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들] “어민의 땀과 함께 한 100년 수산 연구, 위기의 어촌 살릴 것”
2100년 수온 3~5도 올라 수산업 위기 눈 앞
매년 연구성과 5% 늘리는 게 목표
”미래 세대가 지속 가능한 바다 누리도록 노력할 것”
‘한국의 기후 온난화 속도 세계 평균보다 빨라’ ‘표층 수온 50년간 1.23도 올라 세계 평균의 2.6배’
환경부가 지난 4월 공개한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에는 한반도에 닥친 기후변화 위협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반도 주변 바다 곳곳에서는 이미 중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한류 어종이 잡히던 강릉 앞바다에서는 아열대성 어류인 참치가 잡히는가 하면 제주와 부산을 포함한 남해안에서는 정어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 잇따라 관찰됐다.
과학자들은 앞으로도 기후변화의 영향이 고스란히 해양 생태계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해수 온도가 1도만 올라도 육지에서 기온이 10도 올랐을 때만큼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201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1930년부터 80년 동안 수온이 0.5도 오르면서 어업 생산성이 15%에서 최대 35%까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국내에서 100년 넘게 해양수산 과학 연구의 전통을 이어온 국립수산과학원도 2023년~2027년 5년간의 중장기 비전을 담은 연구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유일의 해양수산분야 종합 연구기관인 만큼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수산정책 수립과 현장기술 보급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우동식 국립수산과학원장(57)은 “국내 수산업이 직면한 글로벌 기후위기, 식량안보와 수산자원 감소, 고령화와 어촌 소멸 같은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향후 5년간의 연구 종합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우 원장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수산과학원의 대표적 수산과학의 성공 사례로 ‘전복 삼계탕’을 들었다. 옛날에는 임금님 수라상에나 오르던 귀한 전복이 이제는 누구나 삼계탕, 라면에 넣어 먹을 정도로 대중적인 식품이 된 건 수산과학원의 오랜 노력이 이룬 결과라는 것이다. 우 원장은 “1990년대만 해도 2t에 그쳤던 전복 생산량이 30년이 지나면서 연간 2만t으로 늘어 늘었다”며 “육종 기술과 양식 기술 연구에 어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생산량이 많은 나라가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에는 수산과학원이 개발한 넙치 양식 기술과 참치 잡이 기술이 선정되기도 했다. 넙치는 1984년 양식을 시작해 3년 만에 20t을 처음 생산한 데 이어 현재는 연간 4만~5만t을 생산하고 있다. 참치잡이도 새로운 어업 방식을 개발해 전 세계에서 어획량 1,2위를 다투고 있다.
우 원장은 “한 세기 넘게 수산과학원이 그래왔듯, 앞으로도 과학 연구를 통해 수산업에 닥친 위기를 넘어설 것”이라 포부를 밝혔다. 우 원장을 만나 수산과학원은 미래에 어떤 바다를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기후변화로 전 세계 바다 환경이 바뀌면서 해양생태계도 영향을 받는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수산과학원이 파악한 국내 바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환경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와 비슷하다. 1968년부터 2022년까지 수산과학원의 정선해양관측조사 결과를 보면 55년 동안 국내 연근해의 표층 수온은 약 1.36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평균 표층 수온이 0.54도 오른 것과 비교하면 2.5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자체 해양기후예측모델로 보면 2100년에는 수온이 3~5도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독 국내 주변 바다의 온도 상승이 빠른 이유는 무엇인가?
“3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하고 있다. 먼저 저위도로부터 열을 공급하는 해류(대마난류)의 세력이 1980년대 후반부터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국내 해역이 주변국으로 인해 반 폐쇄적 특성이 있어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주요 요인이다. 기후변화로 국내에 영향을 주는 대규모 기단의 장기적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작용한다.”
-국내 어업에도 영향이 나타나고 있나?
“표층 수온이 오르고 이상 수온이 자주 나타나면서 잡히는 어종이 바뀌거나 서식지가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국내 바다에서는 잘 잡히지 않던 참다랑어가 동해 연안에서 잡히거나, 방어는 최근 동해에서 어획량이 크게 늘었지만 주 어장인 제주와 남해에서는 감소하고 있다. 제주에 주로 나타나던 강담돔이나 독가시치 같은 아열대 어종이 최근에는 동해안에도 출현하고 있고, 독도 연안까지 자리돔, 범돔, 줄도화돔 등 아열대 어종이 나타나고 출현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멸치나 고등어의 서식지도 북상하고 있다.
거기에 해양온난화로 표층의 산소가 줄고 영양염이 부족해지면서 해조류의 생장 부진과 어린 해조류 잎이 녹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김의 채묘(종자 붙이기) 시기는 1달가량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00년 국내 주변 해역의 잠재 최대 어획 생산성은 현재 대비 10~15%까지 감소할 것이라 본다.”
-기후변화 외에 다른 영향은 없나.
“자연 의존적인 산업이라 기후변화로 수온이나 서식지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수산자원 자체도 9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원관리 문제가 크다. 명태만 봐도 어린 개체들을 계속 잡은 데다 수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어장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양식에 성공해 새끼들을 방류하고 있지만, 일부 개체만 잡히는 수준이다. 만약 성공하더라도 러시아산에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양식 기술이 더 필요하다.
