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권력자의 모습은 이렇게나 달라진다[김창길의 사진공책]

김창길 기자 2023. 7. 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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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순행사진첩> 1909년 남대문역에서 백성들이 순종 황제를 기다리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110여년 전 이야기 하나. 1909년 6월26일 대한매일신보는 함경도 경성군의 촌맹(시골에 사는 백성)들이 운곡학교에 봉안된 순종의 어진을 보고 놀라 불태우는 사건을 보도한다. “폐하의 참사진이 아니다!” 군복을 입은 단발의 순종은 전통적 군주의 이미지를 보기 원했던 백성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기 때문. <제국의 렌즈>를 쓴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연구자는 “일본식 복장을 한 국왕의 모습을 보고 분노한 민중들의 항일의식의 표출”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 사진집 표지. /대통령실제공

요즘 이야기 하나. 2023년 5월27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사진집을 발간했다. 책 제목은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Yoon Suk Yeol / A journey with the people begins)>.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민께서 선택해 주시고 동참해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함께 만들어 나갈 길이라는 취지”로 제목을 정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함께 표지에 등장한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라 공무원들. 어쨌거나 기념 사진집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윤석열 정부는 2년차에 접어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진은 권력자 주변을 치근덕대며 어슬렁거린다. 권력을 선전하고 공고히 하려는 기획자들에게 사진은 말보다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현대의 신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언어의 생략이며, 사회적인 ‘말로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압축이라는 점에서 사진은 반지성적인 무기가 되고, 또한 ‘존재 방식’을 위해, 사회주의 윤리의 위상을 위해, (문제와 해결의 집적체인) ‘정치’를 숨기려 한다.” 원래의 것을 숨기는 것이 ‘신화’인데, 현실은 완벽히 역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저널리즘, 예술, 상식 등에 의해 자연스러운 것, 본래적인 것으로 둔갑해 보이”게 한다. 즉, 권력자를 찍은 사진은 그의 권력을 본래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의미작용을 한다.

사진이 “반지성적인 무기”가 된다고 해서 사진을 찍고 선별해서 배포하는 과정이 반지성적인 것은 아니다. 사진술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부터 사진은 사진을 찍는 자가 믿는 신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됐다. 이경민은 <제국의 렌즈>에서 우리가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가 “사진을 현실 정치에 이용한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이미지 메이커이자 표상전략가”였다고 설명한다. 메이지 유신 세력은 통일국가를 세우기 위해 천황의 순행을 기획했다. 기나긴 막부 시대를 지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 잊혀진 천황의 존재를 가시화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 초대 통감에 오른 이토가 기획했던 이벤트도 황제의 순행이었다.

1909년 신년 하례식에서 이토가 황제의 순행을 제안했다. 별실에 있던 이완용 총리가 즉시 합의했다. 순종 황제는 이를 승낙했다. 대구·부산 등을 도는 남도 순행과 개성·평양 등의 서북 순행이었다.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일했던 곤도 시로스케는 <대한제국 황실 비사>에서 순종 황제의 순행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그리하여 새해 1월7일 이토 공작이 직접 통감부 의원을 이끌고 왕 전하를 호위하며 궁중 정부의 원로 대관 100여명 모두 금색 찬란한 대례복을 갖추어 입고 궁정 열차에 올랐다.” 서북 순행에 오른 279명의 수행원 가운데 이토를 비롯한 일본인은 81명이었다. 대한제국 황제 사진을 찍었던 무라카미 사진관 소속 사진사 2명이 포함됐고, 평양 현지에서 세 명의 활동사진사가 합류했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개성 만월대를 내려오고 있다. <서북순행 사진첩>에 수록.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서북 순행의 절정은 개성 만월대였다. 2월3일 오전 10시, 군복 차림의 순종 황제는 전용 마차를 타고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로 향했다.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웠다던 회경전이 사라진 만월대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이토 통감과 함께 무너진 회경전 계단을 내려오는 순종 황제를 둘러싼 일본 헌병들. 민심을 살핀다는 순행의 대의는 허울일 뿐, <서북 순행 사진첩>에 실린 만월대 사진은 패망한 제국의 초라한 군주를 보여줄 뿐이었다. 곤도는 “한국사의 경우 고대국가가 성립한 이후로 국왕은 최고 권력자이며 최고 명령권자”였기 때문에 “순종의 존재를 새삼스레 국민들에게 부각시켜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고 전한다. 이토는 순종을 뒷전에 놓고 통감부의 시책을 선전 선동했다.

