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구 부패·비리의 늪에 빠져든 손준호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6월 클린스만호의 A매치 소집에 나선 손흥민은 스포츠탈장 수술에도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때가 있었다.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손준호의 상황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다. 손준호는 6월17일자로 중국 공안의 형사 구류 기한 37일이 만료됐다. 더 이상 조사가 없다면 자유의 몸이 돼야 하지만 중국의 검찰에 해당하는 인민검찰원이 구속 비준을 통과시키며 손준호는 구속 수사 형태로 전환됐다.
연령별 대표팀부터 손준호와 오랜 시간 함께해온 손흥민은 "사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침통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준호와 엄청 가까운 사이고,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연락을 잘하며 지냈다. 지금은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더 걱정스럽고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경을 나타냈다.
지난 3월 손준호를 소집한 적이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팀 감독은 나름대로 해법을 찾고자 노력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손준호를 대표팀 소집 명단에 깜짝 선발한 것이다.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차원이었고, 대한축구협회도 이것을 명분으로 중국축구협회 등을 통해 손준호의 상황을 확인하길 원했다. 하지만 공안 당국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속 수사로 전환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와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최대한 빨리 사태가 마무리되고,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9월 소집에는 함께하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손준호 연봉 올리고 대가성 뇌물 감독에게 지급' 혐의
손준호는 6월18일자로 구속됐다. 중국 당국은 이틀이 지나서야 우리 외교부에 확인해 줬다. 5월12일 상하이 훙차오공항에서 가족과 함께 귀국하려다 출국장에서 연행된 손준호는 이후 수뢰 혐의로 형사 구류돼 랴오닝성 공안의 조사를 받아왔다. 형사 구류는 공안 당국에 의한 임시 구속을 의미하지만, 이젠 인민검찰원 주도의 정식 체포 수사가 된 것이다. 중국의 구속 수사는 최소 2개월에서 최장 7개월까지 가능하다.
구속 수사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구체적 사항과 진행 상황 등 세부 내용 파악은 어렵다. 중국에선 당사자와 변호사를 제외한 제3자에게 수사 내용을 알리는 것이 위법이다. 현재 선수의 가족조차 중국 현지에서 선임한 변호사를 통해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조차 말을 아끼는 중이다. 외교부는 6월20일 "형사 구류 상황에서 현지 공관 직원이 3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인권 침해는 없다고 확인했다. 조만간 추가 영사 면담을 계획 중이다"고 밝혔다.
손준호는 1992년생으로 동갑내기인 손흥민, 이재성, 김진수, 황의조 등과 함께 한국 축구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고, 이후 K리그에서 최정상급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전북의 K리그 우승을 이끈 2020년에는 MVP에 선정됐다. 2021년부터 중국 슈퍼리그의 산둥 타이산으로 이적해 활약 중이었고, 새로운 팀에도 2년간 3개의 트로피를 안기며 팀의 에이스가 됐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돼 3경기에 출전한 핵심 선수다.
중국행은 손준호 축구 인생의 새 터닝 포인트였다. 산둥 타이산 이적 당시 손준호는 60억원이 넘는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자신의 연봉도 국내에서 받던 금액의 3배가 넘는 40억원 수준이었다. 손준호 영입은 산둥에 신의 한 수였다. 11년간 염원했던 리그 우승이 손준호의 대활약을 통해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의 대성공이 지금의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나온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손준호는 유럽의 관심을 받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과 풀럼이 손준호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이적료로 130억원가량이 언급됐다. 산둥은 손준호와 계약이 2년 남아있었지만, 팀의 주축을 잡기 위해 다시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이때 연봉이 한 번 더 상승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손준호의 중국인 에이전트 저우카이쉬안과 하오웨이 전 감독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것. 선수의 연봉 책정에 감독의 입김이 강한 만큼 재계약 과정에서 손준호의 연봉을 올리고, 대가성 뇌물을 에이전트가 감독에게 지급했다는 것이 현재 손준호가 받고 있는 수뢰 혐의의 큰 줄기로 알려졌다.
저우카이쉬안은 손준호보다 먼저 구속된 상태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한자 독음인 주개선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더 많이 알려진 그는 조선족 출신의 중국인 에이전트로 알려져 있다. 유창한 한국어 능력을 활용해 2010년대 들어 많은 한국인 지도자와 선수들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수시로 한국으로 건너왔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한국의 유력 축구인들과의 인맥을 강조하는 사진이나 글을 올렸다.
시진핑 주석 취임 후 중국에선 '축구굴기'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축구계에 많은 돈이 쏠렸다. 유럽과 남미의 지도자·선수 영입에 그 돈이 상당 부분 투입됐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경쟁력을 지닌 한국인 지도자와 선수를 선호하는 팀도 있었다. 주씨는 그 틈새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과거 그와 계약을 맺고 중국행을 타진했던 축구인 A씨는 "독특한 위상을 지닌 인물이다. 중국 축구인들과도 교분이 깊었다. 친절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좀 위험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계약을 해지했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저우카이쉬안은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특정 경기의 설계자로 묘사되고 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가져간 우한 싼전과 FA컵 우승을 차지한 산둥 간에 트로피 나눠먹기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FA컵 8강에서 산둥을 만난 우한은 무기력하게 1, 2차전을 패했다. 주씨가 자신과 계약을 맺고 있는 양팀 선수를 매개체로 삼았다는 루머가 돌았다. 실제로 산둥 소속 선수 2명이 지난 3월부터 승부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진징다오는 손준호와 절친했던 조선족 출신이고, 궈티엔위는 주씨와 계약을 맺은 선수다. 구류 초기에 손준호의 승부조작 가담설이 퍼진 이유는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무죄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전망 많아
구속 수사로 전환된 상황에서 손준호가 무죄를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다. 현재 이 사안을 담당하는 것은 공안 당국과 인민검찰원이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주도하고 있다. 시진핑은 축구 국가대표팀의 심각한 부진을 계기로 지난해부터 중국 축구계에 만연한 부패·비리 척결을 위한 고강도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리티에 대표팀 감독이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재판을 앞두고 있다. 축구협회 전·현직 회장과 임원 등 축구계의 거물들도 같은 신세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산둥 구단은 하오웨이 전 감독과 손준호를 포함한 3명의 선수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구단 홈페이지와 라커룸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지우며 손절에 나섰다.
손준호는 현재 중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고강도 수사에 연루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번 구속 수사는 또 다른 파장을 부를 수 있다. 중국 현지는 외국인 선수라도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분위기다. 최소 2년 이상의 징역형이 내려진다면 손준호의 선수생활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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