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퇴진과 함께 와르르 무너진 한국 여자배구
걸출한 에이스 없어도 협업과 팀워크 강화해 조직력으로 맞서야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여자배구의 침체가 심각하다. 출구가 안 보인다. '포스트 김연경 시대'를 맞은 대표팀의 부침이 2년째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세대교체 과정에서 겪는 실패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참담하다. 국제배구연맹(FIVB) 2023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2주 차(튀르키예·독일) 8경기를 치르는 동안 승리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단 1세트만 따냈다. 8경기 중 7경기가 0대3 완패였다. 한국에서 열린 3주 차 경기에서 반전을 기대했으나, 1승 제물로 꼽았던 불가리아(세계 16위)와의 6월27일 경기에서도 1대3으로 패했다.
김연경 퇴진 후 1승25패…세계랭킹 33위까지 추락
김연경, 김수지(이상 흥국생명), 양효진의 대표팀 동반 은퇴 후 침체는 예견된 일이었으나 그 파장이 너무 크다. 대표팀은 지난해 열린 VNL에서도 12전 전패를 당했다. 5세트까지 가는 접전도 없던 터라 승점도 '0'이었다. VNL 출범(201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세대교체 된 대표팀 선수들이 새롭게 손발을 맞춰가는 과정이었다고 하지만 올해도 딱히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김연경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은 후 국제대회 성적은 6월27일 불가리아전까지 합해 1승25패. 세계랭킹은 33위까지 추락했다. VNL 대회 직전 한국 순위는 23위였다. 도쿄올림픽 전후 순위는 14위였다. 한때는 세계랭킹 9위까지도 올랐던 여자배구다.
반등 없는 경기력으로 2024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 가능성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 파리올림픽 최종예선 C조에 속해 미국,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 태국, 콜롬비아, 슬로베니아와 본선 티켓을 다툰다. 개최국 프랑스를 제외하고 24개 팀이 8개국 3개 조로 나뉘어 경쟁하는데 조 1·2위가 본선에 직행한다. 나머지 본선 티켓 5장은 내년 VNL 예선 종료 시점에 FIVB 세계랭킹 상위 5개 팀에 돌아간다. 여자배구는 2012 런던 대회 때부터 2016 리우, 그리고 2020 도쿄(2021년 치러짐) 대회까지 3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다. 남자배구는 도쿄올림픽까지 5회 연속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해 왔다.
한국 여자배구의 르네상스는 김연경과 함께한다. 김연경은 2005년 만 17세에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후 2021년까지 대표팀 주포로 활약했다. 김연경의 기량이 만개했을 때 대표팀은 2012 런던올림픽 4강 기적을 썼고, 도쿄올림픽 때도 온갖 역경을 딛고 4위의 성적을 냈다. 10년 넘게 김연경에게만 의존했던 터라 대표팀이 세대교체에 애를 먹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김연경'이라는 월드클래스 공격수가 없던 시절, 한국 배구는 체격이 큰 상대에 맞서 조직력·수비력으로 버텨왔었다. '포스트 김연경 시대'에 그 시절로 회귀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거듭된 부진은 비단 김연경, 양효진 등의 부재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과거 학교폭력 문제로 향후 대표팀 발탁이 어렵게 되면서 더 꼬이게 됐다. 세터인 이다영은 차치하고라도 이재영만 한 재능을 가진 수비력 갖춘 공격수가 현재 없다. 배구계 안팎에서 이재영만이라도 구제해야 한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세자르 곤살레스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의 훈련 방법도 입길에 오른다. 김연경이 없는 대표팀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조직력·수비력이 더 요구된다. 훈련을 통해 한 선수가 맡던 역할을 여러 명이 분산해 협업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국제대회 성적이 V리그 흥행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한 구단들도 소속 선수들의 이른 대표팀 차출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사령탑이 대표팀 훈련장에 없다.
국가대표 훈련 현장에 없는 세자르 전임 감독
세자르 감독은 튀르키예 바키프방크의 전력분석 코치를 겸임하다가 6월14일 프랑스리그 낭트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전임 감독이지만 오롯이 대표팀에만 신경 쓸 수 없다. 국외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대표팀 훈련 때는 주로 화상 및 메신저로만 소통한다. "국제 수준의 퍼포먼스에 적응하고, 그 수준에 맞게 계속 연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사령탑이 현장에서 팀 훈련을 지휘하지 않는다. 한유미 코치가 새롭게 합류하고 김연경이 어드바이저로 대표팀에 도움을 주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효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여자배구 저변 약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또 다른 배구계 인사는 "마흔 살 넘은 선수들이 코트에서 뛴다는 것은 자신들이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젊은 선수들이 그만한 기량을 선보이지 못한다는 뜻도 된다. 일본은 여자 고교 배구팀만 5000개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 태국만 해도 150여 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국내 중학교 여자배구팀은 22개, 고등학교 여자배구팀은 19개다. 일부 중학교 배구팀의 경우 선수 모집에 애를 먹고 있기도 하다. 훈련시간 부족으로 전체적으로 기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도쿄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떠나기 전 "김연경 같은 슈퍼스타를 찾기보다는 전체의 평균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기 저하는 비단 여자배구뿐만 아니라 전체 스포츠계의 문제다.
현재 대표팀 공격은 표승주(31), 박정아(30), 강소휘(26), 정지윤(22), 문지윤(23) 등이 책임진다. 하지만 평균 득점 10점을 넘기는 이가 없다. 강소휘의 경기당 평균 득점(5.78점)이 가장 높고, 정지윤(5.56점)이 그 뒤를 잇는다. 키 188cm의 박정아가 있으나 그 또한 평균 득점은 3.89점에 공격 효율은 24.37%에 그친다. 공격이 막힌다면 수비로 활로를 뚫어야 하는데 주전 리베로 문정원의 리시브 성공률은 29.77%(이상 6월27일 현재)에 그치고 있다. 국내와는 다른 강하고 빠른 서브에 애를 먹는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불가리아전에서 보여줬듯 선수단 전체가 부지런히 움직여 협업 수비에 나서면 상대의 실책을 유도할 수 있다. 원래 한국 배구의 특징이 그랬다.
높아진 기대감과 거듭된 연패로 여자배구 대표팀이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가뜩이나 경험치가 적은 선수들이 코트에서 더욱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팀워크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 배구인은 "대표팀 선수들이 '내가 주연이다'라는 마음도 있어야겠으나 궂은일도 마다치 않는 살림꾼 마인드도 가져야만 한다. 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좀 더 보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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