최고 권력자의 모습을 누가 기록하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사진집에 수록된 115개 장면을 기록한 이는 대통령실 소속 사진사다. 110여년 전, 일본인 사진사가 ‘제국의 렌즈’로 찍었던 <서북 순행 사진첩>이 타자의 시선으로 본 권력자의 모습이라면, 윤 대통령의 사진은 내부자의 시선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년간 대통령의 중요 행보 중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 위주로 선을 보였다”고 밝혔는데, 문제는 대통령실이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행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일정공개 전속’이라고 고지되는 행사인데, 정확히 말한다면 대통령실 소속 전속 사진사만 기록하는 ‘언론 취재가 불허된 공식일정’이다. 일본 히로시마 순방 다음날인 지난 5월22일부터 프랑스 순방 출발 전날인 6월18일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대통령 일정 중 언론 공개는 25건(임명장 수여식 3건 제외)이었고, 비공개는 10건이었다. 약 한 달간의 대통령 공식일정 중 5분의 2가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이미지가 첨부된 기사 형태가 주류를 이루는 미디어 환경에서 대부분의 언론사는 대통령실 전속 사진사가 찍은 사진들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기획하고, 기록하고, 선별해 제공하는 사진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좀처럼 제기되지 않고 있다. 바르트의 말처럼 대통령실 제공 사진이 ‘반지성적인 무기’로 작동하기 때문일까? 1주년 기념 사진집 표지처럼, 꼼꼼히 뜯어보고 해석해야 할 사진들은 불투명한 정보 때문에 압축된 상태로만 유포된다. 대통령실은 사진집 표지에 등장한 공무원들이 MZ세대라고 설명했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MZ세대의 반발에도 유연하게 다가가는 대통령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풀이하라는 요청으로 들린다.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것은 사진이 흑백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컬러 원본 사진은 어떤 색감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차분한 느낌을 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은 색깔과 톤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하는바, 그래서 대통령 사진집 표지는 기획자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듯하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1월 12일 프놈펜에서 선청성 심장질환 어린이를 위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 제공 사진 중에서 자주 도마에 오른 사진은 김건희 여사의 단독 일정을 담은 장면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병원을 방문했던 김 여사 사진이다. 심장병에 걸린 소년 로타(당시 14세)를 김 여사 무릎 위에 앉힌 사진에 대한 갑론을박이 쏟아졌다. 야당 국회의원은 ‘빈곤 포르노’ 사진이라고 자극했다.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포로노’라는 선정적 단어로 인해 논쟁은 진흙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논의의 방점은 ‘타인’과 ‘구경거리’에 찍혔어야 하는데, ‘외설’로 옮겨가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쓴 비평가 수전 손택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이 “이국적인 (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00여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김 여사 사진에 조명을 썼다는 비난도 있었다. 억측이다.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전속 사진사가 조명을 들고 다닐 여력은 없다. 소말리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미국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견강부회다. 아픈 자를 품에 안는 동작은 구도가 같을 수밖에 없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자비를 베푸소서!’ 죽은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비탄에 잠겨 있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이다. 제목은 ‘피에타’로 ‘비탄’이라는 뜻이다. 축 늘어진 예수의 육신은 수평 구도이며, 그리스도를 떠받치고 있는 마리아는 수직이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우리는 피에타를 보며 ‘타인의 고통’이 아닌 성스러운 비애감에 젖어 든다. 그런데 우리가 눈을 뜨고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점이 하나 있다. 마리아의 몸이 예수에 비해 크다는 사실이다. 성인 남성의 육체를 여성의 무릎 위에 앉혀 조각해야만 했기 때문에 빚어진 신체 왜곡이다. 관객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작품 주제인 슬픔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솜씨다. 동일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로타를 무릎 위에 앉힌 김 여사의 사진은 뭔가 어색하다. 소년의 표정과 자세가 너무 불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처럼 자애로운 표정의 김 여사는 소년의 가는 종아리를 어루만지고 있지만, 로타는 눈을 동그랗게 부라리며 부모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은 타인 품에 안겨야 할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을까? 로타의 표정은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그렇게 사진에 찍혀 있다.

2022년 8월9일, 전날 집중호우로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내려다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이 대통령실 뉴스룸 카드뉴스로 제작됐다. /대통령실제공
2022년 8월 31일 제7차 비상경제 민생회의 참석을 위해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타인의 고통을 국정홍보에 이용했다고 논란이 된 윤 대통령 사진도 있다. 집중호우로 인해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살펴보는 대통령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다. “2022.08.09. 집중호우 침수 피해지역 현장 점검” “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는 카드뉴스로 활용됐다. 비가 오는 중에도 우산을 손에 들고 사고현장을 찾은 대통령의 행보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생각되지만, 참사 현장의 이미지를 국정홍보로 활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우산을 쓴 윤 대통령의 또 다른 사진은 대통령 사진집에도 수록됐다. 지난해 8월31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비가 내리는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수행원들이 4개의 우산을 펼쳤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우산을 들고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장면이 사진집에 실린 이유는 ‘대통령이 직접 우산을 들고 간다’라는 메시지로 추측되는데, 이와는 반대로 과잉 경호의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뒤에서 비를 맞고 있는 수행원을 대통령이 우산을 받쳐주었다면 어땠을까?

윤석열 정부가 밝힌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에 언론은 중도 하차당했다. 용산 대통령실청사 1층 현관에서 이루어지던 출근길 약식 회견이 지난해 11월21일에 중단됐고, 코로나19로 축소됐던 대통령 공식일정 현장의 취재 여건은 엔데믹 전환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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