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격차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지난 3월 교육부와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가 개최한 '디지털 인재양성 100인 토론회'에서 “비만이 저소득 계층에서 더 많이 예측되듯, 챗GPT와 같은 즉답AI가 보편화되면 저소득 계층의 지적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격차는 벌어져 있다. 2020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경제력 하위권 가정의 자녀는 타이핑, 한글프로그램, 파워포인트, 코딩, 사진편집, 동영상 편집 기술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맞춤형 AI교과서? “준비 제대로 됐나”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되면 21세기 가장 앞선 교육모델로 대한민국 아이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일 'AI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한 말이다.
교육부는 'AI 교과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AI교과서는 AI를 활용해 학생별 능력과 수준에 맞게 맞춤형 학습자료, 학습 지원 등을 제공하는 교과서다. 학습 수준이 빠른 학생에게 심화학습 단계를, 학습 수준이 느린 학생에겐 기초학습 단계를 제시한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수학, 영어, 국어 교과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고 2028년까지 전 과목으로 학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상은 초등학교 1~2학년을 제외한 전부다.
챗GPT 등 생성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맞춤형 교육' 분야의 가능성이 커진 건 사실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장 등이 펴낸 <챗GPT 교육혁명>은 자동화된 맞춤형 교육을 미래 교육 모델의 하나로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정부가 밝힌 교과서뿐 아니라 학생이 제출한 과제를 생성형 인공지능이 분석한 다음 틀린 점을 설명하고 후속으로 보완해야 할 내용을 제시하는 방식, 학생의 성적을 분석해 개별 피드백 영상을 제공하는 방식 등의 교육이 가능하다.
방향성이 틀린 건 아니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의 급작스러운 발표에 교육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한 중학교 교사는 “시간을 두고 자유학년제 수업에 활용하는 교재에 도입한 다음 핵심 교과로 확장할 수는 있지만 핵심 교과라 할 수 있는 국어, 영어, 수학에 당장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디지털 교과서에 어떤 인공지능을 어떻게 넣는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교육 분야일수록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는데 기술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아니라 기술 도입에 급급한 면이 정책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원단체도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8일 논평을 통해 “디지털교과서의 베타버전조차 내년 5월 이후 나오는데 교사 연수는 그 전에 70%를 하겠다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충분한 시범 적용과 운영 보완 등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좋은교사운동도 입장을 내고 “발전하는 기술을 교육에 접목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디지털 기술'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기술 적용'에 집중하고 '리터러시'는 찬밥?
현재 교육부의 대응은 신기술 적용을 우선적으로 하는 기조가 강하다. 교사의 역할에 관한 고민과 역기능에 관한 대응은 전면에 부각되지 않고 있다. 정현선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사생활 침해, 보안 우려, 비용 문제, 논리력과 판단 능력에 미치는 영향, 격차 등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 논의할 게 많은데 한국은 도구적 관점이 지나치다”며 “비판 없는 속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교육부는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교육기획관'을 신설해 인공지능 교육 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에는 '디지털교육전환' '인프라구축' '에듀테크' 등 담당은 있지만 '리터러시'나 역기능을 담당하는 직책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민주시민교육과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담당을 뒀는데, 민주시민교육과가 폐지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담당이 사라지기도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AI 리터러시'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분야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 정현선 교수는 “디지털 기술은 미디어의 옷을 입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는 디지털 미디어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교육”이라며 “캐나다의 대표적 미디어교육단체 '미디어스마트'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개념으로 '미디어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을 결정한다'고 명시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미디어를 쓰면 생성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와는 다른 경험을 만들게 된다”고 했다. 그는 “기술을 어떻게 쓰는지 도구적 관점을 강조하거나, 기술을 쓰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 쓰는 능력 못지않게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를 얘기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현선 교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질문을 할 때 인공지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히 규정할 수 있어야 하고, 기본 지식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질문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능력이 뒷받침될 필요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새로운 역량이 필요한 것 같지만 오히려 기본적인 교육이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교육청은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생성형 AI 사용 약속'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라인은 '이용자 연령에 맞게 사용하기' '다른 사람의 권리 존중하기'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기'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기'로 구성돼 있다. 세부 내용으로는 “생성된 결과물이 사실과 다르거나 완전히 조작된 결과물로 만들어지면 안된다” “생성된 결과물이 피부색, 종교, 성별, 나이 등에 대해 편견을 드러내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등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만든 이성철 부산교육청 교사는 “미디어의 생산의 양과 속도가 지금도 빨랐지만,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보편화되면 간단한 입력만으로도 글, 이미지, 영상을 만들 수 있어 미디어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미디어는 편견, 혐오, 고정관념 등을 재현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실제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서비스를 써보니 아시아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편견을 담은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는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교사도 인공지능에 대체될까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챗GPT가 많은 교육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교사는 학생이 쓴 과제물을 챗GPT를 사용해 평가했는데 자신이 직접 평가한 것보다 더 빠르고, 더 상세하고, 더 유용한 평가를 내놓아 놀랐다고 한다. 챗GPT가 교사의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교육자의 존재가 위태로워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교사의 업무에 보탬이 된다는 전망이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는 비행기 부조종사라는 의미의 '코파일럿'(copilot) 개념이 있다. 인공지능이 부조종사처럼 조력자 역할을 할 때 업무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사 업무의 경우 수업 지도안을 고민하거나 문제를 출제하는 등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교사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네스코 미래교육보고서는 교육자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야 하는 일' '그만둬야 하는 일'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김수환 총신대 교수는 한국교육신문 현장리포트를 통해 이를 바탕으로 챗GPT시대 교육자의 역할을 정의했다. “아이들을 사랑과 존중의 태도로 대하고, 챗GPT가 주지 못하는 배움의 불씨를 일으키는 일, 수업설계의 주도권과 결정권을 위임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챗GPT를 사용하더라도 데이터로만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는 일, 챗GPT를 맹신하여 교육 전반에 종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일”을 '그만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AI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일”은 '새롭게 해야 할 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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