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서 열린 서울 퀴어축제 “서울광장 아니어도 축제는 계속된다”…세종대로서 맞불 집회도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면서 처음으로 서울광장 이외의 장소에서 행사를 개최하게 된 ‘2023 제24회 서울 퀴어축제’가 1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렸다. 이날 서울 퀴어축제는 오전 부스 운영부터 시작해 오후에 공연과 도심 퍼레이드를 진행한 뒤 인근에서 간단한 축하무대와 함께 종료될 예정이다. 이날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는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집회도 열리는 등 도심에 많은 인파가 집중됐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4번 출구 앞부터 청계천베를린광장에 이르기까지 약 400m에 걸친 60여동의 부스 운영을 통해 이날 행사를 시작했다. 정오쯤 찾은 서울 퀴어 축제 현장은 무지개빛의 깃발이 휘날렸다. 폭염특보가 내려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무지개색의 옷, 가방, 부채를 든 사람들이 축제 현장을 가득 메웠다. 행사장에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사회로!” “성소수자가 존중받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입니다”라는 등의 퀴어축제 개최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들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절대반대” 등의 퀴어축제 반대 플래카드들이 동시에 나부꼈다.
각 대학교, 고등학교 성소수자 모임의 부스부터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영국대사관, 주한독일대사관 등 대사관에서 차린 부스들까지 부스 종류도 다양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생네컷’을 모방한 ‘무지개네컷’ 부스 앞엔 무더위에도 30여명이 줄을 서며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퀴어 축제 스태프들은 연신 “후원하시고 굿즈 받아가세요”라고 외치며 깃발, 팔찌 등 퀴어 굿즈들을 홍보했다.
이번 퀴어 축제에도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을지로를 찾았다. 이번이 네 번째 퀴어 축제 참가라는 김모(26)씨는 “퀴어 축제는 평범하게 우리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축제라 늘 기다려진다”며 “말 그대로 고향에 온 느낌”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손모(55)씨는 거의 10년 가까이 매번 퀴어 축제를 찾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가장 시급한 뉴스”라며 “중년인 내 입장에서 후배들이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루빨리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장을 방문한 이들은 “서울광장에서 축제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면서도 “성소수자들의 운동은 어디서든 계속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김모(32)씨는 을지로에서 새로 꾸려지는 축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이번에 세 번째 퀴어 축제 방문을 결정했다고 했다. 김씨는 “청소년이나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의견이 잘 수용이 안 된다”며 “이번 축제가 어느 공간에서든 퍼레이드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퀴어 축제를 찾았다는 이모(20)씨는 “서울시 결정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을지로도 와보니 좋다”며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진 못할지라도 틀린 게 아닌 그저 다른 존재라고 존중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퀴어 축제 행사장에는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화장실은 여타 집회나 행사 장소에 놓이는 평범한 이동식 부스 화장실이었지만 양쪽 출입구에 성별 표시가 없는 게 특징이었다.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한 성공회대 부스 관계자는 “화장실부터 모두를 포함하는 공간이 되도록 응원해달라”고 했다.
퀴어 축제 장소의 맞은편인 을지로입구역 2번 출구 일대에서는 ‘국가안위와 사회발전을 위한 경배찬양’이라는 팻말을 내건 퀴어축제 반대 집회도 열렸다. 트럭 2대에 해병대 제복을 입은 수십명의 사람들이 난타를 하며 동성애 반대 등을 주장했다.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도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가 주최하는 대규모 퀴어축제 반대 집회가 열렸다. 다만 이날 낮까지 퀴어축제 참가자와 퀴어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 간의 충돌은 따로 없었다.
한편 지금까지 늘 퀴어 축제가 열리던 서울광장에서는 기독교단체인 CTS문화재단이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에 퀴어 축제 참가자 등은 1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소수자 배제, 서울시의 차별행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5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6월 30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한 퀴어문화축제와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 2건을 심의한 끝에 CTS 문화재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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