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이름도 없이 냉장고에 버려진 아기들”…영아 미등록 막을 법은?
‘보호출산제’ 두고 이견도…“임신·출산·양육 지원 체계도 같이 마련돼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최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이름도 없는' 아기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앞서 2022년 3월엔 경남 창원에서 부모의 방치로 생후 2개월 된 아기가 영양결핍으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2020년 12월 전남 여수에서도 아기 시신이 냉장고에서 나왔다. 이 아기들의 공통점은 모두 출생신고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아기들은 부모와 국가로부터 방치돼오다 결국 사선(死線)을 넘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사각지대에 방치된 '미등록 아동'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6월25일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15~2022년까지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는 2236명에 달했다. 이들 대부분은 필수 예방접종, 아동수당 등 복지에서 소외되거나 범죄 등 위기상황에 노출된 채 양육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아동은 영양결핍 등으로 이미 사망하거나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도 확인됐다.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가족관계등록법)'에선 출생 신고를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부모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법이 규정한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아도 처벌은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전부다. 이런 법률로는 미등록 아동이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앞선 사례들을 통해 확인됐다.
미국·영국·캐나다·독일 등에선 이 같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 내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 산모 신원 등을 의무적으로 알리게 하는 제도다. 국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아기가 병원에서 출생한 경우에 병원의 등록시스템을 통해 의료보장번호(NHS)를 발급한다. 또 아기의 아버지와 출생 현장에 있었던 사람, 병원 관계자 등도 관련 기관에 출생통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국회 차원에서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들이 3년 전부터 우후죽순 발의돼왔다. 신동근·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등이 관련 법안들을 연이어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그동안 국회에서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국회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뒤늦게 법안 통과에 박차를 가했다.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지난 6월30일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은 출생 등록을 기재하고 의료기관장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해야 한다. 의료기관장이 심평원에 출생일을 통보하는 기간은 한 달로 규정된 지자체 출생신고 기간을 고려해 14일 이내에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돼 시행일을 공포일로부터 1년 후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당정은 출생통보제의 보완책으로 '보호출산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위기의 임산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다. 임산부들을 의료기관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인 셈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무엇보다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병행 도입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고, 당과 정부가 이런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보호출산제, 양육 포기 조장하거나 아이의 알 권리 침해 우려도"
시민 단체들도 '출생통보제'에 대해선 화답하는 분위기다. 다만 '보호출산제' 도입의 경우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출산을 꺼리는 임산부 중엔 애초 출산 여건이 안 되는 이들이 많아서다. 이런 경우 익명 신고를 보장해도 임산부들이 여전히 의료기관 방문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또 해당 제도가 오히려 양육 포기를 조장하거나 아이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인순·신현영 민주당 의원은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를 비롯해 아동·여성·입양·공익변호사·사회복지단체 등 38개 시민사회단체와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엄마)의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이러한 접근방식으로는 그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익명출산제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어떻게 완비할 것인지 논의해도 부족할 시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출산을 선택한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보편적 임신·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서비스가 따로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삶의 경로에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전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의 관점에서 보편적 지원체계가 구비돼야하며, 아동이 원가정에서 자라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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