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투표권 없는 여성이 있다?… 농어촌 ‘가구당 1표’의 함정
“2년에 한 번 이장 선거를 하는데 가구당 1표만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대통령도, 도지사도, 시장도 내 손으로 뽑는데 이장은 제 손으로 못 뽑아요.”
농촌 지역의 읍‧면 단위 소규모 주민자치단체에서는 여전히 ‘가구당 1표’라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런 관행으로 인해 여성에게 불합리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농촌에 거주하는 여성은 혼자 살기보다는 부모님이나 남편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 대신 남편이나 집안의 남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충남 홍성군에서 귀농한 지 4년째되는 여성 김모(40)씨는 이장 선거처럼 마을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자리에서 한번도 의견을 못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껏 우리집에선 시아버지가 의사 결정권을 행사해왔다”며 “이장 선거는 가구당 1표이기 때문에, 내가 뽑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시아버지와 의견이 다르면 내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고 했다. 전북 정읍시에 사는 여성 김모(36)씨도 귀농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1가구 1투표라는 관행이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는 “우리끼리는 ‘남편 투표제’ ‘할아버지 투표제’라고 한다”며 “결혼 이주 여성은커녕 여성 귀농인이나 귀촌인들의 의견도 반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지난 3월 초 경남 남해의 4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는 골프장 건설 논의가 있었는데, 이 1가구 1투표제로 큰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구점숙(53)씨는 “골프장 건설은 주민 모두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고, 환경 문제나 소음 등 논의해야할 것들이 많은데, 내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구씨는 “마을에는 골프장을 찬성하는 남편과 반대하는 아내 간 부부 싸움을 하는 가정도 있지만 투표권은 결국 남편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전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 “이장 선출을 비롯한 농촌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이 소유한 도로가 국가 소유로 수용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됐는데, 주요 의사 결정을 마을 이장이 하면서 대다수 여성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인권위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게 “여성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게 하라”고 했다. 또 행정안전부와 여성가족부에게도 “농촌 지역사회 내 성평등한 의사결정구조와 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며 점검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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