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는 적의 머리 가죽을 벗겼다…“나치는 인간이 아니야”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7. 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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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84]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분노의 추적자’에 이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을 연속으로 리뷰합니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쇼샤나 드레퓌스(멜라니 로랑)는 유대계 프랑스인이다. 극장을 운영하는 그녀에겐 트라우마가 있다. 수 년 전 지하에 숨어 있던 그녀 가족에게 나치가 총을 난사해 홀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녀는 이름을 미미유로 바꾸고 영화관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의 한 시골 농가에 찾아온 친위대 대령 한스 란다(오른쪽). 그는 이 집에서 숨겨주고 있는 유대인에 대해 묻는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어느 날 그녀는 시사회 개최 제안을 받는다. 일종의 나치 선전 영화인 ‘조국의 자랑’을 최초로 상영하는 행사다. 전쟁 영웅인 촐러 일병(다니엘 브륄)이 혼자서 적군 이백여명을 죽인 이야기를 담았다. 나치라면 치를 떠는 그녀지만, 상영회를 일생일대의 기회로 잡으려 한다. 독일군과 정계의 주요 인사가 참여한 그날, 이들을 몰살할 작전을 세우는 것이다.
쇼샤나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나치 선전 영화 시사회를 열게 된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악은 악일 뿐, 사연이 왜 필요한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은 악(惡)을 다루는 타란티노 감독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비롯한 타란티노의 대부분 작품에서는 ‘악’을 단지 악으로 표현하는 단순성이 두드러진다. 다수 현대 영화가 선악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악에도 나름의 사연을 부여하는 것을 ‘세련’의 기본 조건으로 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나치들에게 굳이 변명거리를 주지 않는다.
알도 중위는 나치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서 머리 가죽을 벗기라고 지시한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영화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작품은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자신의 직업을 활용해 나치에게 복수할 계획을 짜는 쇼샤나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나치를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 특공대 개떼들(바스터즈)이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진행되는 두 개의 나치 제거 작전이 한 점으로 모이는 과정에서 영화의 스릴과 카타르시스가 빚어진다.
쇼샤나의 애인(왼쪽)은 나치를 몰살하려는 그녀 계획에 동참한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나치는 인간이 아니다,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라”
타란티노 영화 특징인 폭력성이 이 작품에선 주로 나치를 응징할 때 드러난다. 바스터즈는 나치를 죽인 뒤 머리 가죽을 벗겨서 모은다. 필요에 따라 나치를 산 채로 돌려 보낼 땐 이마에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칼로 새긴다. 나치에게 폭력을 가하는 바스터즈 얼굴엔 그 어떤 죄책감도 비치지 않는다. 외려 나치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오락이라도 되는 양 웃고 떠들며 즐긴다.
적을 응징하는 바스터즈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악은 악일 뿐이니 동정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는 나치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나치는 인간이 아니야. 유대인을 증오하는 미친 살인마지. 최대한 잔인하게, 우리가 누군지를 보여줘야 해.”
한스 란다 대령은 쇼샤나를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줬다.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에게 전혀 위협이 될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나치에게 가족 잃은 그녀, 나치를 불태우며 기뻐하다
응징의 쾌감은 영화 속 영화인 ‘조국의 자랑’ 막바지에 극대화한다. 쇼샤나는 시사회 전에 영화의 후반부에 상영할 다른 필름을 준비해 나치를 향한 메시지를 심어뒀고, ‘조국의 자랑’ 클라이막스에 필름을 교묘하게 바꿔치기 한다. 스크린 속 그녀가 나치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하자, 극장에서 대기하던 그녀 애인이 상영관에 실제로 불을 붙이면서 스크린 안의 상황과 바깥의 상황이 하나가 된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촐러 일병이 작전에 방해가 된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영화관에서 불타는 나치를 내려다보는 스크린 속 쇼샤나의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하다. 가족을 잃은 뒤 늘 불안에 쫓기던 그녀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한스 란다 대령으로 분한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현대 스토리텔링이 잃은 무언가에 대해
이것은 실제론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상상이다. 나치에 의해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은 여인이, 히틀러와 괴벨스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직접 죽이는 것이다. 진짜 역사에선 히틀러와 괴벨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복수의 기회를 잃었던 모든 피해자들을 위한 ‘대안 역사’다.
작전을 위해 바스터즈와 배우 스파이 브리짓 폰 하머스마르크가 접선하는 장면에서 영화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사진 제공=UPI코리아
21세기 영화계에서 타란티노 존재감이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스토리텔링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현실세계에서 너무 강력한 거대악을 처단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인물 묘사에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을 늘 인지해야만 하는 현대 작가들은 종종 명백한 악조차도 악으로 그려내지 못해 스토리텔링 소비의 쾌감을 주는 데 실패할 뿐 아니라, 본인이 애초 의도했던 정치적 올바름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버리게 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악은 그저 악으로’ 묘사하는 타란티노의 단순함은 통쾌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포스터.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유)
‘씨네프레소’는 OTT에서 볼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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