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지하주차장에 문을 달아주세요

강세현 2023. 7.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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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숨진 포항 아파트 주차장 침수 사고
아직 물막이판 설치 안 된 지하주차장 많아
지자체 보조와 주민 의지로 설치율 높여야

건축기술의 발달로 건축물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건물이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생긴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지하 공간입니다. 주차장과 관리 설비 장치를 둘 공간이 필요해진 거죠. 하지만 이 지하 공간은 여름철 비가 내릴 때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재난백서에서는 산사태 편에 이어 집중호우가 내릴 때 지하주차장의 위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입구까지 물이 차오른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연합뉴스)
지하로 쏟아져 내린 빗줄기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는 경상도 지역을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한반도에 제대로 상륙하지 않았음에도 밤새 많은 비를 뿌렸고 포항에도 30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오전 6시 30분쯤, 포항 남구의 한 아파트엔 주민들의 잠을 깨우는 안내방송이 울렸습니다. 빗물로 지하주차장이 잠길 수 있으니 차를 옮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몇몇 주민들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누런 흙탕물이 폭포처럼 주차장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9명이 지하주차장에 갇혔습니다.

소방당국이 출동했지만 물이 지상 출입구까지 올라올 정도로 가득 찬 탓에 배수와 구조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후 8시 14분과 다음 날 오전 2시 15분, 주민 2명이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30cm 남짓의 에어포켓에서 약 14시간 동안 천장 배관을 붙잡고 버틴 의지가 만든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주민 7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범람 뒤 물이 빠진 냉천 (연합뉴스)
물막이판이 없었던 주차장

사고가 났던 아파트 바로 옆으로 냉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포항엔 시간당 100mm 안팎의 폭우가 쏟아졌고 냉천은 결국 범람하고 말았습니다. 도로를 지나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저지대에 있는 지하주차장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지하주차장은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물막이판 같은 수해 예방 시설이 없었던 겁니다. 빗물은 폭포처럼 지하주차장으로 쏟아져 내렸고 주민들은 미쳐 피할 틈도 없이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고는 폭우를 막기엔 부족했던 배수시설과 하천 설계 여기에 수방 시설이 안 돼 있던 지하주차장이 만든 참사였습니다.

물막이판 설치 중인 주차장 (연합뉴스)
법은 강화됐지만

사고 직후 전문가들은 주차장 입구에 물막이 시설이 있었다면 결과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물막이판이 있었다면 1차로 물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을 것이고 설령 물이 물막이판보다 높게 차올랐다 하더라도 물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는 겁니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방재지구나 자연재해위험지구에서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려는 자는 건축물이 침수되지 않도록 지하층 및 1층의 출입구에 물막이 설비를 설치해야 합니다.

「자연재해대책법」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수방 기준 적용 여부를 확인하고 준공검사 또는 사용승인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월 행정안전부는 적절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았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을 추가하도록 법 개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건물에 물막이판을 설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무 설치는 침수위험지구 및 해일위험지구, 과거 5년 이내 1회 이상 침수가 되었던 지역 중 동일한 피해가 예상되는 장소 등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있는 건물로 한정됩니다. 법 시행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도 사각지대로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하주차장 침수로 보험 접수 이력이 있는 서울 내 단지를 조사해보니 5곳 가운데 2곳은 아직도 설치가 안 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를 겪은 건물조차 설치가 더딘 겁니다.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하주차장 (MBN 뉴스7)
지하주차장에도 문을

지난해 제가 취재를 다녀온 판교의 한 신축 오피스텔은 지하주차장과 지하에 있던 전기시설 등이 물에 잠기며 전기와 수도가 오랫동안 끊겼습니다. 오피스텔 뒤로 산이 있어 폭우가 내렸을 때 물이 낮은 곳에 있는 오피스텔로 들어올 가능성이 컸지만 물막이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건축 허가가 났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엔 지자체 등이 분류한 위험지역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침수될 위험이 큰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자체들은 설치 의무가 없는 건물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며 설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이 한정된 탓에 속도가 더디기도 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간건축물에 대한 내진보강이 의무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발적으로 내진보강을 하면 지방세 감면비율을 확대하는 등의 인센티브 제도 시행하고 있다"며 "침수 예방 설치에도 비용지원보다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물주와 주민들의 의지입니다. 물막이판 설치에 비용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공사를 포기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하지만 물막이판은 결정적인 순간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꼭 필요한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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