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쇼' 치욕적 평가받은 CNN, 몰락의 늪에 빠지다

박재령 기자 2023. 7. 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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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주의' 표방 리히트 CNN CEO, 트럼프 다운홀 초청 후 해고
'트럼프쇼' 만들었단 비판 WP "상업적 중도주의" WSJ "반각성 중도주의"
NYT "양극화된 소셜미디어 시대, '중도주의' 살아남을 수 있을까"
WSJ "CNN 수익 여전히 TV에 의존… 플랫폼 전환 쉽지 않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수익·시청률 하락, CEO 해고 등 CNN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한 방송사를 넘어 전통미디어의 '위기'라는 진단이 나온다. 소셜미디어로 인한 양극화 담론이 일상화된 가운데, 임기 내내 각을 세웠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타운홀 행사에 세우는 등 CNN이 시도한 '중도주의'에 대한 외신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케이블 TV를 인수하는 사람은 사망진단서에 서명하는 셈”이라고 했다.

▲ 지난 7일 크리스 리히트 CEO가 회사를 떠났다는 보도를 하고 있는 CNN. CNN 보도영상 갈무리

YTN, 연합뉴스TV와 유사한 성격의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은 최근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큰 사건을 연이어 맞고 있다. 2년간 CNN에서 해고 및 퇴진으로 떠난 사람들만 해도 △크리스 쿠오모 앵커 △제프 주커 CNN 사장 △돈 레몬 앵커 △크리스 리히트 CEO 등 거물급이 다수다. 2022년 디스커버리 합병,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 중단, 직원 정리해고 등 사업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매년 최소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던 뉴스 부서 수익은 지난해 7억 5000만 달러로 감소했다. 시청률 역시 2020년 대선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혼란의 정점은 리히트 CEO가 지난 7일 임기 13개월 만에 해고당한 것이다. 리히트는 진보 성향으로 꼽히던 CNN 시청층을 중도로 '확장'해야 한다고 봤던 인물이다. NYT는 7일 해고 소식을 알리며 “그의 해고는 연이은 위기와 수익 하락으로 사기가 저하된 뉴스 조직의 가장 큰 격동이었다”며 “양극화된 시대 속 중도 TV 저널리즘의 생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했다.

▲ 지난달 10일 있었던 CNN 다운홀 라이브. 트럼프가 출연했다. 유튜브 갈무리.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지난달 있었던 CNN의 트럼프 초청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내내 CNN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며 출연을 거부해왔다. 하지만 이전의 CNN을 '주창 저널리즘'(주관적인 면을 드러내는 저널리즘)이라고 비판하던 리히트 측은 트럼프를 초청해 다운홀 행사를 열었고, 트럼프는 300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종 구설에 오를 발언을 쏟아냈다.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고,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에 대해서도 하원의장의 '보안 실패'에 책임을 돌렸다.

이외에도 폭동범 사면, 성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배상 판결 거부, 기밀문서 유출 혐의 불인정 등의 주장을 폈고, CNN 앵커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려 했지만 '생방송'은 트럼프의 편이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여전히 트럼프였다 (Donald Trump is still Donald Trump)”고 했고 환호하는 지지자들에 CNN이 결국 '트럼프 쇼'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어 지난 2일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리히트 CEO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CNN의 보도가 과장됐다”며 트럼프 당시 대통령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기자들이) '독단적'(opinionated)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자 직원들이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리히트 CEO는 지난 7일 자신을 선임했던 데이비드 자슬라브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회장에 의해 해고됐다.

'중도주의' 실험에 엇갈린 외신의 평가들

유력 외신들은 리히트 CEO가 폈던 '중도주의'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리히트 CEO의 중도주의를 '반(反)각성 중도주의(anti-woke centrism)'라고 비판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히트 CEO가 '상업적인 중도주의'를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봤다. NYT는 양극화된 소셜미디어 시대의 중도주의 생존 가능성을 탐색했다.

▲ 지난 7일 나온 WP 칼럼.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WP 칼럼니스트 페리 베이컨은 “진보 진영에 대한 그(리히트)의 회의론, 진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격받고 수치심을 느낀다는 그의 견해는 이상한 스탠스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그의 발언은 오늘날 공화당원이나 보수주의자로 분류되지 않는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반각성 중도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반각성'이란 젠더, 인종, 섹슈얼리티 등 진보의 어젠다 자체에 대한 '회의'(skepticism)를 말한다.

▲ 지난 9일 나온 WSJ 칼럼. 월스트리트저널 갈무리.

WSJ 편집위원 홀먼 W. 젠킨스는 칼럼 <CNN에서 크리스 리히트가 옳고 그른 점>에서 “트럼프처럼 논란이 있는 인물과도 타운홀을 개최해야 한다는 리히트의 생각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그는 트럼프가 말하는 걸 세상이 그대로 보게 놔둠으로써 CNN이 '뉴스 판단력'(News Judgment)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CNN이 지적으로 정직한 보도를 제공하기보다 시청률과 클릭수를 끌기 원했기 때문에, 세상을 왜곡, 부정확, 편향된 시각으로 보게 된 시청자들에 CNN이 진짜 잘못을 한 것”이라고 했다.

▲ 지난 8일 나온 NYT 기사. 뉴욕타임스 갈무리.

NYT는 정파성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의 생존 가능성을 물었다. NYT는 “리히트의 임기는 분열된 케이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줬다”며 “(정치적으로) 정렬돼 있지 않은 독립적인 접근이, 시청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통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아울러 “처음부터 분열의 역할을 했던 케이블은 현재 가장 정파적이고 도발적인 소셜미디어와 경쟁하고 있다”고 했다.

CNN의 고민은 논조뿐이 아니다. 전통적인 TV 매체 자체가 하락세인 어려움을 겹겹이 안고 있다. WSJ는 지난 16일 <CNN의 비즈니스 과제는 크리스 리히트 문제보다 더 깊다> 기사를 내고 사양길에 접어든 TV의 문제를 짚었다. WSJ에 따르면, CNN은 10개월 동안 1억 6600만 명의 글로벌 이용자가 방문하는 세계적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TV가 수익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WSJ는 “대중의 시선은 디지털로 이동하고 있지만 돈은 여전히 TV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 1개월만에 종료한 스트리밍 서비스 CNN+

WSJ는 “CNN이 포함된 케이블 패키지에 가입한 미국 가구는 6800만 가구로 작년 7250만 가구보다 감소했다. 가입 가구가 줄면 시청률이 하락한다”며 “광고 수익은 지난 몇 년 동안 감소했다. 2020년 CNN의 미국 광고 수익은 9억 달러를 돌파했지만 2022년엔 6억 달러 미만에 그쳤다”고 했다. 이어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다른 플랫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틱톡과 같은 일부 플랫폼에선 단기간에 수익 기회가 제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WSJ는 미디어분석가 리치 그린필드(Rich Greenfield)의 말을 인용해 “유료 TV의 암울한 전망을 고려할 때, (CNN의) 인수자를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케이블 네트워크를 인수하는 사람은 알든 모르든 사망 진단서에 서명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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