거기다 어촌·어민 고령화 문제로 젊은 인력도 퇴장하고 있다. 전 세계 수산 시장도 개방되면서 국내 경쟁력을 더 갖춰야 하는 상황인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수산업 위기 타파할 계획 발표... 수산과학원 주 무기는 ‘과학 연구’
-지난 2월 발표한 향후 5년 계획에 기후변화 대응 방안이 포함됐다.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영향을 정확하게 지켜보고 예측할 수 있는 감시와 전망 기술의 강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존 해양조사 체계를 수온, 염분 등과 같은 기존의 관측 요소에 기초생산력 등을 추가해 종합 해양 생태 모니터링 체계로 변경해 나갈 예정이다. 해양변화를 전망하기 위한 고해상도 해양기후예측 모델도 올해 안에 구축할 계획이다.
양식 분야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새로운 양식 종의 개발과 기후변화 적응 품종 개발의 두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아열대 종인 대왕바리를 국내에 서식하는 어종인 붉바리나 자바리와 교잡해 신품종을 만들었고, 양식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해 국내 양식 생산액 1,2위를 차지하는 품종인 넙치와 전복의 고수온 내성 품종 개발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 5년 계획에 어떤 것이 있나?
“각종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기후변화 연구‧현장기술 강화를 포함해 지속 가능한 성장, 첨단 융합 기술개발, 국내외 협력‧서비스 강화 등의 전략 방향에 따라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내부 역량과 의견을 고려해 해양수산분야의 국내외 연구성과를 연 5% 이상 높이고, 수산자원 평가 어종을 80종으로 확대해 생산량을 80% 이상으로 하며, 각종 해양수산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객만족도를 90% 이상으로 달성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세 가지 목표 중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은 무엇인가?
“모두 다 이뤄야 하지만, 세 가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매년 연구성과를 5%씩 높이는 것이다. 수산과학원은 국가연구기관으로 업무를 통해 나오는 결과물이 연구 산출물이다. 따라서 연구를 통해 어업인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장기 연구 종합계획을 세우기 전, 수산분야 내·외부 핵심전문가 205명을 설문 조사해 수산과학원의 기술 수준을 분석한 결과 미국이나 노르웨이 같은 최고기술 보유국 대비 85% 이상의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2025년에는 89%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기술 수준과 인력으로 매년 5% 성장할 수 있나?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지금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현재도 어민들이 원하는 기술 개선이나 수산자원 생태 연구에 대한 요구에 모두 응할 수 없을 정도라, 일하는 방식을 바꿔가며 성과를 늘릴 계획이다.”
-매년 복리식으로 5%씩 늘어난다고 보면 5년 뒤 연구성과가 상당히 늘겠다.
“그렇게도 볼 수 있나. 마찬가지로 가능하다고 본다. 노르웨이, 미국 등 해외 선진연구기관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농촌진흥청,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국내 연구기관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해 연구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연구 ‘수’와 ‘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연구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수산과학원 원장으로 오기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산위원회 사무국에서 근무하면서 30개국이 넘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지켜보며, 한국이 수산 분야에서 선진국이라고 느꼈다. 선진국 수준에 든 만큼 질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해서 국제적으로 이바지해야 한다고 본다. 양적인 연구는 민간 기관이나 대학,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지속 가능한 수산업’ 위한 수산과학원의 미래 100년
-수산과학원의 국제적 위치는 어떤가?
“100년 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개도국에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는 알제리 사하라사막 한가운데서 해수를 이용해 바다 새우인 흰다리새우 양식에 성공했다. 물이 부족한 북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등 내륙국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외에 굴, 새우, 전복, 김, 넙치 등 국내 양식 기술에 대한 지원과 교육훈련 등을 요청받고 있다. 수산과학원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생분해 그물도 널리 인정받고 있다. 개도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우면서 전문가나 기업의 해외 진출에도 발판이 될 것이라 본다.”
-생분해 그물은 무엇인가?
“기존의 나일론 성분으로 만들어진 그물은 자연에서 분해되는데 500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수산과학원에서 개발한 생분해 그물은 3~4년 후에 완전분해된다. 바닷속 폐그물에 물고기가 잡히는 ‘유령어업’ 우려가 줄어드는 셈이다. 따라서 해양생태계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 친환경 흐름에 맞춰 미국과 인도, 쿠웨이트, 베트남 등 여러 국가에서 기술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미국에 생분해 낚싯줄도 수출하고 있다.”
-앞으로 수산자원과 해양환경 보호, 그리고 수산업 개발 사이를 어떻게 조율해나갈 생각인가?
“극단적으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자연을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대신 자연을 사람들의 수요, 목적을 위해서만은 쓸 수 없다. 자원과 환경을 전 세대가 물려준 유산으로 보면, 다음 세대도 자연을 누려야 한다. 수산과학원은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국가기관으로써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익뿐 아니라 미래 세대가 자연을 균형 있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수산과학원의 새 비전은 ‘혁신적 연구로 지속 가능한 해양수산, 국민께 행복을 드리는 세계 일류 연구기관’인데 위기에 닥친 수산업을 지키고 앞으로도 어업인과 국민께 도움을 드리는 연구소가 되겠다.”
☞우동식 국립수산과학원장
1989년 연세대 행정학과 학사
1994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수료
행정사무관 임용(제36회 행정고시)
2004년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환경·자원경제학 석·박사 수료
2007~2008년 해양수산부 해양환경정책팀장
2008~2009년 농림수산식품부 소비안전정책과장
2009~2011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2011~2017년 OECD,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과장, 장관비서관, 감사담당관
2017~2018년 스웨댄 해사청 빅토리아연구소 국외훈련
2018~2019년 해양수산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장
2019~2021년 해양수산부 국제협력정책관(국제원양정책관)
2021년~ 국립수산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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