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사랑방' 광덕면 마중버스 7년 여정 마무리…택시로 교체
6년 운행 배경환 기사 "마지막 아쉬워"…천안시, 농촌택시 도입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장맛비가 멈춘 30일 오후 4시, 천안시 광덕면행정복지센터 정류장에 마중버스 662번이 도착했다. 80대 장모씨, 이모씨(60)가 버스에 오르며 기사 배경환씨(67)와 허물없이 인사를 나눴다.
승객 2명을 태운 버스는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요동없이 달렸다. 다섯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멈춰서지 않고 달린 버스는 금새 무학리 종점에 도착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어르신은 기사에게 "그간 고생하셨어"하며 인사를 건넸다. 배씨도 운전석에서 몸을 돌려 환하게 웃으며 "건강하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또다른 승객 이씨도 배씨와 덕담을 나눈 뒤 산 중턱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승객 2명이 모두 내리자 운전석을 나온 배씨는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향하는 어르신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기 빨간 집들 보이죠? 어르신 딸들이 모여 살아. 어르신은 매일 버스 타고 밖에 나갔다 이 시간에 들어오시고"하며 설명했다.
"이제 여기도 마지막이네."
광덕면 마중버스가 7년 여의 운행을 마무리했다.
마중버스는 대중교통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골마을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도입됐다. 간선버스가 시내와 면사무소를 연결하면 면사무소에 소형버스가 마중나와 주민들을 마을 구석구석까지 데려다 줬다. 천안에서는 지난 2016년 풍세면과 광덕면에 시범 도입됐고, 이후 병천면으로 확대돼 3개 면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광덕면 마중버스는 매일 2대의 버스가 5개 노선을 오갔다.
6년 넘게 광덕면 마중버스를 운행한 배씨는 주민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버스 이용객 중에는 고령이 많다보니 병원가는 날짜와 시간을 가장 잘 안다.
배씨는 "어느날, 어디서, 누가 탈 지 다 알죠. 타야될 분이 안나오면 걱정도 되고. 친해지다 보니 주민들이 밤이나 오이, 상추 등 선물도 자주 주기도 하고"라고 회상했다.
천안시는 이용객 감소로 운영 효과가 떨어진 광덕면 마중버스의 운행 중단을 결정했다.
광덕면은 천안시 행정구역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지만 주민은 4100여명에 불과하다. 인구밀도가 31개 읍면동 중 2번째로 낮다. 65세 이상 인구도 40%에 이른다.
마중버스 운행 초기 호응을 얻었지만 인구가 줄며 버스는 텅 빈 채 다니기 일쑤였다.
천안시 관계자는 "광덕면 5개 노선의 하루 이용자가 30명이 채 안된다"며 마중버스 중단 배경을 설명했다.
어르신이 집에 다다르자 딸(52)이 집을 나섰다. 딸은 아버지가 탔던 버스에 올라 타며 "이제 택시로 바뀐 다면서요. 아쉬워서 어떡해"하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정해진 시간에 오는 버스에 익숙한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를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천안시는 마중버스 노선에 농촌택시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 노선을 버스 대신 택시가 운행하는 방식이다. 정해진 시간마다 반복 운행하는 버스와 달리 주민이 호출하면 택시가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워 원하는 정류장까지 태워 준다.
시 관계자는 "배차간격이 길었던 버스에 비해 주민이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운영비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9분, 번호를 660번으로 고친 배씨의 버스가 광덕면 행정복지센터를 출발했다. 13개의 정류장을 거치는 동안 탑승한 승객은 없었다. 종점인 행정리에 도착하는데 10분이 채 안걸렸다. 8시 25분, 버스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버스는 어둠이 짙게 내린 정류장을 무심히 지나쳤다. 버스를 멈춰 세우는 이는 없었다. 8시 33분, 광덕면 문화센터에 도착한 버스는 7년 여의 운행일지에 마침표를 찍었다.
"서운하네. 다시 이 동네를 못 온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운행을 마친 배씨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마침 문화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온 주민이 배씨를 알아보고 작별인사를 했다. 배씨는 숫자가 사라진 버스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광덕면을 일원을 누비던 641번, 642번, 661번, 662번과 함께.
issue7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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